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견고한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자신만의 취향을 쌓아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친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남몰래 자신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수집하는 일이라는 걸 아마도 나는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늘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만 보았던 시간들이 있다. 그저 바라만 보며 마치 나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든 듯 까마득히 먼 이야기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아마도 그때의 난 나랑 조금 덜 친했던 모양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에게 참고 있던 호흡을 충분히 내뱉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주었더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특히 지금 나의 베란다 정원이 나의 변화를, 나의 회복을, 좁혀진 나 스스로와의 거리를 보여준다.
나의 취향이 한껏 묻어있는 나의 베란다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부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내 나이대에서 공감을 사지는 못하는 모양새였다.
여전히 삼십 중반이 가진 취향치고는 조금 올드해 보인다는 시각이 대세인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온전히 내가 선호하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의 고유한 무엇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런 반응들을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넘기고 나의 정원을 가꾸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원래 힘들면 자연을 찾고 그래”
100프로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내가 이 안에서 치유받고 회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색이 입혀지는 이 공간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나 이만큼 나랑 친한 사람이야
나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한 사람이야
나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야
라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내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대견하다.
나의 베란다가 하나 둘 초록으로 무성히 채워지는 만큼 나의 텅 비었던 마음에도 하나 둘 뿌리가 차오르는 중이다.
아마도 나는 식물의 그 단단함과 우직함을 닮고 싶었던 모양이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내 갈길 갈 수 있는 그런 내면의 힘을 얻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오늘도 식물들 속에서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돌보는 것으로 내 소중한 오늘을 건강한 에너지로 시작한다.
많이 좋아졌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