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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28. 2024

1월 3일, 5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2024년 1월 3일, 암이 완치된 것 같은 착각 속 기적의 산책


오늘은 씩씩이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엄마표 이발을 단행했다.

병색이 완연해지면서 부드럽던 모질도 얇아지고 윤기가 사라지면서 자꾸 엉켜 꼬질꼬질 해졌다.


가끔씩 뒷발로 귀를 긁어대 귀털 정리 겸 귀청소도 필요한 것 같아 이왕 하는 김에 전체적으로 이발을 해주었다. 아프기 전에는 1~2주마다 목욕을 하고 귀청소는 매주 해주었는데 방광암이 발병하고 부터는 위태로운 생명 앞에 그런 사소한 케어까지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 이발을 마쳤어도 씩씩이도 힘들었을텐데 잘 참아주어 고마웠다.

겨울에는 긴털이 추위도 막아주지만 그동안은 병이 악화일로여서 얼마나 살아줄지 장담할 수 없는 터라 이발할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ᆢ

어젯밤 3일째 대변을 못 본 녀석이 걱정되어 배변을 위해 집 앞 산책로에 잠시 나갔다 놀라운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못 걷겠거니 하며 제발 대변이라도 봤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큰 기대 없이, 녀석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놀랍게도 정말 건강할 때처럼 잘 걸으며 산책을 했다.


마치 암이 기적처럼 완치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요 근래 씩씩이는 산책을 나가도 잘 걷지 못했다.

뒷다리에 힘이 없는지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함께 힘겹게 선채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해 결국 산책을 포기했었다.


생명은 이토록 신비롭다.

하루 사이에도 컨디션 변화가 크니 씩씩이의 상태를 단정하거나 섣불리 예측할 수가 없다.

밥도 못 먹고 걷지 못할 때는 당장 내일이라도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시키다가도 어제처럼 평소 건강할 때 마냥 가벼운 몸놀림으로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더 오래오래 살아줄 것만 같다.


지독한 병마도 씩씩이의 삶에 대한 굳은 의지를 쉽사리 꺽지 못하는 것 같다.

씩씩이가 힘겹게 얻어낸 소중한 하루를 엄마의 사랑과 행복한 추억으로 꼭꼭 눌러 채워주고 싶다.


방금도 저녁 산책을 다녀왔고 대변도 시원하게 보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평안히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2024년 1월 5일, 노견을 키우면 겪게 될 일


강아지도 나이 들면 사람이 나이 들어 겪게 되는 일들을 똑같이 겪는다.


사람도 나이 들수록 기력이 쇠하고 아픈 곳이 많아지듯 반려견도 똑같다.

다만 사람은 아프다 표현을 하고 제 발로 병원에 가지만 노견은 아픈 것을 잘 숨기므로 주인이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질병을 놓치기 쉽다.


반려견이 노견이 되면 다음과 같은 변화를 겪는다.


첫째. 사람처럼 의료보험 지원이 안되니 병원비 지출로 인한 재정적 타격이 생긴다.

어떤 질병이냐에 따라 매달 정기적으로 지출되는 약값부터 각종 검사비, 수술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나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아기 때부터 병원비 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돈을 모아두면 추후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대소변 문제가 시작된다.

사람도 나이 들어 배변처리를 스스로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대부분 이때부터 가족케어의 범위를 넘어서 전문의료인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처지가 된다.


노견도 마찬가지로 배변실수가 잦아지기 시작한다. 사람과 달리 반려견의 대소변 처리는 온전히 견주의 몫이다.


나도 두 녀석이 다 노견이다.


오늘 새벽에도 새롬이의 무차별 똥. 오줌 살포로 인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화장실에 가기위해 가수면 상태로 깨어났다 거실에 사방팔방 찍어 놓은 똥도장에 아연실색하며 치우느라 단잠이 몽땅 달아나버렸다.  

새롬이는 양눈 모두 실명해 패드에 똥을 싸놓고도 보이지 않으니 밟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씩씩이는 내내 새어 나오는 소변으로 기저귀를 차고 있어 새벽에 한 번씩 깨어 기저귀를 교체해줘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털을 이발한 후라 기저귀가 헐거웠는지 이불에 소변이 다 새어버려 빨랫감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노견이 되니 시도 때도 없는 똥오줌과의 사투가 빈번해졌다.


셋째, 나의 일정 역시 강아지들 케어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건강할 때는 집에 놔둔 채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었지만 병에 걸리거나 아프면 사람처럼 전문의료기관에 입소시켜 간호를 맡길 수 있는것이 아니므로 집에서 아픈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주 양육자 한 사람은 꼭 있어줘야 한다.


넷째, 산책 양상이 변화한다.

어릴 때는 어디든 거침없이 직진하던 녀석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산책 속도도 느려지고 산책 후에는 피곤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또,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아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는 산책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산책으로 더위를 피하고 겨울에는 그나마 따뜻한 오후 2시~3시 정도에 산책을 나가야 한다.


반려견으로 인연이 닿아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생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옆에 있어 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가능한 일이고, 생명의 전 생애를 마지막까지 돌보아 주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고귀한 일이다.


발랑 발랑 하며 마냥 귀엽던 반려견이 사고뭉치 노견이 되고,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 내 모든 자원을 나누어 돌봐야 함에도 여전히 내 눈에는 반짝반짝 빛나던 귀욤뽀짝 아가 시절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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