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hared Responsibility
2015년 여름, 협상 테이블 위에는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정상급 정치 선언 초안이 놓여 있었다. 빈곤 퇴치, 기후 대응, 인권 증진—목록은 화려했다. 그러나 진짜 과제는 이 약속들을 어떻게 종이 위의 문장에서 현실로 옮길 것인가였다.
회의장은 숫자와 목표치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었다. 각 문장은 국가와 세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이어질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국제법은 하나의 다리와 같다. 정교한 설계와 복잡한 구조,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그 위를 오가지만, 아무도 기초를 점검하지 않고 약해진 기둥을 보강하지 않으면 언젠가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질 때는 그 위에 있던 모두가 함께 추락한다. 다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는 사람, 지탱하는 기둥, 기초를 보수하는 손길이 더해질 때, 그것은 삶과 삶을 잇는 생명선이 된다.
세상의 변혁 :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
서문
본 의제는 사람, 지구 및 번영을 위한 행동계획이다. 이 계획은 또 더 큰 자유 속에서 보편적 평화를 증진하고자 한다. 우리는 극빈을 포함한 모든 형태와 차원의 빈곤을 근절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최대의 글로벌 과제이자 하나의 필수 요건임을 인식한다. 모든 국가와 이해당사자들은 협력적 파트너십 정신으로 행동하면서 이 계획을 이행할 것이다. 우리는 빈곤과 결핍의 횡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지구를 치유하며 보호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세상이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길로 옮겨 가는데 시급히 필요하고 담대한 변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공동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뒤쳐져 소외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한다. 우리가 오늘 발표하는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169개 세부목표는 이 새로운 보편적 의제의 규모와 포부를 보여준다. 이 목표들은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기반으로 구축하여 새천년개발목표가 달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 목표들은 모든 사람의 인권 실현과 성평등, 모든 여성과 소녀의 권익신장을 추구한다. 이 목표들은 통합적이고 불가분하며, 지속가능발전의 경제, 사회, 환경이라는 세 가지 차원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본 목표와 세부목표들은 인류에게 그리고 지구에 대단히 중요한 분야에서 향후 15년에 걸쳐 행동을 촉진할 것이다.
나는 당시 한 중남미 소국 대표가 조용히 던진 발언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속가능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은 세대 간의 약속입니다.”
그 한마디는 초안에 ‘세대 간 연대’라는 문구를 포함시키게 했다. 외교 현장에서 진심 어린 발언이 제도의 문장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국제법은 완전하지 않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눌리기도 하고, 이행 부족으로 힘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유지되는 이유는, 그 구조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힘없는 목소리라도 다른 국가의 시각을 바꾸고, 제도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새천년개발목표(MDGs)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모두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유엔이 제시한 글로벌 어젠다이지만, 그 성격과 지향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가진다. MDGs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빈곤, 기아, 질병, 교육 등 기초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극빈을 절반으로 줄인다”와 같은 정량적 목표를 제시했다. 소수 전문가가 상향식으로 설계했고, 선진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구조가 강했다. 반면 2015년 채택되어 2030년까지 이어지는 SDGs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보편적 과제로, 경제·사회·환경의 세 축을 통합적으로 다루며 불평등,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도시 등 보다 넓은 의제를 포함한다. 또한 “빈곤을 절반으로 줄인다”가 아니라 “빈곤을 종식한다”는 식으로 더 높은 목표를 세웠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leave no one behind)’라는 원칙 아래 소득·성별·연령별로 세분화된 데이터 수집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SDGs는 회원국, 시민사회, 민간 부문이 함께 참여해 마련된 합의의 산물로,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해 달성 가능한 현실적 행동을 강조한다. MDGs가 개발협력의 출발점이었다면, SDGs는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종합적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협의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몇몇 국가는 ‘개발권’을 앞세워 인권 의무를 미루려 했다. 경제 성장 없이는 인권도 없다는 논리였다. 팽팽한 공방 속, 한 아프리카 대표가 차분히 말했다.
“개발이 인권을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 발언은 최종 문안에 ‘지속가능발전은 인권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문장을 남겼다. 강대국의 수사나 복잡한 법률 용어가 아닌, 사람을 향한 단순한 진심이 제도의 방향을 틀어 놓은 것이다.
이런 순간들을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국제법은 완전하지 않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흔들리고, 이행 부족으로 힘을 잃는다. 하지만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다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없는 목소리라도 방 안의 공기를 바꾸고, 다른 국가의 시각을 흔들며, 제도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조약과 규범은 종이 위에 머물지만,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는 에너지다.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지지하는 순간, 법은 현실이 된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태도는 다리를 지탱하지 못한다. 시민, 정부, 학계, 기업 모두가 의도와 이행 사이를 잇는 다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종종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을 떠올린다. 그 물살은 언제든 기둥을 흔들고, 심지어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게를 나누어 들고, 작은 금이라도 미리 메우고, 낡은 기둥을 교체할 때 다리는 살아남는다. 균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균열을 수선하는 손길이 바로 국제법의 힘이다.
2015년의 그 협상장, 수십 개 국기가 꽂힌 테이블 위에서 작은 나라 대표의 목소리는 거대한 다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돌 하나였다. 강물이 아무리 거세도, 누군가 돌을 놓는 한 다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Takeaways
국제법은 다리와 같아, 지속적인 점검과 보강이 필요하다.
SDGs 협상처럼 작은 국가의 목소리도 제도의 문장을 바꿀 수 있다.
법의 실효성은 참여자 모두의 지속적 관심과 공동 책임에서 나온다.
14 <비단실 하나, 역사를 묶다>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