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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28. 2020

회사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 나에게 일이란 무엇이었던가?



나는 대기업 부장이다.


대학을 졸업하며 취업한 회사를 17년째 다니고 있다. 사원에서 대리로, 그리고 과장에서 부장으로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진급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회사가 없어질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 회사가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사업부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올해 초(2020년) 대표이사가 공식적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회사는 노트북과 모니터 패널(Panel)을 만들고 있었다. 대형 패널인 TV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힘겹게 개발제품을 준비 중이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은 매우 빠르게 소형에서 대형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임직원들은 밤을 잊은 채 열심히 일했다. 10인치대에서 머무르던 LCD 기술이 금세 40인치대로 확장되면서 TV라는 광활한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해갔다. 회사는 국가 제조업의 근간이었고 회사의 커다란 캐시카우(Cash Cow)였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이렇게 찬란했던 LCD 디스플레이 사업을 이제는 철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의 거센 도전에 가격 경쟁력에서 더 이상 우위를 선점하기 힘들다고 경영진은 결정했다. 나의 30대를 고스란히 쏟아부었던 사업이 뒤안길로 접어든다고 하니 사실이 아닐거라는 현실 부정의 생각과 동시에 내 밥벌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현재 회사의 LCD사업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많던 부서원들 중 절반 정도는 다른 부서로 배치받았다. 몇몇은 관계사로 이동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금씩 불안이 다가오고 있는데, 주변은 아직 여유로움뿐이다. 현실 인지감각이 떨어지는 것인지, “그래도 우리나라 1등 기업인데 설마 나를 자르겠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팀장님에게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라는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 "일하던 부서가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판단을 미뤄왔고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도 시작하지 않았다. 게을러서일 수도 있고, 앞서 언급했던 위기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회사는 나를 1이라는 숫자로 생각할 것이다.

한 명. 이름과 직급, 노하우(know-how)보다 1이라는 숫자로 나를 다룰 것이다. 회사 경영의 위기가 올 때마다 많이 듣고 봐왔다. 그렇게 1로 다루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여 내 능력과 노하우를 이어갈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 살자고 현재의 자리를 떠나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또 힘들어진다.

“침몰하는 배에서 혼자 뛰어내릴 것인가? 아니면 함께 침몰하는 배를 떠받쳐 볼 것인가?”


리더는 “이 배는 끝났다.”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이런 글을 통해 내 생각을 토로하는 것 자체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선후배들과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지만, 다들 스스로 결정은 미뤄두고 회사가 결정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미 많은 인력들이 빠져나갔고 (물론 자의로 빠져나간 것보다 인력 할당으로 빠져나간 경우가 많다. 여기서 빠져나갔다는 의미는 타 부서나 신사업으로 이동을 말한다. 퇴직은 적다.), 자신들도 재배치되는 인력에 포함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새롭게 배치받을 곳에서는 지금껏 해왔던 일과는 전혀 관련성 없는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재까지 닦아온 기술을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현재의 부서를 통째로 옮겨 신사업의 어느 한 곳에 부서를 만들어 준다면, 그래서 비슷한 일로 현재 수준의 대우와 인정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최근 회사의 급격한 변화에 생각이 많아졌다. 주된 고민은 두 가지 질문으로 정리된다.


1.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나는 어떤 일을 통해 재도약(일취월장) 할 수 있을 것인가?
2.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퇴사 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가족의 생계(돈)가 달린 문제이기에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준비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위 두 질문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찾은 해답은 “시간의 흐름에 나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라는 것과 “무언가 계속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현재 나는 위기를 걷고 있다. 회사도 위기이고, 업무도 위기다. 그러니 내 현실도 위기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에 집중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그러다 “나는 왜 회사를 다니는가?”라는 질문에 닿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내가 결단해야 할 해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왜 회사를 다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이 질문에는 사람들마다 여러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성장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라는 답을 냈다. 물론 일을 하고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지탱한다. 그것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으로 매우 중요한 일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아니라도 내가 일할 곳은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보다 더 적은 돈을 받을수도 있고, 지금보다 훨씬 힘든 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가족의 생계를 유지시킬 수는 있는 밥벌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밥벌이라는 일의 1차 목적을 걷어냈더니 위의 답이 나왔다.

17년간 이 회사를 다닌 이유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에 대한 갈망과 회사에서 부대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성장의 열매가 달콤했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현재가 편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는 편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은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런 위기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점에서 내가 내린 답은 “움직인다”와 “성장한다”였다. 또,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탑재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노하우를 좀 더 다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에서 주문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결정한 것은 “회사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겠다.”라는 것이다. 나 스스로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때, 비록 그 결정이 잘못되어 더 힘들어진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예전에 보던 스티브 잡스의 강연을 몇 편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일, 그가 생각하는 사업, 그가 생각하는 애플이라는 회사의 본질을 경청했다. 그리고 나도 그의 주장처럼 내가 더욱 명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몇 개월의 시간이 있다. 좀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결단하겠다. 과연 어떤 일을 통해 나를 다시 열정 덩어리로 만들지 말이다.


이 글을 정리하는 이유도 지금까지의 회사생활을 통해 내가 바라보는 일과 삶의 균형과 성장이 어떻게 엮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재발견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바쁘다. 


#위기의식 #성장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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