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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Sep 01. 2019

남은 한 해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

읽기만 하면 전혀 효과가 없는 무공 비급

'화산전생'이라는 무협 소설이 있다. 무협 소설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화산검파의 한 장로는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직감하고 쓸쓸한 독백을 날린다.

그다지 의미 있는 삶은 아니었어...


고아출신으로 평범한 재능을 가졌던 주인공이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적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니 놓쳤던 기회들과 해보지 못한 것들이 아쉬워서 후회 속에서 천천히 숨을 거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숨을 거두는 듯이 눈을 잠시 감지만 누가 깨우는 소리에 이내 눈을 다시 뜨게 된다.


어라? 뭐지?


주인공이 어리둥절하며 일어나 보니 어릴 적 돌아가셨던 스승님이 곁에 있고 자신은 8살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물론 여느 무협 소설처럼 말도 안 되는 스토리지만, 천수를 누린 경험과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주인공은 마치 현재의 주인공이 100세의 주인공에게 조언을 받는 것처럼 타이밍에 딱 맞는 행동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의 지식과 경험으로 과거로 돌아가면 저 달라질 수 있는데요.


한마디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는 신박한 소설이다. ㅋㅋ (소설이 궁금한 사람은 카카오 페이지를 참고하자.)


우리가 80세의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서 조금씩 18세 소년으로 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 마크 트웨인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원 시절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집단상담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 타임머신 기법은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현재의 내가 미래로 가거나 미래의 내가 현재로 올 수 있다.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보면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거나 지금 필요한 조언을 얻는 것이다. 먼저 이 글에서는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보러 오는 실습을 함께 해보자. 


1.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알고 있는 호흡법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2. 평균 수명을 고려하여 생의 마감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3. 거동조차 힘들어서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20xx년, 현재의 나를 만나러 왔다. 
4. 무슨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할까?


제발 그 인간하고 결혼하지 마. 


ㅋㅋㅋㅋ 물론 이런 극단적인 조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따뜻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할머니가 00년에 돌아가실 거야, 더 자주 뵙고 전화 많이 드려.
- 둘째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엄마는 항상 빨리, 빨리라고만 했잖아.'라는 말을 할 거야. 살살해.
- 팀장까지 승진은 초고속이었지만, 20년 팀장하고 팀장으로 은퇴할 거야. 애쓰지 마.
- 늦었다고 생각해서 결국 시도조차 안 했지만 디자인 공부도 했으면 좋겠어. 



1. 영화처럼 이야기가 끝나고 미래의 자신이 돌아가면 눈을 떠서 나눴던 이야기를 종이에 적는다.
2. 종이에 적을 때 문장과 문장 사이에 한 줄씩 공백을 둔다.
3. 빠짐없이 다 적었으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천천히 다시 읽어본다.
4. 이제 나눴던 이야기에서 실천할 '촛불 리스트'를 공백에 적는다. 다른 색의 펜을 사용하면 더 좋다. 
5. '일상행복촛불', '변화도전촛불' ... 각 촛불은 당신의 생각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 둘째 아이에게 미소와 함께 '천천히 해'라고 매일 아침 이야기하기
- 매주 수요일 저녁 할머님께 전화드리기
- 아내에게 고마운 20가지를 적어서 멋진 레스토랑에서 읽기
- 다음 학기 인생학교에서 디자인 강의 수강하기 


미래의 나를 만나고 촛불 리스트까지 만들었다면 마지막 단계는 '만든 촛불의 절반만 켜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초를 켜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만 켜려고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주어진 과제를 완료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관한 예측이 낙관주의적 편향을 불러일으키고 그리 인해 예상 소요 시간을 낮춰 잡게 되는 현상'으로 묘사했다.
- 피니시, 계획의 오류 재인용


죽음에 임박한 미래의 자신도 하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리스트를 만든다고 쉽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무리하게 모든 초를 켜려는 시도는 삶에 큰 화재를 불러올 수 있다. 반드시 정확히 절반의 촛불만 켜려고 하되, 그 보다 적은 초를 켜는 것도 허락하지 말자. 



아.. 이거 알아요. 비슷한 것 해봤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요.
호흡이나 명상은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리스트까지 갔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집단상담 세션에서 이 기법이 진행되면 반응이 실로 다양하다. 방법은 간단하다는데 삶에 녹이는 것은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다. 그래서일까. 심리학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정해진 각본처럼 살아간다는 '인생 각본'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만큼 삶의 패턴은 바꾸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 자신이 살아가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어린 시절 초기에 결정한다. 그러한 계획을 각본이라고 한다.
- 에릭 번, 심리학자


그래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인생 각본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남은 올 한 해 정도는 알차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무공 비급을 풀어본다. 글의 부제에서 이미 밝혔지만 이 비급의 이름은 '읽기만 하면 전혀 효과가 없는 무공 비급'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글로 나는 당신의 남은 2019년을 응원하고 싶다.  


삶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
- 토머스 헉슬리, 영국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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