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 편.
저는 국내 대기업의 해외영업 부서에서 12년째 근무를 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해외영업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영업 업무'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취업준비생들 중에 해외 경험 없는 학생들이 없을뿐더러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해외'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소위 '있어 보이기'도 하고 다른 직무보다 '활기찬' 분위기에서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다는 것도 그 강의를 들으러 온 많은 학생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해외영업'은 생각하는 것만큼 '뽀대'나는 일일까요? 제 대답은 YES & NO입니다.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합니다. Yes에 대한 것은 생각하는 대로 해외에 있는 '파트너'나 '고객'들을 대상으로 주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뽀대'가 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로 영어나 그 국가의 언어를 쓰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며 그것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No에 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별별' 일을 다하게 됩니다. 더욱이 사회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성과'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국내'였다면 당연한 상식들이 '해외'업무를 하면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극복해야 하는 많은 장애물이 있어 '3D' 업무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은 '무역상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내용을 주로 하지요. 그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실제로 '해외영업'과 많이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개성' 있고 '주관' 있고 '강단'있지만, 한편으로는 '좌절'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며 항상 피곤해하지요. 가장 비슷한 이미지는 오 차장의 충혈된 눈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태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3박 5일의 짧은 출장이었지만 '뽀대 나는' 해외영업의 '진짜' 모습에 대해 그려볼까 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이직을 고려하는 직장인들, 또한 여자도 해외영업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모두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아직 겨울의 냉기를 간직한 차가운 바람이 꽁꽁 동여맨 스카프 사이로 스며들어 몸을 움츠리게 하는 3월 꽃샘추위,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이라며 시원한 복장을 준비하라는 태국 파트너사의 충고가 있었다.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냉장고' 정장 바지와 짧은 소매 블라우스 몇 개를 차곡차곡 쌓고 운동화 하나, 여름 샌들 하나를 잊지 않고 챙겼다. 경쟁사도 둘러봐야 하고, 전시회 이곳저곳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려면 운동화는 필수다. 10년째 사용 중인 나름 튼튼한 캐리어를 끌고 새벽 6시 반 회사로 향한다. 출장 가기 전에 미리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있다. 메일도 정리하고 출장 후 회신 가능 날짜에 대해 파트너사들에게 답신을 했다. 출장 중 문의 사항은 같은 워킹그룹 둘째, 김대리에게 문의해달라고 '자동회신' 알람도 작성했다. 부재중 대신 처리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정리하여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업무'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하고, 회사라는 집단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통해 이것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게 해 놓았다. 현실은 잘 진행된다기보다는, 같은 '시스템'안에 있는 너와 내가 알알이 품앗이하는 느낌이지만.
회사 앞 공항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새로 개장한 제2터미널이라니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을 걸 생각하니 한시름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태국 바트화를 소액 환전하고 핸드폰 자동로밍도 잊지 않고 신청한다.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비행기 체인지 중이라 체크인이 안된단다. 30분을 버선발로 동동 거리며 기다리자니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간다. 공항에서 30분을 까먹다니. 30분이면 라운지에서 '라면'한 사발에 '과일' 후식을 먹고 샴페인으로 입가심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던 것일까.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역시 새옹지마. 세상 일은 나쁜 일이 있다가도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라운지와 비행기내에서는 노트북에 담아온 자료를 프리뷰 하느라 정신이 없다. 당장 도착한 다음 날부터 미결된 현안을 협의하고 중장기 계획을 논의해야 한다. 방문해야 할 업체 리스트도 빠짐없이 체크했다. 동선을 고려해 파트너사 직원이 미리 어레인지를 해주었지만, 더 많은 곳을 방문하기 위해 지도로 동선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질문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 본다. 경쟁사나 업체 방문을 했을 때는 질문지를 꺼내 읽어볼 새도 없이 바로바로 질문하고 노트 테이킹이나 머릿속에 저장을 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출장 결과 보고서를 유의미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좀 쉬면서 눈 좀 부치려고 했지만, 자료를 읽다 보니 어느새 도착 시간이 가까워진다.
태국 방콕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숨을 쉬기도 벅차게 한다. 길고 긴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파트너사 직원이 픽업을 위해 대기 중이다. 나를 위해 이렇게 늦은 밤에도 나와 주다니, 같은 직장인으로서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지. (반대로 나도 파트너사 한국 방문 시 새벽이나 밤늦게 공항 픽업을 와야 할 때면, 정말 짜증이 용솟음치지만... 어쩌랴.. 그게 해외 영업인 것을...)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전시회 장을 방문했다. 프레스 데이인 이 날은 주로 언론 기자들이 주 방문객이었고, 여기저기 플래시를 터트리며 신제품에 대한 열띤 취재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 틈 사이로 우리 태국 파트너사가 출시한 신제품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장단점을 매의 눈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내 출장 결과보고서에 담아낼 것들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태국 시장에 대한 본사 정책 및 전략이 수립되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사가 내놓은 신제품도 빠트릴 수 없다. 나를 보좌(?)하는 미션을 부여받은 파트너사 직원은 열심히 경쟁사들의 제품의 '뛰어난 경쟁력'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하였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보다 경쟁사는 더 좋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면서 '지피지기 백전백승' 심정으로 꼼꼼히 신제품 동향에 대해 탐색하였다. 종일 돌아다니느라 수고한 발을 위해 잠시 쉬기 위해 앉은 '별다방'에서 머릿속은 여전히 보고서에 담을 아이템을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고 있었다. 발은 쉬고 있는데, 머리는 쉬고 있지 않은 상태, 거기다 카페인이 들어가니 며칠 밤을 새운 것 같이 띵~ 하다 못해 멍~ 해지기까지 한다.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오늘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언어와 시각으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은 경쟁사와 업체 방문이 이루어졌다. 방콕의 교통체증이란, 들어보니 세계 1위라고 한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갔을 때도 1위라고 하더니만, 무슨 영광도 아닌 데 너도나도 교통 체증 1위라고 자랑(?)이다. 경쟁사와 업체를 방문하여 어떻게 판매를 운영하는지, 인력은 몇 명인지, 판촉은 어떻게 하는지, 요즘은 어떤 트렌드 인지, 어떤 고객 층이 제품을 구매하는지 등 비행기 안에서 정리했던 질문 리스트를 바탕으로 빠짐없이 인터뷰한다. 어제는 발이 아팠는데 오늘은 하도 질문을 많이 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목이 안팎으로 아파온다.
태국 파트너사 회의실. 엄숙함마저 감돈다. 파트너사 마케팅 차장이 작년 마켓 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해 준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태국 파트너사의 성과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강조한다. 10주년을 맞이한 태국 파트너사는 10년을 이끌어 온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자신감에 '동지애'마저 느껴지며 고마웠지만 나는 물었다. 'So what's the next?' 또 맞이할 10년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시장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지금 상태만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는 대답이었다. '지금 영업이익도 좋고 할 때 투자를 해야지, 변화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Risky 한 전략입니다.'라고 다소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서는 남 탓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현재의 '성과'에 대해서는 내덕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더불어 미래의 '성공'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예지력에 기대고 싶어 한다.
현재의 위기를 발판 삼아 지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으며, 미래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개척하는 도전정신이 있을 때 제2의 기회는 다시 온다. 이 문장은 그대로 '해외 영업인'이 갖추어야 할 마인드라고 말하고 싶다.
추진해야 할 올해의 사업 목표와 중장기 전략에 대한 장시간에 걸쳐 회의가 끝났다. 오고 가는 질문도 많았고 그 속에서는 우리는 태국 사업의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어느 정도 그림은 그려진 것 같았다. 보고서에 들어가야 할 '전략'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고, 태국 시장 확대를 위해 본사에서 추진해야 할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저녁 만찬은 특별히 '한식'이다. 한식만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들은 특별히 멀리서 온 한국 손님에게 한국 거리에서 익숙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한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제 출장의 끝이라는 안도감.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의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최종 출장 결과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내일 출근 하자마자 결과 보고서를 상무님까지 보고해야 한다. 그래프나 그림으로 도식화를 좋아하는 팀장님 스타일에 맞추려면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어찌되었든 이번 출장도 무사히, 그리고 어느정도 태국 시장에 대해 인사이트를 얻고 돌아간다.
'뽀대 나는 해외영업' 은 해외출장을 갔을 때 그 절정의 빛을 발합니다. 파트너나 고객사와 목표를 설정하고 마켓 트렌드를 공유하며, 중장기 계획을 함께 그리며 같은 배에 올라탑니다. 이 모든 것은 해외출장 결과 보고서로 응축되며, 그 보고서가 결국 '성과'를 내는 시작이 됩니다. 해외출장을 통해 '해외영업'의 '진짜' 업무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해외출장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든 업무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뽀대나는 해외영업'의 진실은 끊임없는 탐구,사업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추진력을 바탕으로 하는 인고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