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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23. 2024

씩씩이가 꿈에 나왔다.

씩씩이와 76일 간의 이별

제목 사진 설명 - 이불속에서 쉬고 있던 씩씩이가 궁금해 이불 속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더니 뭥미???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웃겨서 사진으로 찰칵!!


어젯밤 씩씩이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 어딘가로 여행을 갔고 마지막 날 퇴실을 위해 숙소에서 짐을 모두 챙겨 나왔는데 갑자기 씩씩이를 숙소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어 다시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 씩씩이를 찾았고 침대 이불 모양이 볼록한 것이 딱 봐도 씩씩이가 이불 속에서 잠이든것 같았다.

이불을 젖혀보니 씩씩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녀석의 존재를 잊고 숙소를 나온 것에 식겁하며 씩씩이를 품에 안고 나오던 중에 꿈에서 깨어났다.  


씩씩이는 평소 겨울에는 포근한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쉬거나 잠들고는 했다.

그러다 날이 더워지면 푹신한 이불 위로 올라와 잠이 들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천재견 테스트 항목 중에 가벼운 이불로 강아지를 덮고 몇 초 만에 이불 밖으로 빠져나오는지 시간을 측정해 강아지의 지능을 판정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 그 항목으로 씩씩이를 검사했다면 단연 천재견의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이불 속에 푹 들어가 있다가 엄마가 퇴근한  인기척을 들으면 단 5초도 안되어 식은 죽 먹듯 이불을 헤집고 밖으로 빠져나왔던 녀석이었다. 그 순간 마주했던 녀석은 이불 정전기로 인해 사방으로 뻗친 얼굴 털이 마치 아기 사자 같았다. 그렇게 이불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모습이 마냥 귀여워 웃음이 나곤 했다.


아침에 꿈에서 깨어 책꽂이와 화장대에 놓인 씩이 사진을 바라보는데 앞으로도 사진으로 밖에  만날 수 없다는 현실에 깊은 슬픔과 진한 그리움이 올라와 살짝 눈물이 났다. 하지만 아침부터 눈물 바람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곧바로 눈물을 닦고 사진 속 녀석의 얼굴을 매만지며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되새겼다.


얼마 전 식당에서 소고기를 먹는 중에도 문득 씩씩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씩씩이는 투병 중에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주어도 암의 기세 때문인지 통 먹지 못했다. 당시 씩씩이가 소고기를 거부할 정도로 식욕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와 후회가 된다.

암에 걸리기 전에 맛있는 음식 원 없이 해줄걸!

아니, 암 초기만 해도 잘 먹었으니 그때라도 소고기 많이 먹여줄걸... 아무것도 먹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준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뒤늦게 깨달은 내 어리석음과 기분 좋게 한입 집어 들었던 소고기의 맛이 섞이며 목이 메었다.


당시는 녀석을 떠나보낸 후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다 자평했지만 내 교만함의  정곡을 찌르듯 시간이 흐를수록 '걸. 걸. 걸'하며 후회가 밀려온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 한들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후에 한 점의 후회조차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같다.

왜냐하면, 정말 사랑했다면 사랑의 상한선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퍼주고 퍼주어도 정말 마냥 퍼주어도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랑일 텐데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후회 없는 이별'이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별 후 후회가 없다는 것은 내가 정해놓은 한계선 안에서 적당히 사랑했다는 방증일테다.


나는 사실 씩씩이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하지만 자책하며 힘들어하지는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자체가 여전히 씩씩이를 한계선 없이 무한히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씩씩아.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했단다. 알고 있지?

지금도 엄마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야. 꿈에서라도 얼굴 보여줘 고마워!^^

언젠가 엄마랑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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