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 끼여 3일 연휴였던 지난 주말,
모처럼 엄마가 집에 다녀갔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산다.
특히 내가 아기를 낳은 이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멀리 다녀오기 힘들다고
한사코 본인이 올라오시겠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하는데
역시 말이 쉽지, 연에 한 두번 손 꼽는 일이 되어간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얼굴이 헬쓱하다.
반년사이 딸의 집 베란다에 초록초록 식물이
한가득 들어차있으니 아마도 조금 놀랐을까, 모르겠다.
내가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화분을 키우는 건 엄마로써도 본 적이 없으니까.
어쨌든 나의 조그만한 정원을 엄마에게 보여주는 건
연락이 뜸했던 그 동안의 나의 시간을 대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엄마, 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
그래도 나 이렇게 식물들 키우면서 잘 이겨내고 있었어' 라고.
어렸을때 지독히 가난했던 우리집 형편에
화분을 키우는 일은
그저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집은 그냥 잠 자는 곳,
눈 뜨면 생계를 위해 일터로 가야 하는 상황에
식물을 가꾼다는 건 현실과는 꽤나 동 떨어져 있는 일이긴 하니까.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그 '팔자 좋은 사람' 이 되어보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여유가 흘러 넘쳐 식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여유를 만들어 내려고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거니까.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이 팍팍했던 지난 겨울,
식물들도 잠들어있던 그 시기에
나는 잠들어있던 초록이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정원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식물 이름을 이야기하며
관심을 보이는 엄마가 왜인지 낯설었다.
엄마는 이런데 전혀 관심 없다고 생각했기에
엄마가 슬쩍 "나도 집에 고무나무는 한그루 갖다놨다"
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엄마도 이제 여유를 찾아 나가는구나 싶어
작은 안도감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어릴적 나는
화분을 키우는 집을 보면 여유있는 집이라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말했다.
그 말도 맞다고.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화분도 돌보지. 라고.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그간 내가 식물에서 얻은 에너지로 용기내 덧붙였다.
"엄마, 근데 꼭 여유가 있어야만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더라.
식물을 키우다보니 여유가 생기더라."
무뚝뚝한 경상도 딸의 깨달음을 엄마가 잘 전달 받았을까,
모르겠다.
그저 나는 엄마가 이제는,
엄마도 이제는 나처럼 아파트 한켠에 작은 정원을 들이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친구들을 들여다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다음에 내려갈때 화분 좀 챙겨가서
엄마 정원 만들어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