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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y 18. 2020

나는 내 일에서 미래를 보았다

| 일을 하다보니 일이 좋아졌다




입사 5년차


2009년. 그동안 정들었던 부서를 떠나 다른 사업장으로 전배를 가게 되었다. 내가 원한 전배였지만 두려운 시기였다.

5년간 생산 현장에서 근무를 했다. 밤낮이 수시로 바뀌는 교대 근무는 당시 내 생활리듬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정신과 육체의 밸런스는 점점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급기야 그곳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속에 3개월간의 해외출장을 신청했었고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던 바로 그 시기였다.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분업화가 잘되어있는 조직에서 3개월 정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그동안 맡아서 해오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다. 즉, 부재로 인한 업무 공백은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쌓았던 부서내 특화된 역할이 없어질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해외 출장 역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그건 새로운 노동으로 인한 체력 소진이었다. 밤낮이 바뀌는 등의 변화가 아니었기에 생활 리듬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특히, 주말이 보장되었고 혼자였기에 자기계발이 가능했다. 출장을 떠날 때 챙겨갔던 책 <생각의 탄생>과 소설책 몇 권을 두어 번씩 읽었던 것 같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호텔에서 출장 복귀 후 삶의 밸런스를 찾기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을 때 현재의 부서를 떠나 다른곳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90일의 출장을 마치고 복귀한 회사는 변한것이 없었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었다. 유례없는 사업의 활황으로 공격적으로 공장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장으로 전배보낼 사원들을 뽑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지원했다. 동료들은 매우 의아해했다. 잘 갖춰진 현재의 업무체계에서 일하는 것과,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하는 것 이 두 문제 사이에서 너무 거리낌없이 결정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출장중에 많이 고민한 결정이라고 그들에게 알렸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하다.

시작은 두렵고 적응은 힘들어도 시간은 적응력을 만들어내고 적응하고 나면 또다른새로운 곳을 두려워한다. 현재 자신이 존재하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한다. 익숙한 것을 잃는 것, 그리고 타인이 내 익숙함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한다.
당시 나는 더 큰 시련과 위기가 오더라도 현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고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곳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싫었다. 내 실력이 모자라서 뒤처지더라도 새로운 곳에서 도전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새로운 곳은 무척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야가 바뀌는 교대 근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1차적인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새로운 현장을 모르고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선배 한 명과 한 달간 열심히 현장을 다녔다. 매일 2만 보가 넘게 걸었고 설비 밑을 기어 다니느라 허벅지에 알이 뱄다. 



나는 굴러온 돌이었다.

현장을 알게될 그 즈음부터 후배들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사업장이었지만 사업의 확장을 위해 짓게 된 공장이었기 때문에 부서의 리더와 선임자들은 대부분 예전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이었다. 그들과는 수년간 함께 일해온 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문제는 후배들이었다. 5년차이지만 부서원 대다수보다 내가 선배였다. 내가 후배였다면 오히려 동화되기 쉬웠을거다. 그들보다 내 나이가 많았고, 어쩌면 그들의 관리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견제가 심했다. 현재 그들의 관리자가 나로인해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때문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맡게될 일이 그들이 믿고 따르는 선배들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부분에서 정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리더에게 요청했다. 그러다보니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서 데이터베이스를 셋업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일에서 미래를 보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선임자가 없는 일이었다. 개척자가 되어야했기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많이 긴장했다. 한 달의 납기가 주어졌고, 이 기간동안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한 아웃풋을 내기로 협의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날,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의 서점을 찾아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회사와 집의 컴퓨터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설치했고, 인터넷 강의도 수강했다. 


한달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치열했다. 그리고 매우 어설픈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보잘것 없었지만 부서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그곳에 접속하면 누구나 관련된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관리자들은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배들의 견제는 더욱 거셌다. 그들의 배척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준비하는 데이터 관리 일원화 계획 속에는 현재 각 조직에서 수작업으로 일하던 여러 후배들의 업무가 사라지게 되어있었다. 몇 년간 그들이 배워서 해오던 작업을 몇 개월후 내 손을 거쳐 모두 자동화시켜버리면 그들은 현재의 일을 잃고 새로운 일을 배워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 뻔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은 이 시스템의 문제점에 관해 수많은 지적을 했고, 불필요성과 오작동의 문제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지적은 오히려 어설픈 시스템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제안이 되었다.

엑셀 프로그램으로 수작업한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시작부터 끝까지 자동으로 계산한 수치의 정합성을 조목조목 따져보면서 그들은 사람이 개입되면 실수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이후 6개월은 순조로웠고 쉴 틈 없이 많은 일들로 바빴다. 그때는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하지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그 일은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천직같았다.

예전부터 논리(Logical Thinking)를 좋아했던 덕분에 프로세스를 설계하여 값을 도출하는 것을 컴퓨터 언어로 구현한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C언어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언어(오라클 / ms-SQL)라서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서 울타리를 넘어 조금은 유명해진 사내 데이터베이스 전문가가 되었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함께 학습하는 후배들이 생겼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시스템은 발전했고 우리는 성장했다. 부서의 후배들도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활용하여 일을 수월하게 진행하게 되면서 그동안 존재해오던 보이지 않는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후배들과의 관계 개선에 가장 노력했다. 

특히 1~2년차 후배들과의 관계에 공을 많이 들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가장 많이 도와줬다. 당시 그들은 부서에서 매우 인정받는 주무대리였기에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계층 구조상 아래에 있는 후배들에게는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후배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나를 인정해 준 덕분에 나는 새로운 곳에서 비교적 쉽게 뿌리내릴 수 있었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일이 즐거울 수 있었다.

비단 일을 통해 큰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사람을 통해 얻는 기쁨이 더 컸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참 뒤 예전 사업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들이 이곳으로 전배오게 되었을 때 “선배은 벌써 이곳을 장악하셨군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장악이 아니라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쉽게 친해졌다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이 일을 개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후배들이 내가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회사 업무는 개인 성과보다는 조직의 성과로 포장되기 때문에 스스로 빛나기 어려운데, 이 일은 개인의 능력이 빛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일에 프로페셔널 하기를 바랐고 후배를 양성하는데도 애썼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가 하던 일을 모두 후배들이 해낸다. 청출어람이 무색하지 않게 나를 넘어선 후배들도 많이 나왔다. 나는 후배들에게 일을 위임했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새로운 업무로 전환했다. 


회사에서 숫자는 정말 중요하고 숫자는 데이터에서 나온다. 

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보다 다양한 숫자를 만들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보고서를 만들고 분석하는 분야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독서와 글쓰기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난 디테일에 강하고자 노력했고, 쉽고 한눈에 들어오는 자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나는 회사에서 제법 유명한 존재다. 대외적인 일을 하다 보니 알게된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책을 쓰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등 이것저것 많이 하기 때문에 입소문을 통해 알려졌다. 덕분에 업무외적인 일이 늘긴 했지만 즐겁다. 능력을 알아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들이 내게 의뢰하는 여러 일에 대해 멘토링 하면서 (특히 독서와 자기계발 관련해서) 함께 성장한다. 그들의 관심은 나를 더욱더 노력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17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오고 있다. 참 긴시간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시간 중에 버릴 시간이 없다. 당시에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들이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일을 통한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회사생활 #월급쟁이 #자아실현 #자기계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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