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를 높이는 말
워킹맘의 하루는 협업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 등원 완료 문자를 보내주시는 등원 이모님, 애기엄마 밥 챙겨먹으라며 반찬을 챙겨 주시는 가사 이모님, 회사에서 단축근무를 허용해 주신 팀장님,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일을 하고 있으면 은근슬쩍 알려주는 팀원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리 혼자 고군분투한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드시 내가 워킹맘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업맘이라고 해도 육아를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공동육아를 하거나 하다못해 문화센터라도 다니기 마련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공동육아방 선생님, 문화센터 선생님...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육아를 해 나간다. 또한 조직 생활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도 모두 카운터파티(counterparty)는 존재한다. 고객일 수도 있고 협력업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분명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우리는 감사를 생략한다.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 익숙함이 관계의 온도를 서서히 식게 만든다. 연인 사이에만 권태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권태기는 오기 마련이다. 친밀하던 직장 동료가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을 때, 팀장님이 나에게만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 같을 때, 후배가 유난히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남편이 말이 없어지고 내 질문을 회피할 때가 있다. 대놓고 말하기 힘든 껄끄러움, 드러내기 힘든 서운함 등이 쌓이면 필연적으로 감정의 권태가 나타난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처럼, 말 한 마디로 떨어진 관계의 온도도 다시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팀웍을 결정하는 동행의 언어
영혼 없는 말처럼 들릴까 걱정하지 말자. 감사의 언어에는 과유불급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은 워킹맘으로서 일과 삶을 오가며 체득한 진리이기도 하지만, 모든 조직에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다면 감사는 성과보다 앞선 리더의 태도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는 리더는 조직의 감정적 에너지를 높이고, 동료들이 스스로의 기여를 '의미 있는 일'로 느끼게 만든다. 나 역시 으레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팀장님이 "프로님 덕분에 우리회사 유튜브 조회수가 높아졌네요. 감사합니다." 와 같은 말씀을 해 주시면 하루종일 신이 난다. 감사는 감사로 화답해야 한다. "이게 다 팀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면 팀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워킹맘 리더십은 회사 안에서만 발휘되는 게 아니다. 나를 리더로 존재하게 해주는 또 다른 팀, 가정에서 그 리더십은 더 크게 빛을 발한다. 어떤 복지도 대신할 수 없는 친정엄마의 헌신, 유일무이한 파트너 남편.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일상의 균형추는 흔들리다 못해 무너질 것이다. 사회 속에서의 '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가장 큰 조력자를 우리는 종종 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에게 "엄마 오늘도 힘들었지. 너무 고마워요. 내가 더 잘할게." 하는 말은 절대 생략해서는 안 된다. R&R 상 당연히 해야 하는 거실 정리를 마치고 매일같이 생색을 내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도 회사에서 힘들었는데?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남편 회사에서 하루종일 힘들었을텐데 고마워." 라고 한 마디 하면 집안의 팀웍이 살아난다.
워킹맘 리더십의 종착지는 바로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감사의 마지막에 늘 마음이 머무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아이다. 복직 후, 우리 아이는 반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무리 단축근무를 한다고 해도, 지하철역에서 숨이 턱에 닿게 뛰어도, 겨우 4시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을 뿐이다. 전업맘이나 하원도우미가 하원시키는 아이들은 보통 3시~3시 반쯤 하원을 하고, 나 역시 복직 전에는 3시 반쯤 하원을 시켰다. 그런데 아이들도 하원 순서라는 것이 있어서 '쟤 다음 나' 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라 본인의 하원 순서를 인지하고 있다가 엄마의 복직으로 갑자기 꼴찌가 되니 처음에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씩씩하게 하원하지만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함보다는 미안함이 앞선다. 매일 하원할 때마다, 또 자기 전에 아기에게 속삭여 준다.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 아가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아이도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인다. 매일 사탕 하나씩 쥐어주시는 집 앞 편의점 사장님께도, 볼 떄마다 귀엽다고 해 주시는 옆집 할머니께도 "감사합니다, 해야지" 하면 고개를 꾸벅 숙인다. 감사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감사를 표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과도 따뜻하게 연결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감사는 단순히 예의를 차리는 말이 아니다. 말 속에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에, 감사는 신뢰를 축적하는 기술이 된다. 워킹맘이 걸어가는 길은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그 때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건너가야 한다. 리더십이란 '누가 나를 따라오느냐'가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걸어주느냐'로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내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부족하나마 진심어린 말을 전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