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그립의 악력과 골프 장갑
나는 연습 때도, 라운드 때도 양피 장갑을 고집하는 편이다. 이상하게도 골프를 처음 입문할 때부터 그랬다. 가격과 관계없이 합피나 반양피 장갑은 오랫동안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내 돈을 주고 구매해 본 건 골프 입문 첫 해 정도고, 선물 받은 장갑도 한두 번 쓰고 백에 처박아놓았다가 버리곤 했다. 가격 때문이 아니다. 지금도 라운드 시에는 타이틀리스트 플레이어스 장갑을 사용하지만, 연습 시에는 저렴한 양피 장갑을 끼고 연습하곤 한다. 가격과 관계없이 합피의 그 미끈거리는 느낌이 싫었다. 장갑 소모품비가 솔찬히 들어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처음 골프에 입문했을 때, 나는 골프와 헬스를 병행하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느냐 하지만, 그때 나는 PT에 처음 발을 들였고 주 3회 미친 듯이 쇳덩이를 들고 있을 때였다. 온몸은 힘으로 넘쳤고 유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근육 돼지라 할 정도로 근육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당연히 있는 힘껏 골프채를 잡고 휘둘러댔고, 왼손잡이가 오른손 스윙을 하려니 힘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틀이면 골프 장갑이 다 까져서 새것을 구입해야 했고, 장갑이 까진 것도 모르고 연습을 하다가 손바닥에서 피가 난 적도 많았다. 그래, 있었던 적이 아니라 많았다. 오죽하면 캐디백에 밴드를 넣어두고 다녔겠는가. 레슨을 하다 피가 나면 레슨 프로는 기겁을 했고 밴드를 붙여주고 나면 그날 레슨과 연습은 자동 종료가 됐다. 피투성이 장갑을 끼고 연습을 할 수는 없으니. 몇 시간을 연습한 것도 아니고, 주 5회 60분이었다.
골프 장갑의 새끼손가락 쪽 도톰한 부분이 까지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 현상은 구력이 7-8년이 넘어갈 때도 계속되었다. 장갑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 저렴한 장갑을 사용하다가, 풋조이에서 손바닥 쪽에 덧댄 웨더 장갑이 나오는 걸 알고 연습을 할 때는 그 장갑을 쟁여놓고 사용하곤 했다. 항상 캐디백에는 연습장에서 사용할 풋조이 웨더 장갑 여분이 들어 있었고, 파우치에는 라운드에 사용할 타이틀 플레이어스 장갑이 있었다. 타이틀은 연습용으로도 사용하기에는 가격이 비싸고 내구성이 떨어졌다. 그 감촉만큼은 지금도 최고란 걸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골프 장갑이 해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건 정말로 최근의 일이다. 재작년 11월부터 계속되어 오던 스윙 교정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원하는 스윙을 하기 위해서는 손목이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야 했고, 다운스윙 시 손목의 언코킹량이 많아져야 했다. 힌지를 유지하면서 코킹을 더 풀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십견까지 걸려가며 교정에 몰두했던 시기였기에 마침내 해낼 수 있었다. 우측 어깨 오십견 재활과 함께 손목 훈련이 끝나갈 때쯤, 백스윙에서 발생하는 오버스윙을 교정하기 위해 백스윙 코킹량을 줄이다가 알게 되었다. 내 그립 악력이 지나치게 약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반대 스윙을 하는, 손목의 악력이 유난히 약한 골퍼다. 양손의 악력이 다 약한데 그나마도 왼손잡이라 오른손 악력은 거의 어린아이의 그것에 가깝다. 차에도 악력기를 두고 한의원에도 자이로볼을 두고 악력 훈련을 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악력이 확 강해진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도 2-3년 꾸준히 자이로볼을 다루다 보니 조금씩 악력이 나아지는 것 같기는 했다. 백스윙에서 딸깍거리는 손목을 없애고 과한 코킹으로 인한 오버 더탑과 오버스윙을 줄이고자 시도한 것이 백스윙 시 손목 코킹의 양을 줄이고 조금 더 그립을 강하게 잡는 방법이었다. 손목이 부드럽지는 않지만 견고한 임팩트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았다.
그립을 강하게 잡는다기보단 그립을 견고하게 잡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악력이 약한 나에게는 그립을 강하게 잡는다는 표현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립을 강하게 잡으려고 하다 보면 손목이 꺾인 상태로 고정되기가 쉽다. 지금 글을 읽으면서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아무 생각 없이 꽉 쥐어보라. 손목이 커핑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전완근은 신전근과 굴곡근의 밸런스가 다른데, 팔꿈치 안쪽의 굴곡근이 훨씬 강해서 거의 9대 1의 밸런스를 가진다. 그래서 주먹을 꽉 쥐면 5대 5의 위치에서 균형이 맞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손목이 커핑 되는 위치이다. 강한 굴곡근이 조금 이완되고 약한 신전근이 조금 수축되는 위치에서 두 근육군의 밸런스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립을 꽉 잡으면 손목이 커핑 된다. 레슨 프로가 백스윙탑에서 커핑 되는 왼 손목을 교정할 때 그립에 힘을 빼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육학에 대한 공부가 조금만 있어도 많은 현상들을 원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전의 글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그립 악력의 본질은 마찰력이다. 그래서 임팩트의 악력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헤드 스피드가 결정하는 것이며, 그래서 수동적이다. 그립의 악력은 절대 능동적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 강하게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견고하게 잡는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딸깍거리지 않을 정도로 잡으면 된다. 역동적인 스윙 중에도 클럽의 움직임을 견고하고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립이 견고하면 손에서 그립이 놀지 않고, 클럽 헤드가 견고하고 일관성 있게 움직일 수 있다.
골프 장갑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올해는 타이틀리스트 플레이어스 장갑을 연습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