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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일지 (2)

2023. 08. 14부터 2023. 08.19까지

by 양양

<2023. 08. 14>


(1)


어제는 그래도 잠을 좀 잤다.

역시 커피가 문제였나?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건 항상 버겁다.

오늘은 야경 투어가 있는 날이라

밖에서 늦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체력관리도 잘해야 한다.

오늘 점심에는 유명한 맛집 <사우다드 콘달>에 왔다. 처음으로 타파스를 먹어봤는데,

맛있는 음식에 그렇지 못한 가격..

그래도 꽤나 럭셔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꿀대구도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맛있었고,

오리 가슴살 요리도 맛났다.

'클라라'라고 하는 레몬 맥주도 시도해 봤다.

맥주 맛이 강할 것 같았는데, 레몬 맛이 잘 어우러지며 시원한 게 맘에 든다.

스페인에 와서는 매일 같이 음주 중인 것 같네.

내가 그리 술에 강하지는 않은데..

좀 조절해서 마셔야겠다.

뭐든 마무리가 중요하다는데,

확실히 여행을 시작한 지 오래되다 보니

이젠 파우치도 망가지고, 버려야 할 것들도 많아지고, 포기한 것들도 많아지고. 많이 흐트러졌더라도

집에 돌아갈 때까지는 절대 사고 나지 않도록

정신줄을 붙들어 매야 한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이제 미뤄왔던,

한국에 돌아가서의 일상을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오래 도피해 있었으니.

한국에 돌아가서 현타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유럽여행에서 얻은 여러 경험들을 발판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더 이상 상상 속에서, 생각 속에서만 꿈꾸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2)


야경보기까지 시간이 꽤나 남았다.

스타벅스에서 시간 때우는 중..

남은 6일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별로 안 남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유럽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을

잘 실감하고 있지 못하나 보다.


현실로 돌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별로일까?

나는 돌아가서 힘을 되찾고 달려갈 수 있을까?

여러 고민과 걱정들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분명 아무나 하기 힘든 경험을 해본 것은 맞다.

다만 이 경험의 결괏값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는 일인 거다.

그냥 한 여름밤의 꿈처럼

영영 추억거리로 남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애써야겠지.


가끔은 너무 젊음의 한복판에 있는 내가 부담스럽다. 아예 어린 나이거나 혹은 나이가 들면 인생에 있어

그리 치열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길 텐데. 지금의 나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누군가와 비교하며 다치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과정의 반복을 지나고 있다.


(3)


정신없는 여행도 있다.

느긋하게 멍 때리는 여행도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마음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보다 떠돌이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 빠른 사람도 있고,

걸음이 느려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파티와 축하로 가득한 생일도 있다.

반면에 무난히 소소하게 지나가는 그런 생일도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반드시 그렇게 흘러가야만 하는 것도 없다.

다른 이들의 기준에 나를 맞대어보면

당연히 맞지 않을 수밖에.

우리는 모두 다양한 모양을 지닌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언제나 나의 것을 잃지 않기를.

나의 여행 스타일, 나의 말투, 내 까무잡잡한 피부,

내 고민들. 결국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4)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막연히 이 두 달 반이

내 삶을 바꿔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조금 소심하고, 찌질하고,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지만 더는 바꾸려고 하지 않겠다.

내 방식대로, 내 방법대로

삶은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말도 안 되는 날들이 올까?

내가 꿈꾸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누구와 비교해도 나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고,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고.

내가 지나온 모든 과정들이

다 보답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결국 이게 맞았구나.

내가 맞았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는.

그런 날은 오기 힘들겠지?

내 상상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으니까.


<2025. 08. 15>


(1)


어제 야경투어는 정말 좋았다.

야경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는 게 재미있었다.

몰랐던 부분들까지 다 알게 될 수 있어서!

바르셀로나의 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에어비앤비 주인아주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금 10시 38분이라고.

집에 10시까지 와야 된다부터 시작해서...

어디냐고 계속 물어보고..

들어오니까 시계 딱딱 가리키면서 눈치 주고.

정말 말 그대로 짜증이 났다.

여기가 무슨 기숙사도 아니고,

나도 내 돈 내고 온 고객인데 통금시간이 있는 건 뭐지?

애초에 이렇게 간섭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남은 시간 쭉 같이 있어야 하는 게 불편하다.

심지어 19일 체크아웃을 오전 10시에 하란다.

원래는 오후 1시인데. 이건 또 무슨?

정말 짜증 나서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짐은 맡길 수 있다고 하길래 짐만 맡기기로 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또 짐을 못 맡긴다고

말을 바꾸는 게 아닌가.

화를 꾹 참고 알겠다고 했더니,

자기 친구 집에 맡기라고 하고.

내가 친구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공항 9호선이라는 소리만 하고.

분노를 삭이느라 죽는 줄 알았다.

19일에 어쩌지?

당연히 짐 맡기고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고민거리만 더 늘고 말았다.


(2)

정말 지친다. 며칠밖에 안 남은 거 잘 알고 있지만

이 며칠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식당에 와서 주문하는 것도,

관광지에서 사람에 치이는 것도,

내 여러 가지 것들을 다 신경 쓰고 책임지는 것도.

얼른 집에 돌아가서 마음 편하게 쉬고

내 많은 것들을 회복하고 싶다. 제자리를 찾고 싶다.

눈 아파서 렌즈도 못 끼고 머릿결도 많이 상했다.

원래 다 이런가?

아님 내가 너무 부정적이고 예민한 걸까?

당장 내일이라도 집에 가고 싶다.


(3)


모두들 활기차게 해수욕을 즐기고 태닝 하고,

보드를 타는 이 해변에서

기운 쪽 빠진 채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기운이 없다.

더 이상 사람에 치이고 싶지도 않고

열정적으로 여행을 즐기고 싶지도 않다.

그냥 조용히 어디선가 쉬고 싶을 뿐이다.

물론 이 해변에는 쉴 곳도 없다ㅜㅜㅋㅋ.

돗자리는 가져왔는데 펼 곳이 없어서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있다.

심지어 휴대폰 배터리도 없어서 휴대폰도 볼 수 없다. 다들 어쩜 그렇게 익사이팅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즐기는 거야!

난 모든 게 버겁고 외롭기만 한데.


나도 혼자 오지 않았다면 저랬을까?

맛있는 걸 잔뜩 시켜서 나누어먹고,

어딜 가든 쪽수에 밀리지 않고,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고변수가 생겨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머리로는 정말 잘 알아. 이제 정말 얼마 남지도 않았고, 지금 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치고 힘든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

그런 거잖아.

하지만 이런 내 마음조차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내 문제를 아무도 알아주거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오롯이 모두 내 책임이라는 것.


(4)


스타벅스에서 휴대폰 충전 중..

정말 매일같이 스타벅스에 와서

충전하는 게 너무 웃기다.

그래도 해변에서 1시간 정도 물멍하니 만족스럽다.

이제 조금 마음이 추스러진다.


물론 헤쳐나가야 할 관문이 매우 많지만 뭐 어쩌겠어. 다 어차피 해내야 할 일들이라면, 울지 말고 하자.

아니 울면서도 하자.


인생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큰 결핍 없이, 큰 고난이나 불행 없이 흘러간다면..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그런 팔자는 아닌 것 같다.

무슨 법칙이 있는 것 마냥 잘 풀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마다 내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

에너지가 있을 때는 이겨내 볼 힘이 생기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그저 아무것도 못하겠고

포기할 생각만 든다.


가끔은 내 욕심이 과한 게 아닌가 싶다.

만약 정말로 모든 사람의 팔자가 정해져 있다면,

나는 분명 배우로 살 팔자는 아니다.

마르고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넌 연예인을 해야겠다며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끼가 넘쳐서 톡톡 튀는 애도 아니고..

인기가 많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익숙한 애도 아니다.

그저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남들보다 예민한

찌질하고 소심한 나이다.

아마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나 스스로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고

내 안에는 잠재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걸 누군가 알아줄 거라 생각하고.

그게 다 허상인 것도 모르고 말이야.

사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배우를 꿈꾸는 모두가 다 하는 생각인데.


그렇지만.. 그래도 난 여전한 걸.

나는 볼품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해도.

나 스스로가 소중하고 애틋한 걸.

잘 되었으면 좋겠고,

내 연기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다양한 삶을 살고, 사랑을 받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할 뿐이다.

차라리 교과서처럼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교본이 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얼마나 울고 깨지며

나와의 싸움을 하게 될지 상상하면 겁이 난다.

아니지. 그건 차라리 낫지.

사실 지금의 나는 그 싸움이 두려워서 도전도 못하고

매번 입으로만 떠들어대고 있잖아?


그리고! 착하게 살 필요 전혀 없다.

음 그러니까, 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굳이 애써가면서..

내가 배려하고 챙겨줘도 아마 반도 돌려받지 못할 거다내가 해준만큼 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마음이 상할 거라면,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나를 지키자.

나를 정말로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내가 애쓰지 않아도 나를 알아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그리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잘못이다. 받은 만큼 돌려줄 줄 모르는 사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다정과 배려가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애써서 챙기지도 말고,

타인의 태도에 신경 쓰거나 상처받지도 말고.

그럴 시간에 나에게 더 잘해주길.

나에게 더 다정하고, 다독여주고.

나는 맨날 다른 사람에게만 다정하고,

스스로에게는 친절할 줄을 모르니.

타인에겐 좀 더 불편한 사람일 필요가 있고,

나에게는 좀 더 관대해지자.


<2023. 08. 16>


(1)

오늘은 드디어 기대하던 보른 지구에 왔다.

원래 아침에 츄러스 맛집에 가려했는데

왜인지 문을 닫았길래

바로 <토스카>에 밥을 먹으러 왔다.

오늘 호프만 베이커리도 가야 하고,

올리브유도 사야 하고, 암튼 매우 매우 바쁠 예정이다. 오늘이 지나면 시체스 여행과

기념품 쇼핑 데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정말로 4일밖에 남지 않은 거다.

남은 시간 동안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제대로 즐기자.


(2)


지금이 스페인의 휴가기간일 줄 누가 알았겠어.

츄러스 집도 문을 닫고..

그토록 기다리던 호프만 베이커리도

휴가를 떠나셨단다.

오늘 살 것도 많고, 갈 곳도 넘쳐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일정이 너무나도 빨리 끝나버렸다.


그리고 <노마드커피>도 드디어 와봤는데

내가 생각한 느낌의 커피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더더 찐 힙쟁이들만 오는

그런 카페였던 것이다.

자리도 별로 없는 게 뭐랄까

성수동의 한 카페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갑자기 또 스타벅스가 그리워진다.

그래도 뭐 이왕 온 김에 나도 한 번

힙스터마냥 굴어보련다.

심지어 한 여자분께서

내가 노트를 쓰고 있는 걸 사진까지 찍고 계시다.

부끄부끄.


아직도 숙소에 가려면 5시간은 남았는데

그동안 대체 뭘 한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하루가 이렇게나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늦잠을 안 자서 그런가?


(3)


부모님이 참 많이 보고프다.

아까 점심 먹는데 라디오를 들으니,

문득 작년 9월 즈음 내가 외할머니 댁에서

김치를 들고 오고 있다고 아빠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생각으로 또! 또! 눈물이 차올랐다.

이젠 왜 이러는지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한테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참 크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는 더욱 그렇다.

친구나 애인은 언제나 조금의 거리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고,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정도는 아니다.

반대로 그들 역시 나에게

무엇이든 다 해줄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아깝다고 느끼겠지.


이렇게 기념품을 사면서도

온통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것들만 떠오르니.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가족이다.

그동안의 고생을 내 힘으로 끝내드린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

나를 끝없이 믿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꼭 드리고 싶다.


(4)

맥주를 마시니 얼굴이 뜨겁고 덥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

다음부터는 진짜 술 안 마셔야지!


방금 든 생각인데,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했거나

깊이 좋아했거나, 진득이 한 것들은

모두 나중에 좋은 기억이 되는 것 같다.

예컨대, 질리도록 들었던

'빅스'와 '이승윤'의 노래라던지.

고딩 때 늦게까지 스터디 카페에 있거나

롯데리아에서 공부했던 기억이라거나.

모든 경험은 좋은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렇듯 뇌리에 깊숙이 박힌 기억은

참 반짝이고 소중하다.

왜냐하면 모든 기억들은 대다수 휘발되기 때문이다.

10의 기억이 있다면 오래도록 깊이 남는 건 한 2 정도? 그래서 그 2의 기억은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후에 돌아봤을 때,

내 두 달 반의 기억들 중 몇이나 남을까?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날은 온다.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흐른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 좋든 나쁘든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2023. 08. 17>


(1)


어젯밤에는 또 악몽을 꿨다.

자연재해(?) 사고가 나서 다 같이 대피를 한 후

벌벌 떨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있어서

부모님께 간신히 전화를 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를 않더라.

나는 엄마 아빠가 사고를 면치 못했다는 걸 깨닫고

정말 대성통곡을 했다.

꿈에서도 앞으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행히 꿈이라는 걸 깨닫고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자, 아무튼 오늘은 시체스 근교여행을 왔다.

역시 기차 알아보고, 타는 건 우여곡절 투성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무사히 도착!

일단은 밥부터 먹으러 왔다.

과감히 문어와 새우를 시켰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돈 생각하지 말고 지르자.

맛난 거 잔뜩 먹고, 물멍을 좀 때려야겠다.

시체스야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이제 정말 내일모레면 유럽여행이 끝난다.

실감이 잘 안 난다.

집에 가서 편해지면 기분 정말 이상할 것 같다.

그렇지만 좋아... 빨리 집에 갈래...

집으로 돌아가면 정말 푹 쉬고,

몸도 회복하고 하반기의 나를 준비해야지!

(2)


시체스 참 아름답다.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수영을 즐기는 사람.

참 다양한 모습으로 즐기고 있다.

사실 바르셀로나에 온 이후로는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근교 여행을 가는 것도

일처럼 느껴졌었는데

엄마의 추천을 받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제 또 스페인의 이런 바다에 와서

값비싼 밥을 먹고 사치스러운 휴식을 누려보겠어!

이것도 이젠 오늘 포함 3일 남았다는 것이야..

기분이 복잡미묘하구만.


<2023. 08. 18>


(1)


내일은 돌아가는 날이니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일단 유명한 음식점. 타파스 바 '비니투스'에 왔다.

꿀대구! 클라라! 츄러스! 등 스페인 종합선물세트를

먹을 예정이다. 그리고 쇼핑을 할 거다.

각종 기념품과 선물 등등 그동안 못 샀던 거 다 사야지!


(2)


오늘은 이것저것 사러 다니고 있다.

뚜론도 사고,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샹그리아와 식빵과자(?)도 사고.

이따가 마트 가서 레몬환타와 하리보도 살 예정이다. 뭔가 이것저것 더 사서 풍족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왜 사도사도 부족한 느낌일까?

산 게 너무 없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이상한 아쉬움 때문에 그런 걸까?


사실 내일 돌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덤덤한 것 같다. 실감이 정말 안 난다.

바르셀로나에서 2주를 보내다 보니

이제는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지경이 되었는데... 확실히 적응을 좀 한 것 같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현지인 마냥 돌아다니고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강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항상 스스로는 약하고

잘 무너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란

무너지고 또 무너질지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버티고

다시 한번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 번의 낯선 환경과 변수들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결코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3. 08. 19>


(1)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날에 도착했다.

근데 뭐랄까?

너무 감흥이 없고 평범한 날 같아서 이상하다.

내가 그전 도시들을 다 갔었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고대하던 맛집 <viana> 까지

문을 닫아서ㅠㅠ (심지어 오픈런까지 했는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지막 날까지 역시 내 계획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법칙을 충실히 이행 중이다.

그래도 뭐, 그 덕분에

얼마 전 지나쳤던 분위기 좋은 음식점을

직접 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야겠다.


마지막 공항까지 가고,

비행기 탈 때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어서 그런지

화려한 마지막의 느낌은 더더욱 아니다.

아니면, 어쩌면 내가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정말 후회 없이 놀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볼 거 다 보고 먹을 거 다 먹고 놀 거 다 놀았으니.

이제 여한이 없고 후회도 없다.

애써 미련 가지고 싶지도 않다.

여행은 쿨하게 마무리하자!


(2)


모든 경험은 좋은 경험이다.

심지어 그 경험 때문에 내가 많이 울고,

상처받고 힘들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가끔 과거가 나를 괴롭게 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랬을까?' 또는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등등.

하지만 결국 미래의 내가 되어 돌아보면

그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완성되었고 이게 나다. 무언가에 충실했다면, 그런 경험들은

더더욱 나를 살아가게 하니.

아마 이 유럽 여행들 중 대부분의 기억은 허무하게도 휘발되어 버리겠지만

끈질기게 남아있는 몇몇 기억들이

또 나를 살아가게 하지 않을까?


(3)


방금 스타벅스에서 웃긴 일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열심히 글을 쓰는데,

웬 10대 외국인 여자아이가 다가와서는 대뜸

"you look beautiful" 이러더라.

순간 경계태세 발동해서 가방을 붙잡고

못 알아듣는 척을 했더니, 번역기까지 돌려서

'너 예뻐'라는 말을 건네고는 갔다.

정말 뭐지?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화장하고 예쁜 모습이었다면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생얼에 안경 끼고

머리도 이상하게 묶고 있었는데. 이해가 안 된다.

갑자기 그 말을 나에게 왜 했을까?

암튼 마지막까지 웃긴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말이 진심이었든 아니든 간에

참 고마웠다.

마치 주눅 들지 말라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사실은 그 여자애가 훨씬 예뻤는데 말이다.

나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예쁘게 보이는구나.

신기하고 기분 좋다.


<에필로그>

비행기 안, 여행을 마무리하며.


그래.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도 그날은 와.

시간은 흐르니까.

처음 런던행 비행기를 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그 모든 여정들을 다 해내고

결국 집으로 향하는구나.

엄마 아빠를 만날 생각을 하면 자꾸자꾸 목이 멘다.

그동안 어찌나 보고 싶었는지,

힘들 때도 보고팠지만

너무 맛있는 걸 먹고 너무 좋은 것을 봤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꼭! 내 힘으로 엄마아빠에게

파리의 야경과 바르셀로나의 건축물들과..

모든 것을 보여주리라.

두 달 반은 당연하게도 내 예상과 참 달랐다.

나는 유럽에 가면 내가 굉장히 멋지고

과감하게 입으며, 개방적으로 다닐 줄 알았으나

역시 그렇지 못했다.

두 달 반이 지났어도 나는 나였다.

여전히 눈치를 보고, 찌질하고 실수 투성이.

그렇지만 두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모든 여정을 홀로 이겨낸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온통 영어로 된 표지판과 낯선 사람들 사이의 당혹감.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두려움.

또, 베를린으로 넘어가던 날.

새벽 기차를 4번이나 넘게 짐 끌고 환승하던 것.

프라하 가는 기차가 취소되어 당황했던 것.

프라하 숙소에서 물이 멈추지 않아 놀라 울었던 것.

밤새 버스 타던 일.

버스가 갑자기 취소되어 밀라노 기차역에서

오열했던 것. 소매치기당할 뻔했던 일.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기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결국은 다 해낸 거다.

나의 방식으로, 내 힘으로.

앞으로는 절대 나 자신을 약하다고 생각말자.

살면서 이것보다 더한 고난들을 맛볼 테지만

나는 아마 또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아프고 깨지기야 하겠지만.


내가 여행하며 느낀 외로움을 잘 기억하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인생은 혼자이기 때문에

나만큼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힘든 걸 어찌 됐든 극복해야만 하는 것도 나다.

자꾸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면 훨씬 더 불행해진다.

그러니 내가 나에게 가장 잘해줘야 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여행에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절대 아니지.

런던에서 본 뮤지컬, 파리의 에펠탑,

베를린의 빈티지샵들, 프라하의 야경, 굴뚝빵,

밀라노의 대성당, 바르셀로나의 타파스까지.

살면서 처음 마주하는 엄청난 것들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파리에선 친구들도 생기고

프라하 기차 안에서 맥스라는 친구를 만나

하루 놀기도 하고.

어느덧 여행의 달인이 되어

기차 타고 근처 소도시를 놀러 다니기도 하고.

아마 머지않아 매우 그리워질 것이다.


언제나 나라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뿐이다. 그게 성공해서 매우 부유해진 나든, 못난 나든,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알고,

매 순간 용기 내는 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럽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이나 변화한 내가

소멸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이 여행을 원동력 삼아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만 하고, 그게 내 삶을 또 이끌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니

그 변화를 발판 삼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이상을 그리고 상상만 펼치는

그런 내가 아니길.

꿈만 같던 유럽여행이 그랬듯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내가 되기를!!


<부록>


* 다리가 아파도 항상 자리는 양보하고,

아무도 없더라도 신호를 지키자.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자.

그렇게 살자.


*모두가 각자 자신의 것이 있다.

자신의 방식, 속도, 취향. 그냥 그런 거다.

정답은 없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온통 '나 좀 알아줘!'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아무리 잘 살고 있어도 그걸 아무도 모른다면,

아무 데도 자랑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 인가 하는 마음이 들지만,

우리는 좋아요 수에 관계없이 괜찮아야 한다.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만족스러운 삶이 진짜다.


*가공된 낭만이 싫다.

가짜 젊음은 더더욱이.

낭만스러운 상황이더라도,

그 상황을 낭만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삶은 주로 기대와는 다른 무언가를 준다.

여기서 '기대와는 다른'에 초점을 맞추면

인생은 매우 불행하겠지만,

삶이 준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면

의외로 그것이 더 귀중할 때가 있다.


*오지 않을 것 같아도, 그날은 온다.

오지 않을 것 같아도, 그 순간은 온다.


*누군가를 강하게 좋아한다는 표현.

좋다.

많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강하게 좋아하는 것.


*아는 것이 힘이다 vs 모르는 게 약이다

둘 중 뭐가 맞는 걸까?


*만약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와

어느 한순간의 내 선택을 바꿀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바로 지금일 것만 같아서 두렵다.

가끔 인생에서 이토록 터무니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생긴다.

나의 선택에 대해 어느 쪽이든

단 1%의 후회가 없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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