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ting the SPM Negotiation
뉴욕 유엔본부 CR5 회의실. 오래된 에어컨 바람은 눅눅했고, 창문 없는 공간엔 사람들의 숨결과 피로가 뒤엉켜 있었다. 천장 타일 위에는 수십 년간 쌓인 제도적 기억이 내려앉은 듯했고, 책상 위 명패들은 그날의 목소리를 담을지, 침묵으로 남을지 무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칠레 대표부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심히 놓인 작은 명패 한 조각이 이토록 무거울 줄은, 그때 처음 실감했다.
의제는 특별정치임무단(SPMs: Special Political Missions) 예산이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하지도 못하고, 뉴스의 마지막 줄에조차 실리지 않는 의제. 그러나 사헬 사막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불안정한 지역에서 폭력을 막고, 평화를 이어가는 유엔의 가장 민첩한 도구였다. 문제는 단순했다.
모두가 이 임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비용을 분담하려 하면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진다. 마치 식사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에게 저녁값을 나누자고 설득하는 일처럼 난감했다.
회의장의 구도는 전형적이었다. 주요 공여국들은 “효율성과 투명성”을, 개도국들은 “형평성과 책임 분담”을 강조했다. 서로의 말은 겹쳤지만, 접점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온 대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방 안의 흐름을 단숨에 바꿨다.
“여러분에겐 단순한 예산 항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정상적인 정부 운영과 국가 실패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희망과 혼돈 사이의 갈림길입니다.”
그 순간, 회의장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펜을 움직이던 대표들이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논의는 추상에서 구체로, 비용에서 결과로 이동했다. 우리는 규칙을 새로 쓰진 못했지만, 결의안에는 ‘취약성의 비대칭성을 인정한다’는 문장이 추가되었고, 최소한 인간적인 결이 살아 있는 예산안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을 오래 기억한다. 국제법은 종종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거나, 무력하다는 조롱을 듣는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국제법은 완벽한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국가들이 충돌하고 양보하고 때로는 합의할 수 있는 틀이다. 그 테이블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도록 만드는 힘—그것이야말로 국제법의 가장 실용적인 가치다.
군대도, 경제력도, 언론의 조명도 없던 대표는 그날 자신의 실을 묶었다. 한 가닥 비단실이었지만, 뜻을 다해 묶으니 천 근의 무게를 버텼다. 그는 형평성이 짐이 아니라 미래의 청사진임을 보여줬다. 협력이란 만장일치의 순간이 아니라, 공통된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증명했다.
나는 그 장면을 ‘국제법의 본질’이라 부르고 싶다. 법은 추상적 문장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꺼내는 인간의 진심이자 서로를 묶는 실이다.
한 가닥 비단 실도, 뜻을 다해 묶으면 천 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역사는 늘 단절과 연결을 반복한다. 다리가 끊기듯 협상이 무너지고, 다시 이어 붙이듯 새로운 합의가 태어난다. 그러나 절박함이 깃든 진심은 여전히 소음을 뚫고 남는다. 작은 목소리가 남긴 흔적은 파문처럼 번져나가고, 그것이 때로는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된다.
특별정치임무단 예산이 세상을 뒤흔든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국제법이 존엄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그 의미를 믿는 한, 방 안의 가장 작은 목소리가 가장 오래 남는 메아리가 된다.
Takeaways
작은 발언도 협상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국제법의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틀을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형평성은 부담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청사진이다.
15 <변화는 올 겁니다>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