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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6. 무여열반

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by 카시모프

오클랜드 아레나에는 장벽이 세워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한 의식을 위해, 도시의 전 시민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힘없이 죽어가는 노인들 같던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도시엔 생기가 넘쳐흘렀다. 오클랜드 아레나 역시 시청처럼 천년도 넘은 건물이었지만, 이런 각종 행사를 위해서 유지보수를 깨끗이 하고 있었다. 2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도시의 전 인구인 만 명의 시민들이 들어가기엔 충분했다.


모두 모이자 문이 닫혔다. 경기장 내부에는 전기 조명이 없어, 기름 램프 수천 개가 켜졌다. 경기장은 환해졌고, 무대 한가운데에선 장작을 높게 쌓아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하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고 손뼉을 치기도 하며 떠들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쉬미르 시장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시민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몇십 년 동안 인간은 아마 그런 환호성은 질러본 적이 없으리라. 시장은 모두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후, 경기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자 동그랗게 말린 깔때기를 들고 연설을 시작했다.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 시민들, 바로 인간들! 우리는 일찍이 개척자이며, 발명가이고 정복하는 자였습니다. 저 밖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로봇들도, 우리의 피조물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의 창조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우리를 경쟁상대나 공존의 대상은커녕, 발 밑의 개미처럼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젠 죽이지는 못하고 요양원에서 죽이나 먹이고 있는 뒷방 늙은이 취급, 혹은 멸종 위기 동물처럼 불쌍하게 관리만 해주고 있죠.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인 시장의 이름을 연호했다. 시장은 그들의 함성에 맞춰 주먹을 흔들다가, 손바닥을 펴고 진정시켰다.


시장이 손짓을 하자, 무대로 재호와 마고가 끌려 나왔다. 마고는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며 힘을 써 봤지만, 청테이프를 끊을 수 없었다. 간격이 있어야 무술을 쓸 수 있는 것이지, 이렇게 테이프로 붙어서 꽁꽁 묶여 있으면 그 어떤 무술의 고수라도 탈출하기 힘들 것이다. 바이오-뉴먼의 근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근력을 가진 게 아니니까. 게다가 재갈을 물려 놔서 혀를 깨물어 죽을 수도 없었다. 숨을 스스로 멈추려고도 해 봤지만, 잠깐만 기절하고 곧 깨어났다. 재호는 시장과 관중을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불에 타 제물이 된다고 해도, 마고와 나는 다시 청록의 시간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마고와 내가 죽는다면 뇌 속의 7차원 나노봇은 의식과 함께 청록의 시간으로 사라진다. 시체는 남겠지만, 그 시체의 뇌를 이용한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닌데….’


마고와 재호는 무대 중앙의 장작불 앞에 세워졌다. 시장은 마고와 재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오늘은 인간이 또 한 번 변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로 바쳐질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환호했고, 경기장에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북소리가 진동했다. 시장은 마고와 재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들은 미래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보내진 천사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로봇들이 인간들을 그렇게 꼼꼼하게 찾아 이곳 오클랜드로 데려다 놓은 지가 100여 년이 되었는데, 어디서 갑자기 인간이라며 나타났겠습니까?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정보를 기록했다가 잘 분석해 봤습니다. 종합해 보면, ‘시간 여행은 몸이 아니라 의식으로만 가능하다’, ‘죽으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시간여행을 하기 위해선 약이 필요하다.’, ‘그 약은 뇌 속에 들어 있다.’ 이렇게 추려집니다. 즉, 신이 되는 약은 이들의 뇌에 있고, 그걸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죽으면, 이들은 시간 여행을 통해 사라지겠죠.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머리뼈만 갈라, 산 채로 뇌를 먹어야 합니다. 조금 비위가 상할 분들도 있겠지만 참고 먹어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들어 알고 있었는지, 모두들 시장의 말에 미칠 듯이 환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재호는 남 박사의 웃음이 겹쳐졌다. 여기에 만 명의 남 박사가 있다. 재호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재갈을 악물었다.


‘파일럿이 되려면 나노봇만 먹으면 되는 게 아니야. 유안의 말에 의하면 몇 년 동안 꾸준히 마고가 만든 장치 속에서 시술을 받아야 했었어. 이들은 그걸 몰라. 약을 먹는다고 몸이 한 번에 변할 리가 없잖아. 이들은 생활만 19세기로 돌아간 게 아니라, 사고도 19세기로 돌아간 것 같아. 에이즈에 효과가 있다면서 알비노 인간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생각나. 벼랑 끝에 몰린 인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겠지만…. 이건 도를 넘어섰어. 이들은 자기들 계획을 말하면 우리가 도망칠까 봐, 시간여행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일부러 듣지 않으려고 한 거야. 구원이라는 환상으로 진실을 감춰버린 거지. 여기서 우릴 죽이고 뇌를 퍼먹는다고 해도, 그건 그냥 헛짓이야!’


재호는 몸부림쳤다. 조금이라도 손가락을 움직여보려고 손가락을 버둥거렸다. 살갗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청테이프는 워낙 강력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재호가 몸부림치는 사이, 시장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사람들이 재잘거리는 수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시장은 마치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사람들을 주목하게 했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죠. 우리가 미래의 기술과 시간 여행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혹시 이들이 중간에 죽거나 사라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천사들은 정말 숭고한 존재입니다. 자신들이 시간 여행을 하지 못하고 죽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이들의 목을 자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성한 제물 의식에 이 천사들의 목을 잘라 기념하겠습니다. 그리고 두개골을 열어 바로 한 숟갈씩 뇌를 퍼서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신이 인간을 위해 내려주신 성체 그 자체입니다. 천사의 뇌를 드시면, 이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들은 미쳤다. 아니, 인간은 미쳤다! 마고는 그들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목을 자른다고? 목을 자르면 재호와 나는…. 이러면 인간들도 살 수 없고, 우리는 더더욱 그냥 개죽음이야!’

마고는 재호를 쳐다보았다. 재호는 마고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며 눈을 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포기한 걸까. 재호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재호를 무대 앞으로 끌고 나와, 무릎을 꿇리고 목을 통나무에 내밀게 해서 묶었다. 재호는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무대 위로 도끼를 든 거대한 남자가 나타났다. 시장은 신이 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의식을 시작합시다!!”


북소리에 맞춰서 도끼를 든 남자가 천천히 재호 주위를 돌았다. 재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는 조금 흔들거리며 춤을 추듯 잠시 재호 주위를 돌며 흥을 돋우더니, 도끼를 들어 장작 패는 동작을 취했다. 마고는 재호가 무엇이라도 하길 바랐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잖아. 하지만 재호는 모든 걸 다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눈을 꾹 감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생을 거쳐 청록의 시간을 여행했지만 지금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재호. 마고가 보는 재호는 몸을 작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재호의 떨림이 멈추었다. 재호 옆에 선 남자는 도끼를 내려쳤다.


퍽!


재호의 목은 무딘 소리를 내며 잘려 나갔다. 목에선 피가 솟구쳤고, 재호의 머리는 잘린 나무토막처럼 땅에 뒹굴렀다. 시장은 재호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렸고,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했다. 시장의 손에 들린 재호의 눈 옆에는 눈물이 흐른 듯 보였다. 마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아무리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마고의 차례였다. 사람들은 마고를 끌고 나와 통나무에 머리를 고정시켰다. 그 남자가 다시 나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고는 인간을 연민했던 자신을 저주했다. 인간은 어리석다. 멍청했다. 인간들이 왜 멸종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은 무엇이 자신들을 죽이고 살리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마고는 도끼를 든 남자를 있는 힘껏 노려봤다. 남자는 멈춰 서서 마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고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빛.


청록색의 빛.


통나무에 묶여있는 마고의 눈에 청록색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도끼를 든 남자의 머리 뒤에, 동그랗게 ‘청록의 시간’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 천천히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마고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청록의 시간’이 열리고, 7차원 다양체가 나타나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부터 조각조각 분해되기 시작했다. 조각은 가루가 되고, 가루는 분자가 되고, 분자는 원자가 되어 7차원 다양체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분자는 재조립되어 어떤 형상을 만들어갔다. 도끼를 든 남자의 몸은 미처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다리밖에 남지 않았다. 계속해서 남자는 분해되고, 그 뒤에 있던 사람 몇 도 같이 조각나 분해되어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뇌가 만들어지고, 신경이 만들어지고, 뼈, 근육, 혈관, 순서대로 조립되었다. 피부가 만들어지고 머리칼이 만들어졌다. 그 형상은 청록의 눈을 뜨고, 쥐던 사람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공중에 떠 있는 도끼를 움켜쥐었다. 7차원 다양체는 뇌 속으로 접혀 들어가며 사라졌고, 청록의 시간은 닫혔다. 여기까지 고작 0.03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고는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 형상은 도끼를 쥔 채 마고의 앞에 착지했고, 그 주변 인간들은 도끼를 들었던 자를 포함해 살덩이만 남고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그 형상은 끼로 마고의 목을 조르는 끈을 자르고, 재갈을 풀었다. 마고가 소리쳤다.


“재호!!”


마고를 풀어준 그가 뒤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눈이 선명하게 청록색으로 빛나는 재호였다. 재호는 옆에 널브러진 남자의 망토를 몸에 둘러 걸쳤다. 관중들은 조용해졌고, 무대에 있던 시장과 사람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마고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겹친 목소리로 재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목이 잘렸는데 어떻게 청록의 시간으로?”


“내가 6차원을 무기로써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었어? 손가락만 움직여서 집중하면 돼. 물론 그걸 하는데 무지 힘들었지. 영차영차 했다고. 그걸로 내 심장에 구멍을 뚫어서, 목이 잘리기 전에 먼저 죽었지.”


마고는 아까 죽은 재호의 시체를 봤다. 뒤로 묶여있는 재호의 손에서, 피범벅이 된 손가락 두개가 밖으로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재호는 마고를 묶은 끈을 자르고, 둘은 와락 껴안았다.


탕!


마고와 재호는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색이 된 시장이 벌벌 떨며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두려움 반, 분노가 반이었다.


“너희들은… 우리가 신이 되는 게 그렇게 싫은 거냐? 인간들이 이렇게 다 떼죽음당하도록 둘 거냐고!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해. 우리가 당신들의 선조잖아! 인간이라면 당연히 희생해야지!!”


“아니, 그건 좀 다른 얘긴데….”


“시끄러워!”


카쉬미르 시장은 숨을 몰아쉬며 군중들에게 외쳤다.


“… 여러분, 이 둘을 잡아서 제물로, 아니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서 죽여야 합니다! 다들 보셨죠? 이자들이 뇌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가 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로봇들에게 몰살당할 겁니다!!”


군중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총과 칼을 꺼내 무대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재호는 고민했다.


‘이제 내가 인간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인간들과 싸우면, 이곳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날 죽여서 뇌를 먹어야 자신이 살아남는다고 믿고 있으니까. 게다가 방금 전에, 내가 나타나면서 기적을 보여줬으니…. 여기에서 재빨리 마고와 자살을 해서 죽고 떠나도 된다. 하지만 그러면 인간들은 우리의 남겨진 시체의 뇌를 파먹고, 신이 되었다며 집단 자살을 하거나, 서로 죽고 죽이게 될지도 몰라…. 잠깐, 그러고 보니 마고와 나의 뇌엔 언제나 여분의 나노봇이 있다! 그건 6차원으로 의식과 함께 가지 않을 텐데…. 그럼 우리의 뇌를 먹은 사람 중 몇은 나노봇으로 인해 심각한 조현병에 걸릴지도 모르고, 어떤 이들은 혹 DNA시술이 필요 없이 나노봇과 잘 맞아서 정말 시간여행자가 될지도….’


머리가 복잡했다. 도망갈 것인가, 인간들과 싸울 것인가. 원래도 인간들의 역사는 이곳에서 끝이 났다. 재호는 자신의 뇌를 먹으려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며,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착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들. 남의 고통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고통에만 관심 있는 인간들. 인간 그 자체가 바로 지구의 모든 생물에게 거대한 폭력이었다. 인간이 없었던 로봇들의 세계, 비록 인간을 닮은 부분들 때문에 갈등이 있었지만 얼마나 평화롭고 지구와 조화롭게 살고 있었던가. 그리고 재호를 되살려 준 뉴먼들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렇다면, 맞서야 하나? 내가 인류를 사라지게 하는 건가? 내가 악인가? 아니면 지구와 뉴먼 세상을 지켜내면…. 나는 선인가? 내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해도 되는 걸까? 나도 하나의 인간일 뿐인데….’


마고가 재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말고 너를 위해서 행동해. 너는 네 의지대로,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하는 거야.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 너는 청록의 시간이 연결되는 중요한 교차점이고, 네 모든 행동들은 미래의 시작이 되었으니까.”


재호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도끼를 들었다. 무대에 난입한 관중들은 총을 쏘기 시작했고, 재호는 청록색의 구를 열어 총알을 삼켰다. 마고는 시장을 발로 차서 넘어트리며 떨어지는 권총을 잡았다.


마고와 재호는 광기 어린 인간들을, 수천 번의 생으로 갈고닦은 무공으로 절멸시키기 시작했다. 오클랜드 아레나는 빛과 연기와 폭풍과 함성이 가득했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 자신들을 살려달라며, 마치 좀비 떼처럼 마고와 재호의 뇌를 먹으려고 살기를 띠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좀비가 아니라, 멀쩡하게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었다. 한쪽에서 어떤 인간들은 재호의 시체를 허겁지겁 뜯어먹고 있었다. 장작불은 너울거리고, 붉은 피는 난을 치듯 공중에 뿌려지며, 살점은 꽃가루 폭죽처럼 흩날렸다. 칼과 도끼는 넘실대며 인간들을 썰어버렸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광기의 피날레 공연이었다.


마고와 재호는 달려드는 그들을 베고 자르고, 죽였다. 재호는 한쪽 손으로 청록색의 구를 열고, 인간들을 한 번에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단 한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3114년 5월 10일, 인간은 멸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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