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책을 받은 날, 아이의 반응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를 출간하기까지

by 니나

“글 쓰는 거 자기만족 아니에요?”

미국에 거주했을 때 아침이면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고 그림책 에세이를 한 달에 한 번 쓰기 시작해서 일기를 쓴 지도 어느덧 몇 년 차. 한국에 있을 때는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미국에서는 만날 사람도 가야 할 모임도 없어서 출근과 등교로 가족을 다 집 밖으로 보내고 나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용기가 없어서 미루고 있었던 한겨레 동화 작가 강좌를 신청해서 6개월간 매주 화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수업을 듣고 혼자 있을 때는 동화를 썼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동화는 손도 못 대고 있는데, 매일 3시간 이상 ‘동화’라는 것을 써보려고 애썼던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동화를 쓴다고 해도 출판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출판될 때까지 도전 또 도전을 하다가 몇 년이 지나갈지도 모른다. 출판을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만 그중에서 될 때까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만약에 출판이 된다고 해도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글을 쓰느라 ‘돈 되는 일’을 하지 않았던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 그러니 ‘글 쓰는 일은 자기만족’이라는 지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떨어졌다. 나 자신이 무용한 사람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세상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떠서 따지 못할 별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응, 글 쓰는 건 자기만족이지. 그런데 그게 왜? 자기가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니야? 누굴 만족시켜야 하는데?”

나 혼자만 좋자고 내가 글을 쓰는 건 아닌지 몰라, 하고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대답했다. 좋아하는 일이면 그냥 하면 되는 거라고. ‘출판이 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재미있었으니 좋았어!’라고 생각하라고.


난 희생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희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부담스러웠다. 갚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다. 만약 엄마가 되면 절대 자식이 느끼기에 희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이들이 좋아해도 내 몫까지 양보하지 않기, 시간을 꼭 확보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아이들이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하기, 생일 선물 꼭 받기, 나를 위해서도 돈을 쓰기.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운동 자격증을 땄고, 책을 사고 뭐라도 쓰기 위해서 도서관과 카페를 기웃거린다. 좋아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고(그 일도 보람이 있어서 기운을 북돋아 준다), 뭐라도 쓰고 싶은 사람들과 모여 각자 쓴 것을 읽는 모임에 나간다.


그렇게 살다 보니 책이 나왔다.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내 책!

“엄마, 난 엄마 책 안 읽을 거야. 내 추억을 엄마의 추억으로 덮고 싶지 않아.”

“그러면 너도 너의 기억을 글로 남겨! 나중에 네 추억이 희미해지면 엄마 책 읽고 싶을걸.”

아들은 여전히 내 책을 근처에도 두지 않는다.

“엄마, 오빠 나쁘다. 그지?”

딸은 책을 받자마자 학교에 가져가서 읽고 차에서도 읽고 집에서도 읽고 후딱 다 읽어버렸다.

“엄마, 신기하다.”

“학교 도서관에 책 신청해 줄래? 선생님들이 읽고 여행 가기 좋은 책이야.”

딸은 당장 엄마 책이라며 학교 도서관에 신청했다.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책 사진에 자기 뒷모습이 있는데 누가 보는 것이 싫단다.


이제 엄마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탁탁 두드리는 건, 주말 아침에 뭐라도 써보겠다며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서는 건 아이들에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노트북을 벗 삼아, 아들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딸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바쁘게, 남편은 부족한 수면 보충을. 그렇게 우리는 각자 또 가족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keyword
이전 08화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