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걸어서 국경을 넘다
포르투갈의 비아나도 까스텔로(Viana do castelo)에서 기차를 타고 발렌사(Valenca)라는 마을로 넘어가려고 한다. 해안길에서 내륙길로 다시 넘어가는 셈이다. 오전 8시쯤 나와 산타루치아 대성당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혼자가 되어 얻은 새로운 감각의 자유를 기억하기 위해 뭔가를 남기기로 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수첩 빈 부분에 쎄요(순례길 도장)를 찍었다. 홀로서기의 기쁨을 기념하는 엽서다.
발렌사에서 내리면 다시 걸어서 스페인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포르투갈의 발렌사는 스페인 지역 뚜이와 붙어있다. 두 마을 사이에는 강이 흐르는데, 강 위의 다리를 건너는 순간 인사말이 달라진다. '봉 까미뇨'에서 '부엔 까미노'로, '봉디아'에서 '올라'로. 시차도 달라진다. 한국과 8시간 차이나던 시차가 7시간으로 줄어든다. 바로 몇 발자국에 언어와 시차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다.
포르투갈에서 바라보는 스페인, 스페인에서 바라보는 포르투갈. 기분이 묘하다.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이 길이 유한한 인생이라면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 걸까. 중간 이상 왔으니 50대를 훌쩍 넘겼으려나. 순례길 초반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매일 30km 이상 치열하게 걸어왔다. 걸으면서 물집으로 고생하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혼자 빠지기도 했다. 이제는 내 몸에게 친절한 상태로 조급함 없이 기차를 타는 여유도 부리며 걷고 있다. 기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걸어야만 아는 풍경이 있듯이 기차 안에서 창 밖을 보아야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앞으로 5일 남았다. 내일부터는 스페인 위의 순례길을 걸으며,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익히며 한 발 한 발 내딛겠지. 도착점이 이제 겨우 5일 남았는데 나는 여전히 이 길이 새롭다. 출발할 때와 다른 새로움이다. 두려움은 없고, 설렘뿐이다. 길이 끝난다는 사실에 아쉽기도 하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더욱 소중히 걷게 된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할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산티아고에 막 도착한 나를 본다. 벅차는 마음에 눈물이 양쪽 눈에 그렁그렁 차있는 눈으로 순례자들과 포옹하는 상상. 그동안 후회없이 잘 걸었다며 안심하는 미소. 미래에서 본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 주어진 소중한 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