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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by Slowlifer

오랜만에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 중 문득

‘아 지금 나 신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찍어둔 식물사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을 키우냐며, 물 주는 주기가 다 비슷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며 나름 식집사의 면모를 갖춘 것 같아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나씩 매일 들여다보고, 흙 만져보고, 물이 필요하다 싶으면 주는 거야.”


리액션이 좋은 나의 친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얘기했다.

“나 생일날 조카들이 화분 2개를 사줬는데 벌써 잎이 두 개 밖에 안 남았어..”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친구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물 주기가 까다롭지 않다는 선인장도 죽이는 똥손이라며 식물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나랑은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여러 식물들을 키워보며 배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각의 그 특성에 맞게 끊임없이 가꾸어줘야 한다는 것을.

식물을 관리하며 나를 보살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아직 초보 식집사이지만 분명한 건

얘네가 내 마음을 다 안다는 거다.


물주기, 햇볕샤워, 통풍 등 어느 하나 관심을 소홀히 하면 식물은 바로 불만을 표시한다.

잎이 타들어간다거나, 모양이 틀어진다거나, 벌레가 생긴다거나.


반대로 매일 같이 관심을 보이고 정성을 쏟아도

내 눈으로 그 성장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가 없이 그 속도는 더디다.


그 변화를 눈치채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룻밤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도 눈에 불을 켜고 이 친구가 밤 사이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관찰해야지만 비로소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식물을 기르는 방식대로 나를 돌보려 애쓴다.


매일같이 눈에 띄는 성장이 없더라도

그 속도가 더딜지라도

재촉하지 않고 매일같이 식물을 돌보듯 나를 살펴주는 일을 한다.


한 끼라도 건강하게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거나

날씨가 맑은 날엔 춥더라도 나가서 햇볕을 쬐어준다거나

좋은 습관을 하나씩 늘려간다거나 하는 것들.


각 식물들이 그 성장 속도가 제 각각이면서도

서로 비교하지 않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 속도에 맞게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내게 안겨주는 식물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이게 집착은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이 든다.


순식간에 집안에 많은 식물들을 들여놓으며 머쓱한 마음에 스스로 이건 나의 새로운 집착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내게 꼭 필요한 걸 스스로가 잘 알아챘고 좋은 것들을 내 곁에 두는 노력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식물 중 몇몇 식물은 남편의 픽이었는데,

그중 남편이 가장 애정하는 식물은 단연 몬스테라이다.

흔히 보이는 식물이기에 나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집에 들여오고 보니 이만큼 근사한 식물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 역시 그 매력에 푹 빠졌는데, 12월에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벌써 두 번째 신엽을 피웠다.


새순이 빼꼼 올라오는 걸 눈치챈 지 2주 정도 지나니 동그랗게 연둣빛 신엽을 펼쳐냈다.


여전히 새로운 신엽 줄기를 포착할 때면 언제쯤 잎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을 내는 나지만 조금씩 이 조바심도 내려놓고 각 식물들의 속도를 느긋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몬스테라

직광보다 간접광을 선호

겉흙이 말랐을 때 충분히 관수

적정 온도 20-28도, 최저온도 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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