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슬 Nov 01. 2020

익숙한 오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민음사)」

   어떤 날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나는 왜 이렇게 친구가 없을까. 왜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지 못할까. 왜 자꾸 사람을 놓치거나 잃게 될까. 그러니까, 내 인간관계가 이 모양인 이유가 도대체 뭘까?


   아마도 그건 내가 세 가지를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야. 연락과 장난, 그리고 말 놓기.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뭔지 알아?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사자나 표범을 떠올렸어. 그런데 아니야. 아프리카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은 하마야.

   평생 한곳에서 사는 하마는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시야에 들어온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을 가차없이 죽여 버린대. 그건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과는 달라. 하마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지 않는 초식동물이거든.


   하마는 그냥 침범을 참을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프리카 하마의 마음을 어쩐지 알 것만 같아.


   누군가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편하게 부르며 말을 놓는 것. 그런 것들은 결국 침범의 문제야. 교제와 침범은 필연적으로 함께일 수밖에 없어. 얼마간의 침범을 시도하고 허용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니까. 아무도 아무것도 침범하지 않는다면 두 세계의 교집합 역시 생길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은 말해, 내가 다정하다고. 그리고 또 말하지. 네가 좀 까칠하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웃잖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나는 그냥 예의를 지키는 건데, 틈을 주지 않으려고. 너는 그냥 애써 친절한 척하지 않는 건데, 가식을 견디지 못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놓는 너와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나. 용건 없는 연락을 길게 이어갈 수 있는 너와 용건이 있어도 연락하지 않는 나. 빈말을 잘 하지 않는 너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 종종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한 너와 오직 내 삶에만 관심이 있는 나.


   나는 다정하게 선을 긋고,

   너는 무심하게 선을 넘지.     

  

   그러나 사람들이 보는 우리는…….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의 최고 장점은 수비수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ㅡ(p.64)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아웃사이드 드리블 같은 걸지도 몰라.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너무 쉽게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의 바깥쪽을 이용해 공을 힘껏 밀어내는 걸지도. 그러다 상대가 덩달아 그쪽으로 움직이면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는 거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다정해서 좋다는 사람들이 싫었어. 그런 말들이 내게 다정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다정한 게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건데요. 그렇게 대답하고 싶어서 입술이 간질거렸어. 그래서 네가 나를 놀리듯 다정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그게 참 웃긴 별명이라고 생각했었어. 처음에는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계속 듣다 보니 정이 들어 버린 걸까? 이제 나는 다정이라는 말이 예전처럼 밉지 않아. 생각해 보면 내가 다정해서 좋다는 사람들이 내게 건네준 다정이 나를 살린 순간이 있었어. 용기를 내서 서로의 세계를 한 발짝씩 침범했을 때 단조롭던 내 세계에 새로운 색이 입혀지기도 했어.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오해 유발’이야말로 아웃사이드 드리블의 사명인 것이다. 물론 나의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그 사명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엉뚱한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그 오해 덕에 절대 안 될 것 같던 고비를 넘었다. 피치 위에서도 피치 밖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오해를 만들고 오해를 하고 오해를 받고 오해로 억울해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어떤 오해는 나를 한 발 나아가게 한다. ㅡ(p.75)


   다정아.

   네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 그렇게 부르며 한 번씩 내가 그어 놓은 선 안쪽으로 넘어올 때.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기꺼이 너의 다정이 되기로 해. 그 침범을 모른 척 눈감아 주며. 그러다 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드물게 가능해지기도 해. 가끔은 하마의 영역에도 다른 동물들의 방문이 필요할 거야.


   너를 통해 침범을 연습하며 나는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 익숙한 오해를 거기 그대로 두고.




   (하현의 편지)


이전 09화 패러디의 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