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포비아

by 양양

나는 정말 그랬습니다. 결함도 결핍도 없었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봤고, 무한한 칭찬을 주었습니다. 늘 사랑받는 외동딸, 맨 앞자리를 유지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왔습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밤을 새웠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 한 번 내본 적 없었습니다. 심지어 밀가루 음식은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빈틈이라도 느껴지는 날에는 일기장에 구멍이 날 정도로 반성문을 써댔습니다.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눈길을 보낼 때마다 우월감을 느끼곤 했지만 거짓말은 이미 습관이 되었습니다. 항상 어깨를 펴고 고개를 쳐들고 당당히 걷곤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완벽한 인간인지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에 시달렸습니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더욱 뼈저리게 체감하고만 싶은 간지러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유형의 인간이 있고 나 역시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뿐입니다. 한 번 누군가의 기대를 받기 시작하면 마치 감옥처럼 그곳에서 나갈 수 없게 되고 이미 무결함의 인간이 됩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온몸에 자리 잡은, 나를 삼키고만 이런 가시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20살에, 명문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는 학교였지만 역시나 조금의 실패도 없이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얼른 배우가 되어서, 나의 이 완전무결함을 세상에 보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못된 마음이었나요. 욕심의 밑천이었나요. 기대감을 한껏 안고 듣게 된 첫 연기 수업에서 저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윤희? 그래. 뭐, 외모도 출중하고 연기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네. 수석 입학한 이유는 알겠어. 근데 윤희 너, 운동 능력은 전혀 없구나? 배우 하겠다면서 몸을 전혀 못 쓰네.”


까만 동공과 한쪽만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중간중간 비웃음이 섞인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만 싶었습니다. 손끝부터 떨려오기 시작하면서 눈에서 차례차례 실핏줄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가 쓰라렸고요. 그건 내가 살면서 받은 첫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복숭아뼈에 작은 가시가 돋아났다는 걸.


다시는 지적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치가 떨렸습니다. 마치 자존심이라는 장기 하나가 손상되어 핏덩어리가 쏟아지는 듯이. 그 사람이 자신의 말을 후회하고 나를 인정해 주는 상상을 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운동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몸무게가 5킬로 넘게 빠졌고, 극심한 운동으로 인해 단백뇨가 나올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발목의 가시는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미세하게 커져갔습니다. 가시가 자랄 때마다 지적받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변화에 칭찬은커녕 또다시 시니컬한 말투에 실소를 섞어 지적했습니다. “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앵앵거리지? 묵직함이 없잖아. 너도 알지?”


이번엔 묵직한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발성 연습을 시작했고, 가시는 점점 발목, 종아리, 허벅지까지 면적을 넓혀갔습니다. 목소리 다음은 치아의 생김새, 좁은 어깨, 점의 위치까지. 나 자신은 부정당했고, 그 사람 앞에 설 때마다 가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무섭고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적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완벽 저편에는 더 완벽한 완벽이 있고, 그곳에 도달해 가는 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목표도 결과도, 동기도 없이 과정만 있었습니다. 자아가 소멸된 채 껍데기만 남은 느낌. 이게 내 솔직한 마음입니다.


어느새, 그 사람 덕분에 기어코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고작 가시 덩어리일 뿐. 모두 소용없습니다. 크고 덩어리 진 가시들, 미세하고도 날카로운 가시들. 복숭아뼈부터 시작된 그 가시는 이제 내 정수리까지 도달해 있었습니다. 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눈빛은 불안에 가득 차 어딜 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 가시에 내가 찔리는 듯한 고통에 괴로웠습니다. 몸은 점점 부풀어갔습니다. 언제나 가시를 세우고, 누군가가 나를 또 지적이라도 할까 봐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모두가 나의 실수를 바라고 나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루는, 조금만 빨리 걸어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뚫어내고 나는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지적을 멈춰줘. 나를 인정해 줘. 무한한 칭찬과 사랑을 줘. 바르르 떠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나의 목구멍에서는 커다란 침이 불규칙적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두어 번 정도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를 몇 번 내고는 말했습니다.


“윤희. 이제는 몸도 정말 잘 쓰고 목소리도 참 좋아졌네. 아랫니도 가지런해지고 바른 자세의 어깨에, 점까지 뺐어. 대단한 녀석이야. 인정해. 하지만 너는, 너무 완벽하려고 해. 그게 너의 가장 큰 문제야. ”


아, 깨닫습니다. 나는 애초에 무결함의 인간인 적 없었습니다. 되려 결함과 결핍이 너무 많아 모두 메꾸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저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많은 발버둥을 쳐왔을 뿐입니다. 한 번 발견된 결함은 그동안 참아왔다는 듯이 밀려옵니다. 무수한 콤플렉스와 완벽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아, 나는 부러워했습니다.

적당한 부족함을 가지고 큰 기대를 받지 않는 이들. 초등학교 시절 뒷줄에 앉아 지우개 따먹기를 하던 시시한 아이들. 인생의 목표가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평범히 살고 싶다던 친구들. 그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터져버렸고, 그 자리에는 무수한 가시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게 내가 들은 마지막 지적이었습니다. 나는 가시만 남기고 비로소 해방되었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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