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등장하는 종말은 대부분 인류의 죽음이다. 사실 운석이 떨어지거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한들 지구의 생명체가 모조리 죽어버리거나 지구 자체가 폭발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저 인간이 두려워하는 '종말'은 인류 전체의 죽음이다. 그렇기에 종말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은 인간에게 느린 종말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다룬 블랙코미디다. 어느 날, 스바루 천문대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도 교수인 랜달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궤도 계산을 하던 중,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충돌하게 될 혜성의 위험성을 정부와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국 정부와 반지성주의 국민들이 선동되는 모습들과 함께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 영화는 그저 웃기는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섬뜩한 현실 풍자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부분이 엿보이는데, 그래서인지 미국 내부에서는 평가가 갈리면서 그다지 좋은 평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 영화를 좋지 못하게 평했다는 것'으로도,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 특히 한국에선 과학자들이 이 영화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랜달 민디 박사가 열변을 토한 말들을 정작 실제 미국인들은 심각하게 듣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미국이 종말을 해결하는 결말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감독인 애덤 맥케이는, 이러한 현실 사회 풍자를 경쾌한 재즈음악을 버무려 아주 코믹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코미디 속에 감춰진 섬뜩한 메시지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이 영화의 과학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전문 과학 유튜브가 다루고 있으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많은 부분에 꽤나 현실적인 고증이 들어갔고, 몇몇 부분은 영화적인 표현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종말에 열광하는 시대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종말문학은 <요한계시록>이다. 하지만 사실 <요한계시록>은 원래 성경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대주교 아타나시오가 호모루구메나(경전에 의심이 없는 문서)라고 주장하며 기존 신약성서 목록 26권에 <요한계시록>을 추가했다. 그리고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27권이 확정되며 발표되었다.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앞에서도 무력해지는 인간은,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그 자극적인 텍스트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성경은 <창세기>의 홍수로 인한 종말로 시작해 <요한계시록>의 종말로 끝난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말보다는 그 뒤에 이어지는 신의 약속에 초점이 있으나, 사람들은 자극적인 종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은, 1999년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더불어 시너지를 일으키며 20세기 말을 뒤흔들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666을 짐승의 표시라고 했었는데, 당시에 상품에 붙어 사용되기 시작한 '바코드'가 짐승의 표시라며 의문의 전단지가 마구 돌았었다. 실제로 이마나 팔에 바코드를 새기는 종말 영화가 꽤 나왔고, 냉전시대에서 이어진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맞물려 종말 영화, 소설 등이 유행했다. 한국에선 다미선교회가 그 소문을 근거로, '성경에 종말의 7년 대환란 기간이 있으니 그전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1992년 10월 휴거(선택된 자들이 하늘로 승천함)가 일어난다'라고 속여 신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뉴스데스크 첫 멘트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종말론을 근거로 하는 사이비 종교단체는 지금도 많으며, 엄청난 세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대표적인 것이 신천지다.
종말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다 보니, 소설이나 만화, 영화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가 멸종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부분은 종말 신화와 역사에 근거한다. 종말 신화는 요한계시록 말고도 북유럽 신화, 성경, 힌두교, 마야 문명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0년대 초반에는 로봇이나 컴퓨터가 인간의 종말을 가져오거나 외계인들의 침략이 주를 이루어졌다. 그리고 인간이 멸종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이유로 삼은 것이 '환경보호'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나쁘게 만드는 암적인 존재이니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타노스가, 모든 생명의 반을 멸절시켜 우주를 지키려 하는 '극 환경주의자'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서구권에서 기독교 문화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종말'교리가 종말문학에 더 열광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그것이 그들 안에 내재되어있는 원죄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 열강들은 대항해시대부터,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 문화가 덜 발달된 국가나 부족을 지배하고 노예로 부리며 멸망시키기까지 했다. 그것은 19세기 제국주의까지 이어져 그런 식으로 그들의 부와 문화가 이어져왔으니, 그 원죄로 인해 자신들도 언젠가는 그런 우월한 종족에게 지배받거나 멸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테다. 외계인이 침략해서 지구를 지배하려는 모습은 왜 그렇게나 그들이 제3세계를 지배해왔던 모습과 흡사할까.
현재 유행하는 인류 종말 시나리오는 좀비다. 좀비는 아이티 등에서 믿는 부두교에서 나온 콘텐츠인데, 원래는 주술이나 약으로 인간의 영혼을 빼서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노예로 부려먹는 상태를 좀비라고 불렀다. 그것이 점점 바뀌거 덧붙여지다가, 1968년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에서 지금의 좀비가 완성되었다. 시체가 되살아나 인간을 잡아먹고 흡혈귀처럼 공격받은 인간도 좀비가 되는 현재 좀비의 모습 말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악성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종말이 오는 설정과 상당히 유사한데,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좀비로 바꾸면 악성 바이러스의 공포를 눈으로 바로 체감할 수 있어서 비주얼 콘텐츠에 더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을 잔인하게 죽고 죽이게 하는 고어는 덤이다.
종말 문학의 유행은 이 시대가 평화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능성 있는 종말들
실제로 가능성 있는 인류 종말은 몇 가지가 있다. '태양의 적색거성화', '치명적인 전염병의 출현', '거대 운석 충돌', '기후 변화' 등이다. 과학적으로 이것들은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에 인류가 살아있을지 이미 멸종했을지는 알 수 없다.
태양의 적색거성화
태양은 황색 빛을 내는 G형 주계열성이다. 태양과 같은 G형 주계열성의 일생을 살펴보면, 처음 수소 등과 먼지들이 중력에 의해서 압축해 만들어지고, 내부에서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해 핵융합을 시작한다. 핵융합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빛이 만들어지고, 태양 내부에서 만들어진 빛은 이리저리 태양 입자들에게 부딪히다 10만 년이 지나야 태양 표면으로 나오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이다.
G형 주계열성은 대략 100억 년 정도 빛과 크기를 유지한다. 현재 태양은 약 50억 살로, 딱 절반 정도를 살았다. 앞으로 50억 년이 더 지나면 중심핵의 수소가 고갈되어, 중심핵은 중력에 의해 급격히 수축한다. 이때 증가한 내부 압력은 외핵의 수소도 핵융합을 하도록 만들어 핵융합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태양의 표면을 팽창시킨다. 표면의 부피는 늘어나면서 온도가 내려가 빛이 붉은색으로 바뀌게 되고, 이것을 적색 거성이라 부른다.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면 태양 표면이 지구 궤도 근처까지 오거나, 태양이 지구 자체를 먹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 지구 전체가 종말을 맞이한다. 그렇다. 인류가 아니라 지구의 종말인 셈이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긴 하지만 이는 50억 년이나 뒤의 먼 미래의 이야기고, 그전까지 인류나 생물이 살아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미 적색거성이 되어 삼키기 전에, 태양이 부풀어 오르면서 지구의 온도는 수백 도에 달해 대부분의 생명은 다 죽을 것이다. 만약 인류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다른 살 곳을 찾아 태양계를 떠나야만 한다.
치명적인 전염병의 출현
실제로 무서운 전염병들이 인류를 위협한 적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페스트와 인플루엔자(독감)인데, 이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해서, 전염병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로 오면서 세계는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이러스의 전파를 더욱 빠르게 만든다.
90년대에는 에이즈나 에볼라가 가장 위협적인 바이러스라고 여겨져서 그것에 대한 영화도 곧잘 나왔다. 하지만 에볼라처럼 숙주를 빠르게 죽이는 바이러스는 위협적이긴 하지만 생각만큼 전염성이 강하진 않다. 숙주가 살아서 계속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바이러스에게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 보통 치명률은 낮아지고 전파속도는 더욱 커진다.
현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SARS-CoV-2, COVID-19)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더 커졌다. 코로나19가 예전 메르스 때만큼 치명률이 높지는 않지만, 치명률과 전파력이 절묘해서 꽤 많이 감염시키면서 치명률도 어느 정도 높아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오미크론까지 변화한 추이를 보면, 역시 전파력은 커지고 치명률은 낮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고 오미크론은 전파력이 너무 강해서 치명률이 낮더라도 사망자 수가 계속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켄타우로스처럼 기존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한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 다시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세계에 드리워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잊고 있지만,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도 긴장해야 할 주제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박테리아(세균)와 바이러스는 굉장히 다르다. 박테리아는 세포로 되어있는 단세포 생물이고,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작으며 스스로 생명활동을 하지 않는 존재다. 비유를 들자면 박테리아는 호객 행위하는 사람, 바이러스는 길에 뿌려진 전단지다.
박테리아는 항생제로 죽일 수 있는데, 항생제를 계속 사용하면 박테리아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또 다음 세대의 항생제를 만들어 박테리아를 죽인다. 예전에는 '마이신'이라 부르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많이 처방했지만, 이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항생제를 굳이 처방하지 않는다. 현재 항생제는 5세대까지 나와있다. 하지만 이 항생제들이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지금 잠깐 잊고 있지만,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도 그 정도에 따라 충분히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앞으로 나올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 박테리아가 나온다면 종말을 피할 수 없다.
거대 운석 충돌과 기후 변화
운석은 실제로 지구에서 몇 번이나 생물의 대량 멸절을 가져왔다. 지구에는 총 5번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앞의 4번의 대멸종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고, 마지막 백악기에 일어난 5번째 대멸종은 운석 충돌이 유력하다. 사실 운석 충돌도, 운석 충돌이 가져오는 기후 변화가 대멸종을 가져오므로 운석 충돌도 기후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허황된 SF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으므로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큰 일들이다.
소행성, 운석, 혜성의 충돌은 충돌이 일어난 지점뿐 아니라, 그 여파로 일어날 해일과 지각변동, 토양 파편과 먼지로 인한 햇빛 차단, 그로 인한 빙하기 도래 등이 급격한 기후변화를 가져온다. 대량 멸절이라고 해서 순식간에 번쩍하고 다 죽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몇백, 몇천 년에 걸쳐 서서히 주류 종들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 따라서 생물의 수가 감소하고 많은 종들이 멸종하게 되지만, 지구라는 행성만 온전하다면 생명은 다시 살아나 번식하고 적응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있는 또 하나의 기후 변화로 인한 종말은 '지구 자기장의 변화'다.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아주어 방사능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고, 지구가 대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구의 자기장은 내부의 핵에 있는 철이 회전을 하며 생기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어떤 변화로 인해 자기장이 변하거나 없어진다면 대기는 태양풍에 의해 날아가고, 생물들은 방사능 폭풍과 함께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고 산소로 호흡하는 생물은 다 죽을 것이다. 자기장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은 화성이다. 화성의 중력은 대기를 가질 정도로 충분하지만, 자기장이 없어서 거의 다 날아간 상태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고 가장 위협적인 기후변화 종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장 무시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석탄과 석유를 엄청나게 소비하면서 지구의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뿌리고 있고, 이산화탄소는 열을 가두어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온도 변화를 지구의 빙하기처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라고 하며 지구 온난화는 정치적 용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지난 2000년간의 기온을 보면,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는 그 경향성에서 크게 벗어나 상승하는 중이다.
지구 자기장의 변화로 인해 종말이 온 모습이 화성이라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종말의 모습은 금성이다. 금성은 대기의 96%가 이산화탄소이며 기압은 90 기압으로, 온실효과에 의해 지표 온도는 섭씨 459도다.
'지구온난화'야 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10년 ~ 30년 내외로 인류가 바꾸지 않으면 막을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가버린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종말, 대멸절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가장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 점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종말의 무서움이다. 그리고 <돈 룩 업>은 그런 '느린 종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맹목적인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위험성
보통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이렇게 진행된다. 긴박하고, 시간이 부족하며, 인류는 패닉이 온다. 정부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결국 국민들이 사실을 알게 돼 민심이 폭발하고 무정부 상태가 된다. 일반적인 종말 콘텐츠는 그런 무정부의 상태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그러다 결국, 인간들은 주로 미국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종말에 맞서고, 어느 정도 해결해낸다. 미국식의 인간애와 자유주의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하지만, 영화 <돈 룩 업>에서 감독이 말하는 진짜 인류의 위기는 종말을 종말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반지성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이 영화의 개봉된 시점이 2021년 12월이라서,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는 미국의 모습이나 트럼프를 풍자한 거라고 생각기 쉽다. 하지만 영화 제작 시점에서 코로나19는 퍼지기 전이었고, 감독은 사실 환경문제, 지구온난화를 빗대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트럼프가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환경문제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코로나가 터지자, 트럼프는 바이러스 음모론을 퍼트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대본을 더 현실에 맞춰 수정했다고 한다.
주연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 영화가 환경문제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UN 평화사절로 연설을 하거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소감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환경운동에 힘 쏟고 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랜달 민디 박사의 대사들은 그래서 더욱 절박하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가? 아무리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지금 정말 위험한 상태'라고 외치고 있고, 남극 얼음과 빙하가 녹고 있으며, 제트기류 이상으로 이상기후들이 해마다 나타나고, 섬은 잠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에어컨을 빵빵하게 쓰며, 휘발유 자동차를 운전하고, 석탄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국지적인 호우나 폭염, 폭설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다지 큰 경각심은 없다.
영화 속에서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고 종말이 온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대중들은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우스갯소리처럼 초반에 지나가지만, 거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종말이 온다고 외쳐댔던 '사이비 종말론자'들의 목소리에 내성이 된 정부도 한몫을 한다.
SF영화는 크게 자유주의의 종말과 인류의 종말을 다룬다. 냉전시대에 많이 쓰인 SF들은, 공산주의 사회에 자본주의(자유주의)가 잠식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많은 고전 SF들은 디스토피아를 획일화된 사회, 개인과 자유가 말살된 사회로 그리고 있다. 오로지 자유만이 가장 좋은 가치이며, 인간을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고 지난 수십 년간 외쳐왔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통제에 따라야 함에도, 마스크를 벗는 것이 개인의 자유이자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군다. 국가의 통제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동양에서는 그런 서양의 모습을 보고 '무식하다' '개인주의적이다'라고 생각하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그런 가치를 수십 년간 주입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것이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스스로 얻어냈던 자유는, 냉전시대를 거치며 더욱 지켜야 할 가치로 바뀌어 미디어에서 외쳐댔다. 냉전시대가 만들어낸 가치의 산물이, 이제는 인류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동양에서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보통 공동체주의가 퍼져있다. 개인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계인과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즉 전시상황인 것이다. 전시상황에 국가의 올바른 통제를 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외치기만 하는 쪽은, 전쟁에서 몰살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수는 선진국 가운데서도 어마어마하게 높다. 한국은 2022년 블룸버그에서 선정한, '코로나19 회복력 순위' 마지막 평가에서 1위를 했다.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는 '평평 지구론'이 인기를 끌었는데, 평평 지구론은 현대에 가장 대표적인 반지성주의다. 미국은 여전히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등하게 가르치며, 성경의 나이대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젊은지구론도 제7일 안식교, 즉 미국에서 나왔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영국에서는 5G 중계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며 불태우는 일이 있었다. 혐중 정서와 반지성주의 음모론이 결합해 생기는 일이다. 특히 특정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백신이 인간을 조종하거나 빌 게이츠가 사탄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오래전부터 돌았다. 이전에 바코드가 악마의 숫자 666이었다면, 지금은 백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신을 맞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독 환경주의자들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환경주의자들을 '환경만 생각하고 인류는 죽이고 싶어 하는'사람들로 만들었으니,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닐까? 영화들은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지'로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니까. 할리우드 영화는 자극을 쫒다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고, 일반 사람들을 극 자유주의, 개인주의자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대재난이 일어나면 인간들은 패닉을 일으키고 약탈하고 서로 싸우며 살 것처럼 그리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처럼 그리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맹목적인 자유. 개인주의나 비과학적 음모론에, 영화와 같은 미디어가 준 영향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것은 느리게 진행되는 종말이다
<돈 룩 업>에서 혜성은 위험하고 심각했지만 운이 좋게도 상당히 일찍 발견했고 해결할 시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권력다툼, 이권 싸움, 정치적으로 변질된 종말 위기 등이 상황을 자꾸 악화시켜간다. 여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인가? 아니다. 바로 느린 종말 덕분에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 또 반지성주의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들 자체가 문제다.
2차 대전 전후로 과학자들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우주의 많은 것을 알아냈다고 자부했으나, 오히려 지금은 '마스크를 써라' '백신은 생명을 지켜준다' '지구는 둥글다'와 같은 아주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목이 터져라 울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지경이다.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려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음모론을 퍼트리는 집단이 존재한다면 위기는 더욱 커지게 된다. 어째서 21세기에 '바이러스는 기도로 막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 모여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소금물을 뿌리고 기도를 하고 앉아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론, 과학자들의 논문의 신뢰성에 대해 과학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있다. 하루는 커피가 안 좋다고 했다가, 하루는 커피가 좋다고 했다가를 1년 내내 반복한다. 과학에 대한 기사인 줄 알고 읽다 보면 병원이나 약을 홍보하는 기사다. 과학도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사실 특정 기업에서 돈을 주고 과학자들에게 논문을 의뢰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경우는 그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논문을 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으면, 어느 그 논문을 의뢰하거나 게재된 곳이 무엇인지, 영화에서 나오듯 동료심사가 이루어졌는지,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다른 곳에서 같은 실험으로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등 확인이 필요하다. 실제로 검증받은 논문이 되려면, 논문이 게재된 이후에도 과학자들에게 검증받으며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에서도 혜성을 폭파시키려고 하는 기업이 나오는데, 그 기술이 동료심사가 되지 않아 디카프리오는 매우 걱정한다.
그 정보를 누가 생산했는지, 그가 그것으로 얻을 이익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반대쪽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는 영화 속 운석이나 외계인, 좀비에는 그토록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종말에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까. 현실에서 가장 당면한 종말은 지구온난화다. 실제로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6차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고, 5차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공룡인 조류는 5차 대멸종보다 지금 현재 더 빠르게 멸종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아직도 그 종말을 종말이라 생각지 않는다. 디카프리오가 민디 박사의 입을 빌어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방송 카메라에 대고 하는 대사들은 모두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다.
환경운동가인 디카프리오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외치고 있다.
지금 이미 진행되고 있는 종말에 관심을 좀 가지라고.
"우리끼리 최소한 그런 합의가 되어있지도 않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시청자 중에 많은 분이 지금 이 말도 안들을 거예요.
본인들만의 정치 이념이 있으니까!"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