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박도 Apr 11. 2024

#1 회사원 현지씨라는 사람에 대해서

소설 연재

평범함은 축복이다. 현지씨는 평범의 범주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이 사는 소시민이다. 주간현재경제의 광고 담당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주부를 위한 월간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2년을 버티다가 이직해 회사생활 5년차가 되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회사 체질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알게될 뿐이다. 그렇다고 회사 아닌 다른 세상이 체질일 것 같지도 않다. 현지씨는 하루 중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가 인생이 끝나버리는 장면을 종종 상상하곤 했다. 뭐가 문제지? 어쩌다 이렇게 살아버리게 된거지? 잠시 멈춰서서 질문하는 걸로도 쉽게 머리가 지끈거렸다.

현지씨는 머리가 복잡한만큼 의식주는 단순하게 꾸렸다. 먼저 계절 별로 두어벌의 옷을 돌려입는다. 그 이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흰색과 그레이 면티셔츠와 베이지색 7부 바지 또는 아이보리색 스트레이트 코튼면바지를 매치해서 입는다. 사실 적당히 다리에 밀착되면서도 공기가 들어올 틈이 있는 완벽한 핏의 중청 리바이스 청바지가 있긴 한데 흰티에 청바지 조합은 뭔가를 노린 사람으로 보일까봐 자제했다. 흰티에 베이지색 칠부바지 역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쉽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엔 과하지 않은 올리브빛이 도는 연두색 라운드 니트와 폴로 로고가 와인색으로 그려져있는 비둘기색 니트를 번갈아서 입는다. 하의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다. 똑같은 색깔, 똑같은 사이즈로 두 개가 있는 청바지다. 간절기엔 두껍고 무거워서 포옹하는 느낌을 주는 쥐색 가디건을 걸친다. 크리스마스 즈음엔 그 위에 무광 아이보리색 패딩을 꺼내 입는다. 속에 여러 겹을 껴입기 때문에 패딩은 한 치수 큰 것을 구매했다. L 사이즈다. 가방은 사계절 내내 누런 빛이 많이 도는 아이보리색 캔버스 백을 든다. 거기엔 마징가Z나 비행기, 큐피드의 화살 등 명확한 취향을 알기 힘든 와팬 몇 개가 달려있다. 깔끔하고 멋스러운 블랙 막스마라 코트를 하나 살까 생각을 오랫동안 했지만 아직 구매하진 못했다. 그 새 열두 번 계절이 바뀌었고 회사 사람들은 현지씨가 작년과 같지만 어제와는 다른 옷을 입고 출근할 때면 그제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눈치채곤 했다. 현지씨와는 정반대로 매일, 매 계절 신상을 입는 옆 자리 은아선배와 워낙 대비가 크다보니 현지씨는 입사 1년 만에 ‘두벌광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지씨는 에디터이긴 하지만 취재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기사를 발굴한다. 특히나 광고주와 밀접하게 일하는 광고기사를 쓰는 에디터다보니 가끔 ‘짜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는 것도, 예의도 없지만 돈은 많은 식당 사장의 배너광고까지 담당하던 때엔 말로 형용하기 힘든 분노를 자주 느꼈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패션 매거진 에디터에 비해 자신이 에디터로서 좀 딸린다고 느낀다. 불행 중 다행인건 현지씨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다. 그저 조금만 더 편하게 적당히 일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5년차 직장인정도 되면 ‘어디가 어떻게’, ‘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수정하면 좋을지’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르는데 도가 튼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포장하기에는 그저 두 번 일하기 싫은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은아선배는 기분에 따라서 컨펌 방향이 달라지는 현지씨의 직속 상관이다. ‘이러니 여성으로서 임원까지 오르는 게 불가능이라고들 하는 걸까’ 현지씨는 은아선배를 볼 때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자란 태를 부정할 수 없었다.


“은아선배, 전통시장 기사 컨펌 부탁드려요. 광고팀에서 링크 필요하다고 요청이 와서요.”


현지씨 오른 쪽에 앉아 있던 은아 선배의 얼굴이 둘 사이에 있던 위태로운 플라스틱 칸막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현지씨, 우선순위가 뭔지 몰라? 이번에 건설사 피처기사 제대로 해서 올려야 우리팀 와해되는 거 막을 수 있지 않겠어? 돈 몇 푼 하지도 않는 건은 알아서 처리하라니까? 그럴 때도 됐잖아. 자기야.”


“저번에 선배가 아무리 작은 광고 기사도 선배책임이니까 제멋대로 올리지 말라고 하셔서 기다렸죠.”


자기 할 말만 하고 칸막이 안으로 쏙 들어갔던 은아선배 얼굴이 뿅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현지씨, 자기는 융통성만 있으면 더 성공했을 거야. 자기계발이다 부업이다 그런 거 요즘 많이 하잖아. 자기는 그런거 하지마. 그냥 융통성만 딱 길러와. 그럼 완벽이야.”


직장 동료와 사내메신저로 나누는 뒷담화는 몇 년이 지나도 질리지도 않고 매번 신선하고 활기가 돋는다. “은대리가 은대리 했네. 진짜 개소리도 논리적인 목소리톤으로 하는 것도 능력이라니까~” 현지씨는 총무팀 차사원의 공감 멘트를 들을 때마다 위로 받는 기분을 느낀다. 차사원은 현지씨의 친한 직장 동료다. 카카오톡까지는 주고받긴 하지만 사적으로 둘이 만난 적은 없었는데 차사원은 현지씨를 사내베프라고 하면서도 다른 회사사람들하고만 주말에 약속을 잡곤 했다. 현지씨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