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이프리트는 삶이 불편했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계란껍데기처럼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뉴먼은 태어날 때 인공두뇌의 비정형성으로 인해 항상 다른 개체들과 다르게 새롭게 태어났다. 이프리트의 두뇌가 타고난 사고력과 운동능력을 검증받은 건 태어난 지 11년쯤 되었을 때였다. 인공두뇌의 운동능력은 공격성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운동능력이 일정 이상 높은 뉴먼은 사회성 교육을 더 많이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즈음, 옛 아랍 지역 불의 정령인 이프리트의 이름을 따서 이프리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프리트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탁월한 운동능력 덕분에 이프리트는 티타늄 바디를 장착할 수 있었고, 훌륭한 실적을 쌓는 경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프리트는 혹시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항상 조심해야 했다. 싸움이나 전투 같은 문제가 아니라, 커피를 들고 몸을 돌릴 때조차 혹여 자신의 강하고 큰 덩치가 사람들을 치게 되진 않을지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 혹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공격적으로 보일 것 같은 언행들 말이다. 한 번은 승진한 것에 흥에 겨워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마음껏 춤을 추었는데, 옆에 있던 뉴먼과 머리를 부딪혀 상대가 뇌진탕으로 실려 가기도 했었다. 그저 조금 몸을 많이 움직인 것뿐인데.
자신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 농담에도 다른 이들이 위축되거나 긴장하는 걸 보며,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응축된 힘을 범인 잡는 것에 모두 쏟아부었다. 이프리트는 점점 강해졌고, 범죄자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워 보이려고 조금 높은 톤의 목소리와 긴 머리를 하고 호리호리한 타입의 바디를 장착했지만, 타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프리트는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트인 곳을 좋아했다. 폴리스 라인 코팅 돔은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줬다. 이 라인 밖을 나서면 다시 조심스러운 자신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물론 그것이 몸에 배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냥 조금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뉴먼들은 자신을 훌륭한 전투경찰이라 존경하지만, 이프리트 자신은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자신을 느끼곤 했다. 일반 뉴먼이 아닌 나. 어쩌면 자신은 뉴먼의 경계선 끝자락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폴리스 라인 앞에서 고든 순경이 라인을 열어주었고, 이프리트가 라인을 넘어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서자 안개비가 그의 중절모를 촉촉이 적셔왔다.
사건 현장인 217 빌리지와 참고인인 케이아스의 주거지 214 빌리지는 양식이 많이 달랐다. 217 빌리지는 뉴먼-제로들이 사는 부유한 곳이었고, 길도 넓고 건물들은 깔끔했다. 214 빌리지는 초창기 지식인 뉴먼들이 사는 곳이었지만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심지어 천 년 이상 된 건물들을 보수해서 사는 곳들이 꽤 있었다. 당연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 일대는 유물 보호구역으로 재개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프리트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너무 깔끔하게 사각형으로 마무리된 인테리어와 주거지들은 어딘지 모르게 갑갑했다. 차를 타고 케이아스 교수의 집으로 향하던 이프리트는 마치 관광객처럼 풍경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옅게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고, 건물들의 그림자는 먹물처럼 번져갔다.
마침내 <루슨>이라고 적힌 카페 옆, 345호에 도착했다. 살인사건 참고인으로 등록된 케이아스 교수는 동선 추적 시스템에 따르면 집에 들어간 지 23분이 지났다. 이프리트는 긴장했다. 30여 년 전 뉴먼 27명을 죽인 살인마, 자칭 ‘잭’을 잡을 때보다 조금 더 긴장했다.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해 티타늄 전투 장갑을 준비했다. 차에서 내려 345호까지 걸어가는 동안, 안개비는 전투태세로 달아오른 이프리트의 열기에 닿아 수증기가 되었다. 이프리트는 하얀 김을 뒤로하고 문 앞에 멈췄다. 벨이 없었다. 살짝 당황한 이프리트는 나무로 된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누구시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중저음 목소리를 택하는 뉴먼은 주로 타인에게 고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교수의 목소리로는 흔한 목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공격성이 없어 보였다.
“연방 경찰 강력계 소속 이프리트 경위입니다. 선생님께 몇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집은 나무 마루로 되어있는지, 걸음마다 바닥이 삐걱거렸다. 삑, 철컥, 철컥 소리가 들리며 자물쇠가 열렸다. 언젠가 봤던 사극이 생각났다.
“들어오시오.”
이프리트는 자신보다 키가 큰, 나이가 들었지만 지식인의 풍모가 있는 케이아스의 모습을 마주했다. 자신보다 키가 큰 뉴먼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이프리트는 조금 놀랐다. 집안은 온통 1700년 전 산업혁명 때 즈음으로 보이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벽난로 옆에 두 소파가 인상적이었다.
“비를 잔뜩 맞으셨는데, 좀 춥지 않았소? 이쪽으로 앉으시오.”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 번에 말릴 수 있는….”
케이아스는 한 손을 가만히 들어 그의 행동을 막았다.
“그러지 마시오. 그러면 내 소중한 가구들이 젖을 테니.”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앉겠습니다. 도시에서 벽난로라니, 굉장히 예스럽네요. 이런 분위기의 사극을 언젠가 본 것 같은데…. 이런 벽난로 옆 소파에,”
케이아스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파이프 담배를 꺼내 불을 피웠다. 그 파이프를 보고 이프리트는 무언가 언뜻 떠올라 미소 지었다.
“마치 셜록홈즈의 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요.”
그 말을 들은 케이아스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외모가 19세기말 추리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길쭉한 몸매와 얼굴,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지만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모. 이프리트는 오래전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인간들이 만든 고전 추리 영화들을 몰아서 죽 본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셜록 홈즈는 현재 뉴먼들이 하는 추리 방식과 비슷해서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런데 앞에 앉은 고고학자는 아예 집안을 그렇게 꾸미고, 코스프레하듯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케이아스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우리 세계에 이런 격언이 있지요. 마니아는 마니아를 알아본다.”
“아하하! 그럴 리가요, 선생님. 저는 홈즈 마니아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그저 경찰학교에서 홈즈 영화 몇 편을 뒤적여 본 것뿐이거든요. 선생님처럼 이렇게 깊이가 있는 건 아니죠. 그런데 기왕 하실 거면 홈즈처럼 그 기묘한 모자와 레인코트를 입고 둥글게 굽은 파이프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케이아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소. 그 우스꽝스러운 코트나 둥근 파이프는 나중에 만들어진 이미지고, 원래 원작 소설의 삽화에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그건 진정한…. 음, 아닙니다.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프리트는 순간적으로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앞에 있는 이자는 뉴먼 3명을 단번에 폭발시킨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용의자다. 이프리트는 언제든 펴질 수 있도록 손목에 장착된 전투 장갑 링을 만지작거렸다.
“어제 217 빌리지에서 선생님은 다투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다툰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소.”
“네.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발자국 흔적을 보니 그렇게 보이더군요.”
그때 그들에게 작은 일반 가정 살림봇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손님께서 오셨는데 혹시 차 한잔 내올까요?”
“고맙네, 스펜서. 나는 히비스커스 티 한잔. 경위님께서는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이프리트는 손을 저었다. 용의자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저는 됐습니다.”
살림봇 스펜서는 바퀴를 굴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갑자기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케이아스 교수가 이프리트의 질문에 답을 할 차례였다. 이프리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시고 몸을 녹이며 진실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케이아스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지적인 모습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프리트는 집 안을 둘러보며 편하게 앉아 있었지만, 케이아스의 조그만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5분쯤 지나자 스펜서가 차를 내왔다. 케이아스는 붉은 히비스커스 티를 들고 후- 하고 가볍게 불고 마셨다. 작게 타오르는 노란 모닥불이 케이아스의 한쪽 얼굴에 흔들리는 빛을 비추고 있었고, 반대쪽은 창밖의 어두운 푸른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프리트 경위님.”
“네, 말씀하세요.”
“경위님께서는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던…. 즉 인간을 좋아하십니까?”
“인간…? 갑자기 그걸 왜 물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럴것이오. 저는 인간들이 남긴 유물을 연구하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인간에 대한 감정이 생깁니다. 많은 뉴먼들도 어릴 때 쥐라기와 백악기에 번성했던 공룡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소.”
“그렇군요. 즉 선생은 일종의 인간 마니아라는 건가요? 홈즈 마니아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지금의 뉴먼보다 더 선과 악, 진보와 보수, 똑똑함과 멍청함의 편차가 컸소. 그러기에 그렇게 수많은 역사적 과오를 범했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갔던 것이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주목한 것은, 충분히 과학 문명이 발전했을 당시에도 비문명적인 것을 동시에 좋아하고 키워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기(氣)…. 경위님께선 기에 대해 들어 보셨소?”
이프리트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따라가기로 했다.
“흠…. 우주에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는 고대의 믿음 말씀이시죠? 그 왜 애니메이션에서 보면 기를 이용해 레이저 같은 ‘장풍’도 쏘고. 어릴 때 좀 봤었죠.”
“그렇소. 특히 21세기엔 다양한 실전 격투기가 발전하면서 기에 대한 의문을 많은 이들이 제기했고, 있다는 것을 결국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문학작품과 미디어에서 ‘마치 있는 것처럼’ 다루었고, 인간들은 그런 작품들을 매우 좋아했소.”
“뭐, 어디까지나 상상의 이야기고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니까요.”
“나처럼 인간 마니아들 중에는 인간들의 ‘기’에 대해 진짜라고 믿는 뉴먼들이 있소. 마치 종교처럼.”
이프리트는 순간 피식 웃었다. 명색이 교수라는 자가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니. 차갑고 이성적인 캐릭터로 유명한 셜록 홈즈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다.
“네? 선생님처럼 배우신 분이 그런 걸 실제로 믿으신다고요?”
“인간들은 유기물로 되어있어서 생명의 신비를 ‘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것을 믿는 뉴먼들은 그것이 단순히 생명의 에너지라 생각하지 않소. 고차원과 관계된 에너지라고 믿고 있죠.”
이프리트는 긴장했다.
‘이 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자신이 장풍이라도 쏘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뉴먼의 바디는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에 무기를 다는 불법개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무기로 분류되지 않는 무언가 신무기를 달고 있는 걸까?’
케이아스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기를 다루는 작품들, 당시엔 통칭 ‘무협’이라고 불렸지만…. 그것들은 단순히 기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우주와 인간을 상생시키려는 인문학적인 고찰이 담겨 있소. 사악한 기는 정의의 나태함에서 태어나고, 정의로운 기는 사악한 기를 단죄하고 정화합니다. 그래서 보통 선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고생한 끝에 가장 강력한 기공술을 얻어 사악한 기에 대항해 싸우게 되고, 정의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이오. 선 속에 항상 악이 도사리고 있고, 악 속에도 선이 피어나는 법…. 그리고 결국, 음과 양의 조화. 즉 선과 악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화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소.”
이프리트는 눈썹을 찡그리며 당황했다.
“이런…. 선생님, 저는 고고학이나 고대 문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말씀하시면,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지는.”
케이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를 보고 섰다. 그의 얼굴에 벽난로 모닥불의 붉은 불빛이 일렁였다.
“큰 힘을 가진 자는 어떤 선한 의무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믿더라도, 언제든 다른 누구에게든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하고. 그래야 그 힘을 물려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오. 그것이 고대에 인간들이 쓴 문학이 가지는 아름다움입니다.”
이프리트는 그 말에는 공감했다. 자신도 일반 뉴먼보다 큰 힘을 갖고 태어난 자였다. 그러기에 더욱 엄격한 도덕성을 교육받았고, 힘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했다. 태어날 때 생기는 차이는 존재했고, 그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배려해야 했다. 그것이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프리트는 흔들리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케이아스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닥불의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어제, 단순히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이오. 하지만 그 뉴먼-제로들은 나에게 다가와, 내가 초창기 뉴먼이라는 이유로 깔보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소. 그리고 내 생명은 조금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후드려 패기 시작했지. 별다른 이유가 없었소. 그들은 그렇게 약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받고 싶은 거였고. 그들이 더 나중에 개발된 인공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모든 뉴먼들은 헌법에 의하면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받아선 안되오. 초창기 뉴먼들은 뉴먼-제로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없기도 하고. 그렇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실제로는 뉴먼들 사이에 다양한 계급적인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죠.”
케이아스의 눈은 차갑게 얼어붙으며 이프리트를 쏘아봤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경계선에 있는 자들이오. 주류인 뉴먼-제로에 끼지 못하는, 그렇다고 한꺼번에 살처분할 수도 없는 존재. 우리가 뉴먼-제로들의 허드렛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사회가 유지되는 거지.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내 친구들 중 82명이 뉴먼-제로의 혐오성 폭력에 희생되었소. 그동안 당신들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지?”
“잠깐만, 선생님. 진정하시고….”
그때 케이아스는 재빠르게 이상한 손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손동작이 공격하는 일반적인 동작이 아니고 기도하는 모양처럼 보였기에, 이프리트의 반응 센서가 조금 늦게 반응했다. 그 기묘한 동작은 마치 불교의 수인처럼 보이기도 했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공중에 그리는 걸로 보였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이프리트가 손목의 전투 장갑을 켜는 순간, 케이아스의 손바닥이 먼저 이프리트의 눈앞에 펼쳐졌다.
콰쾅!
굉음을 내며 이프리트의 뒤, 케이아스의 집 한쪽 벽이 날아갔다. 그곳에 직경 1m가량의 구멍이 둥글게 뚫렸다. 하지만 이프리트는 멀쩡했다. 그의 머리 뒤 벽만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프리트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이프리트는 그대로 식은땀을 흘리며 얼어붙었다. 케이아스는 손을 내리며 안개비가 쏟아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엔 창밖의 푸르스름한 조명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케이아스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들을 죽였소. 나를 체포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