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7 미국 뉴욕시 유엔본부

What Silence Allows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No hay comentarios.”


그 말은 회의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더 이상 논의할 내용이 없음을 의미했고, 곧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라는 의미였다. 나는 처음에는 액면 그대로 이해했지만, 곧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언어였다.


유엔에서는 침묵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 말하지 않은 문장, 끝내 반응이 없는 연설, 수정되지 않은 초안이 쌓여 있다. 기록에는 발언만 남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종종 그 기록의 빈 공간이나 말 사이의 숨결에서 비롯된다.


내가 주유엔 칠레대표부에 합류했던 때는 이른 봄이었다. 맨해튼의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차가움을 품고 있었지만, 유엔 건물 내부에는 계절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기와 온도는 조절되었으며, 언어도 더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나는 GRULAC 회의장에서 몇 안 되는 비(非)중남미계 사람 중 하나였지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이유로 불려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유창하다는 것이 곧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선을 넘지 마.”

상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문서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감정과 발언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을.

“감정도 드러내지 마. 반응하지 마. 단지 대표만 해.”


나는 그대로 따랐다. 몇 달 동안 발언 요지를 정리한 폴더를 가지고 다녔고, 1인칭 대명사를 피하려 애썼다. 처음에는 이 절제가 중립적인 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외교라는 이름을 빌린 애도의 언어였다.


중미의 한 대표는 회의장에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다 늘 같은 말을 덧붙였다.

“Con pesar.” (유감스럽지만…)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과 실종된 아이들, 남겨진 가족들의 무게가 짧은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영어로 말을 하면서도 굳이 그 문장만은 스페인어로 남겼다.


한 번은 평화유지 논의 중남미 대표가 보고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 자리에는 열두 명이 앉은 작은 소회의실이었다. 그는 부대 교대 절차를 설명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Lo que no se puede medir...” (측정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는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넥타이를 다시 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잠깐의 침묵은 회의 전체 요약보다도 더 오래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침묵이 진정성이 유지되는 자리임을 깨달았다.


유엔 유리벽 너머 이스트강은 계속 흐르지만, 건물 안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매년 같은 조항을 논의하고, 반복되는 우려와 약속만 있었다. 회의장에서는 규칙이 지배했지만, 엘리베이터나 커피 줄에서는 그것이 깨지기 일쑤였다. 어깨를 스치는 손길, 길어진 악수, 눈빛의 흔들림 속에서만 사람들이 마음을 드러냈다.



2014년 늦봄, 대표단과 수정안을 정리하느라 밤늦게 남아 있었다. 회의장은 텅 비었고, 형광등 하나가 꺼졌으며, 동료 라울이 의자에 기대어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No te pasa que a veces las palabras no alcanzan?”(혹시 너도 가끔 말이 모자란다고 느낀 적 없어?)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말은 우리가 느낀 피로에 붙인 이름이었다. 나는 택시를 부르지 않고 걸어서 그랜드 센트럴까지 갔다. 도시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인식이 남긴 고요였다.


한국어의 ‘침묵’은 소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유엔에서 본 침묵은 그보다 더 깊었다. 그것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으로 가득 찬 정적이었다. 단순히 아무 말도 없던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해서 멈춘 숨결이었다.


나는 지금도 침묵의 순간을 느낀다. 회의 중이나, 학부모 상담 또는 오랜 친구와의 전화 속에서, 누군가의 말이 끝난 후 남는 짧은 공백,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진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외교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게 듣는 것이라면 어떨까. 문장이 끝나고 찾아오는 고요함이 가장 진솔한 순간이라면 어떨까. 번역되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침묵 너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우리는 침묵을 언어처럼 존중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08 <미국 뉴욕시 포덤대학교>를 기대해 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