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현 May 14. 2024

12월 23일, 27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12월 23일, 씩씩이 주말 나들이


토요일 주말 아침은 모든 음식을 다 거부해 가까스로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간식이라도 먹어주어 고마웠다.

한입 먹어줄 때마다 고맙다 고맙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만 있음 답답할 것 같아 씩씩이만 데리고(새롬아 미안해ㅠㅠ) 애견카페에 갔다.  인근 호수에서 산책도 했다.


2주 전부터 눈이 아프면서 먹는 양도 많이 줄고 최강한파까지 겹쳐 산책할 엄두가 안 났는데 오늘은 날이 좀 풀려 20분 정도 천천히 산책을 했다. 시원하게 배변했다. 배변까지 마치면 하루치 과제를 완수한 기분이다. 배변을 해야 식욕도 좀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2주 전 애견카페에 왔을 때만 해도 눈에 이상이 없었는데 2주 만에 한쪽 눈이 실명했단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는 아직도 이 모든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방광암만 아님 세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녀석인데ᆢ

바뀌지 않을 현실이라면 의미 없는 가정법은 기운만 소진시킬 뿐이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칫 우울해지려 하는  마음을 잘 챙기며  하루하루 선물처럼 매일 아침  곁에서 숨 쉬어주는 씩씩이. 새롬이와 최대한 풍성하게 교감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이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의식하기 시작한  나이? 더 정확히는 노화?를 인지하고 이 난제를 타개하는 건 애초 불가할 테니 어떻게 받아들여나 하나 고심하다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해결책이 복잡한 인생사에 다 적용이 된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 맛있는 음식 먹고, 아름다운 경치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나 자신과 최대치로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우리 삶도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증발하듯 사라질 수도 있는 새털 같은 운명을 가진 것이 인간의 삶이다.

여하튼 소중한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12월 27일, 음식을 먹지 않는 씩씩이



평소 식탐이 많던 씩씩이가 지금은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한다. 사료를 못 먹게 된 지는 꽤 된 것 같고, 사료 대신 소고기나 닭고기를 번갈아 주면 그런대로 먹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먹지 않는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간식을 구입해 번갈아 가며 씩씩이의 코 앞에 갖다 주어 냄새를 맡게 한 다음 먹으려고 시도하는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녀석의 입에 넣어 주고 있다. 하지만 간식도 몇 번 받아먹으면 끝이고, 겨우 입에 넣은 간식도 다시 뱉어내고 있다.


이제 씩씩이는 음식이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인지, 암세포에게 더 이상 영양분을 공급하기 싫은 것인지,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포기한 듯싶다.


오늘 아침은 황태포 하나 먹은 게 전부다.  


지금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지 엊그제 밤부터는 다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폐로도 암세포가 전이되었는지 밤만 되면 호흡을 몰아쉬며 안절부절 힘들어한다.


오늘 새벽, 녀석이 옆에 없어 거실로 나가 보니 눈을 뜬 채 물통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갈증을 못 이겨 물을 마시러 갔든지, 아니면 자고 있는 엄마 옆에서 혼자 고통에 몸부림치다 아무도 없는 거실로 나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자신을 고립시키며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한없이 안쓰러운 녀석을 안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쓰담쓰담 부드럽게 만져주며 어떻게든 잠을 청하도록 해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씩씩이의 상태는 나빠지고 있다. 강아지건 인간이건 수명은 미지의 영역이고 내 소관이 아니기에 녀석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통증으로 괴로워할 녀석을 위해 하루 1회 놔주던 진통제를 2회로 늘려 주사해 주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을 주는 것, 힘들어하는 녀석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다.


씩씩이에게 오늘 하루가 주어졌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므로 어떻게든 나는 먹이려 한다. 먹어야 오늘 하루를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라 씩씩이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


생명체는 대자연의 법칙 안에서 늘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 안에서도 질서는 있다.

그 질서 중 하나가 언젠 가는 우리 모두 수명을 다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그 당연한 대자연 속 질서를 받아들여야 함에도 내 눈앞에서 소멸해 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없이 슬프고 애석하고 아프다.


나는 씩씩이와 말 그대로 온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4계절 내내 산과 들, 하천가 할 것 없이 씩씩이의 코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온 동네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다. 씩씩이와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평화로웠고 씰룩씰룩 신나 보이는 녀석의 뒤태를 보면 덩달아 신이 났다.


이제 그 기억은 녀석과 나만의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스틸컷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 씩씩이는 이제 변화했다.

지금은 암과 싸우며 겨우 겨우 생명의 빛을 태워내고 있다.

그 빛은 언제 꺼질지 몰라 위태롭기 그지없다.


나도 씩씩이도 변화한다. 씩씩이의 변화 앞에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저항하면 할수록 내 생명도 함께 말라간다.


이제 씩씩이가 내 품을 떠나 아름다운 강아지별에 안기는 그날까지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 우리 씩씩이가 더 이상 고통 없이 아버지 품에 편안히 안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전 25화 2023년 12월 22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