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현지씨는 애드팀과 총무팀 연합 친목회에 무난히 속해서 한 달에 한 번 사무실 배달회식모임에 참여한다. 술집에서 먹는 건 부담스럽다고 해서 정해진 룰인데 법인카드로 거하게 배달을 시켜 먹는 것이 회사에서 개인이 빼먹을 수 있는 크나큰 복지라도 되는 듯 회의실에 모여 피자, 치킨, 떡볶이, 족발, 회 거기다 수플레 팬케익이나 탕후루 등 집에서 혼자서는 잘 시키지 않을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는다. 현지씨는 처음 입사했을 땐 집에 가야한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보복 비스무리한 따돌림이라거나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월급의 연장선이다 치고 그냥 버티기로 했다. 내 돈 내고는 안 시킬 새롭고 비싼 음식을 먹는 재미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씨는 대학을 졸업한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학교 후문에서 7분 거리에 있는 옥탑방에 살고 있다. 방에 가벽을 설치하면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넓직하며 배란다식 창문을 열면 옥상까지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구하겠냐는 판단에서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방이다.
편의점에서 만원에 4개 맥주를 사고 2개 사면 1개 더주는 과자를 2개, 그러니까 총 6봉지의 과자를 손에 들고 대학생들이 바퀴벌레처럼 우루루 쏟아져나오는 동네를 걸어가는 현지씨. 서른이 넘으면 이런 바퀴벌레 같은 동네 따위 추억조차 버리고 떠나게 될 줄 알았지만 이제는 마흔엔 떠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현지씨의 주인 아줌마는 현지씨 바로 직전에 살던 여대생의 수시로 바뀌는 남자들 때문에 남사스럽다며 리모델링을 핑계로 내보낸 후 참해보이는 현지씨를 세입자로 들였다. “한 남자만 들였으면 안 내보냈을까요?” 현지씨의 질문에 아줌마는 말했다. “니는 남자 한 명이라도 데려와라 쫌.”
아줌마 기준에서 현지씨는 최고의 세입자다. 생리현상 외에는 어떠한 소음도 만들어내지 않는 30대 비혼주의자 직장인이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매달 35만원을 꼬박 낸다면 자신의 노후는 그럭저럭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현지씨는 비혼주의자가 아님에도 사람들의 오해를 사곤 한다. 그렇다고 현지씨가 연애나 섹스에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집이 아닌 모텔에서 하는 것을 선호할 뿐이다. 일단 집의 목적은 휴식 겸 사회로부터의 안식이기 때문이다. 간혹 돈이 없어서 자취방에서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현지씨는 자기가 모텔비를 내면서까지 집에 들이지 않았다.
옥탑방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현지씨는 옥탑방의 단점에 대해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당당하게 외쳤다. “여름은 원래 덥고 겨울은 자고로 추운 것이죠.” 사람들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했다. 허나, 그 반대의 집이라고 해서 잘못된건 아니다. 여름이 덥다고 해서 화를 낼 수 없다. 더운 것이 여름의 일이니까.
현지씨가 옥탑방에 사는 이유는 사람들의 판단대로 돈 때문은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 270도 뻥 뚫린 하늘과 방보다 넓은 옥상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갖기 어려운 호사였다. 배란다식 슬라이딩 창문을 열면 곧바로 초록색으로 페인트 칠이 된 옥상이 보이고 옥상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내려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마음껏 위아래를 왔다갔다 구경하며 멍을 때리는 건 심신안정의 행위였다. 빨간색 플라스틱 편의점 의자와 테이블은 언제봐도 최고의 소비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맨발로 앉아서 코 앞에 서울을 내려다보며 냉동실에 잠깐 넣어두었던 얼음처럼 차가워진 캔맥주를 들이킬 때의 기분은 성수동 트리마제에 사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감성 그 자체인 것이다.
현지씨는 골목 건너편 갈색벽돌 주택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집과 방 사이에 있는 얇은 벽돌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 방에 있는 것이 들키게 될까?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추하고 편안한 채로 50cm 벽을 사이에 두고 산다. 무슨 생각과 무슨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와 같을까? 현지씨는 영영 답을 알 수 없는 생각을 한다. 그 옥상에 자주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