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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참여하거나 지배당하거나

Why International Law Needs You

마이크 너머로 억양이 뒤섞이며 공기를 촘촘히 메웠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각국의 이름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그 자리에 없는 국가는 종이 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식탁에 앉지 못한 자는 메뉴가 된다.


오랜 시간 협상장을 지켜보니, 세상을 바꾸는 결정은 늘 회색빛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세게 밀어붙이고, 가장 크게 외치며, ‘안 된다’는 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결국 판을 흔든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자들이 결과를 만들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결과를 감당한다.


2013년, 내가 주유엔 칠레대표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무기거래조약(ATT: Arms Trade Treaty)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국제 무기 거래를 최초로 규제하고, 전차와 전투기, 군함과 미사일, 소형무기에 이르기까지 분쟁 지역에서 학살과 인권 유린에 사용되지 않도록 막는 다자 조약이었다.


수출국은 무기 이전 전 인권침해·전쟁범죄·테러활동의 위험을 평가해야 하고, 위험이 크면 수출을 금지해야 했다. 연례 보고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중개업도 규제하는 구조였다.


무기거래조약(ATT)은 2013.4월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다자간 조약으로, 국제 무기 거래를 규제하고 무기의 불법 이전과 악용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2014.12.24.자로 발효되었다. 전차, 전투기, 군함, 미사일, 소형무기(SALW) 등을 포함한 재래식 무기의 국제 거래에 대한 최초의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이다. ATT는 수출국이 무기 이전 전에 인권 침해, 전쟁 범죄, 테러 활동 등의 위험성을 평가하도록 요구하며, 특정 무기 거래가 이러한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수출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무기 중개업체의 활동을 규제하고, 회원국이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며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한다. 하지만 이 조약은 러시아와 같은 주요 무기 수출국이 가입하지 않았고, 미국도 2019년 지지를 철회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법적 구속력이 약해 일부 회원국이 여전히 무기를 분쟁 지역에 판매하고 있어 실질적인 규제 효과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TT는 국제 무기 거래의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보다 강력한 이행 메커니즘과 주요 무기 수출국의 참여가 뒷받침된다면 향후 국제 안보와 인권 보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협상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몇몇 국가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내세워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그때 회의장 밖에서 전 세계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서한, 거리 캠페인, SNS 여론전—그 파도는 회의실 벽을 뚫고 들어와 대표단들의 귀를 흔들었다.


한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솔직히, 정부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결국 ATT는 압도적 지지로 채택됐다. 그 순간, 결과를 바꾼 것은 식탁에 앉아 있던 정부만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며 자리를 요구한 이들이었다.


이 원리는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랫동안 환경·노동·인권은 광고용 슬로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비자, 특히 신세대가 묻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제품이 어디서, 누구의 손에,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가?” 대답하지 못한 브랜드는 외면당했다. 노동 착취가 드러난 기업은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다. 돈의 흐름이 바뀌자, 기업도 변했다. 경영 원칙에 윤리적 공급망을 새겨 넣은 건 계시가 아니라 압력이었다.


민주주의 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인권 협약이나 무역 협정에 서명해도, 시민이 감시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그것을 헬스장 회원권처럼 취급한다. 보여주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는다. 독재국 외교관이 유엔에서 협력을 외치고 돌아가 자국에서 반대파를 탄압하는 모순, 서명과 동시에 위반하는 정부, 강제력 없는 결의안의 무력함—나는 이런 풍경을 매일 보았다.


“이 시스템은 이미 망가졌다. 참여해 봤자 소용없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스템은 우리가 허용하는 만큼만 무너진다. 핵무기 통제, 인권 보호, 기후 행동—이 모든 변화는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이끌었다. 참여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정부가 왜 서명했는지, 왜 서명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 정치인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SNS에서 의견을 밝히고, 작은 캠페인에 발을 들여놓는 것. 충분히 많은 목소리가 모이면, 식탁에 자리가 생긴다.


참여는 비판만이 아니다. 진전이 있다면 축하해야 한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책과 법이 있다면, 그 노력을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라. 그리고 배워라. 조약 문서는 길고 복잡하지만,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공정, 평화, 협력. 이 세 가지를 이해하고 주변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국제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때로는 멈추며, 가끔은 깨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언제나 참여하는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때였다.


국제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목소리들에게 이제는 발언권을 주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결정이다. 국제법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더욱 포용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한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갖고, 질문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국제 규범과 법은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만큼만 강하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Takeaways

자리를 지키는 사람과 메뉴가 되는 사람의 차이는 오직 ‘참여’다.

시민의 압력은 조약·기업·정치를 움직이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다.

비판·축하·학습을 포함한 참여가 시스템을 살아 있게 만든다.


13 <다리를 지키는 사람들>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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