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ing Optimism
협상의 습기와 종이에서 배어 나온 잉크 냄새로 무거웠다. 새벽까지 쌓인 피로가 창문 없는 방 안에 갇혀 있었고, 나는 ‘facilitator’ 명패 뒤에 앉아 대표들이 마지막 문장을 속삭이듯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같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회의장은 언제나처럼 긴장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은 효율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며 예산의 틀을 조정하려 했다. 반면, 개도국 연합(G77)은 단호하면서도 조용한 어조로 형평성을 외쳤다. 숫자와 문단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이어졌지만, 결론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흐름을 바꾼 건, 공식 문서도, 극적인 합의도 아니었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쥔 메모지를 옆에 내려두며 차분히 말했다.
“이 예산은 우리에겐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조기경보와 때늦음의 차이, 정치적 안정과 무질서의 갈림길, 희망과 혼돈 사이의 경계입니다.”
극적인 연출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었다. 그저 사실이었고, 그 울림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펜을 달리던 손이 멈췄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대화는 숫자에서 영향으로, 비용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그 말은 높지 않았지만, 방 안을 울렸다. 펜을 달리던 손이 멈추고, 시선이 모였다. 논의는 숫자에서 생명으로, 비용에서 사람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외교는 선언문 속 문장이 아니라, 침묵 뒤에 이어지는 울림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수많은 협상을 거치며 나는 국제법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제법은 이상주의자들의 꿈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규범과 협력이 지배하는 세상인가, 아니면 힘이 법 위에 군림하는 세상인가. 선택은 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다. 조약은 무시되기도 하고, 선언은 금세 잊히며, 인권은 연설 속에서만 빛나다가 정책에서 외면받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낙관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보았다. 타협이 실제로 생명을 지키는 순간을. 군사력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공동체의 도덕적 명료함으로 버티는 작은 나라의 대표들을. 시스템은 흔들리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는 개혁을 말한다. 안보리 개혁, 조약 이행의 실효성 강화, 사이버 안보의 법제화…. 모두 절실하다. 그러나 제도를 고치는 체크리스트로만 접근한다면, 국제법의 본질을 놓칠 것이다. 국제법은 맞춰야 할 퍼즐이 아니라, 함께 쌓아 올리는 의지의 그릇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우리가 참여할 때만 작동한다.
그렇다면 그 의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 기후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효성 있는 기후 조약을 만들어야 한다. 코드가 무기가 되는 시대에 대비해 사이버 갈등의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주권은 책임과 함께 간다는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인권은 연설의 수사가 아니라 국제적 책무의 기초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청’이다. 카리브해 대표의 목소리에, 나이지리아 거리에서 외치는 활동가의 함성에, 예산도 없이 조약 이행을 위해 애쓰는 자카르타의 공무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스템은 폭발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무관심 속에서 무너진다.
그날 회의장을 나서며 누군가 내게 물었다.
“결과는 어땠나요?”
나는 짧게 답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공기는 분명히 바뀌어 있었다. 결의안 문구는 조금 더 용기를 품었고, 침묵은 더 길고 진지해졌다. 작은 목소리가 남긴 울림은 그날 분명히 멀리 퍼져나갔다.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다.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의지를
만장일치가 아니라, 꾸준한 진전을
국제법은 복잡하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함께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가능성은 언제나 현실보다 멀리 도달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변화는 올 것이다. 그것은 선언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Takeaways
외교의 힘은 선언이 아니라 침묵 뒤의 울림에서 나온다.
국제법은 퍼즐이 아니라 공동 의지의 그릇이다.
변화는 완벽이 아니라 꾸준한 진전에서 시작된다.
16 <폭풍 전에 飛階부터 고쳐라>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