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취향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걸 알아내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걸 즐길 줄은 몰랐으나 산과 나 무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처럼,
해보지 않았기에 알아채지 못했을 뿐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무언가가 취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먹지도 못하는 꽃을 왜 돈 주고 사지’라는 무드 없던 시절을 지나
한송이라도 꽃을 선물하고 받는 일이 꼭 대접받고 대접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시절을 또 지났다.
그리고 지금은?
초겨울이 되면 튤립 구근을 주문한다.
겨우내 햇볕 가득 들어오는 베란다에서 몇 달을 보낸 튤립은 3월쯤이 되면 예쁜 꽃을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보여주는데 그 한 번의 황홀했던 경험이 이제 나의 매년 루틴으로 자리 잡아간다.
식물을 키우고 난 뒤 꽃시장에 들어서도 절화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 뒤로 기념일이면 꽃다발을 사다 주던 남편에게도 꽃다발 대신 화분을 사주는 게 어때?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여전히 꽃다발을 선물 받는 그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 분명하게 선 그어놓진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여전히 예뻐서 꽃을 사고 싶은 날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꽃을 보는 시간보다 시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시들어 색이 바래 말라버린 꽃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그 과정이 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사람과도 식물과도 이별하는 게 여전히 쉽지 않은 나인 탓이다. 오래 옆에 두고 오래 보고, 오래 같이 살고 싶은 욕심이다.
아쉬운 듯 먹기보단 배 터지게 먹는 걸 좋아한다.
시간 내 틈틈이 보는 것보다 시간제한 없이 약속을 잡는 걸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쉬운 만큼, 그만큼이 딱 좋다고,
그래야 다음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언젠간 이 또한 이해 가는 날이 오겠지?
식물을 가까이하면서 얻는 게 많다고 느끼는 탓인지
자꾸만 주변에 식물을 권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렇지만 자제하는 이유는 식물도 생명이기에,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준비가 된 누군가를 찾기 전까진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놓는다. 혼자 마음속으로 심사를 하는 것이다. 식물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없을지.
뭐 대단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대게 준비가 되어 있다면 먼저 관심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염려가 필요 없는 식친구가 있다.
바로 시어머님. (어머님은 내가 식친으로 생각하는 줄 모르시겠지만 ㅎㅎ)
이미 오래전부터 식물들과 함께 하고 계신 분이라 믿고 맡길 수 있다.
갑자기 튤립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어제 어머님께 사진 한 장을 받았는데 이게 나를 기분 좋게 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 집에 심어 놓은 튤립 구근 화분 하나를 시댁에 놀러 가며 선물하고 왔는데,
집에 해가 안 들어 걱정이라는 말씀과 달리 이미 꽃대를 올린 노란 튤립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 튤립도 여전히 키만 크는 중인데 벌써 꽃대가 올라왔다니 어떻게 된 거냐 여쭈니 매일 밤 식물등을 켜어주셨다고.
역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선물 받은 생명을 어떻게든 잘 살려보겠다 살뜰히 챙기셨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또 곧 예쁜 노란 튤립을 보며 내가 그랬듯 며칠간은 행복해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식물을 키우는 일의 또 하나 좋은 점.
이렇게 사람을 연결해 준다는 것.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런 것처럼 이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대상을,
어찌 보면 일방적인 것 같은 이 관계에서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준다는 건 분명 그 사람의 마음은 적어도 모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짐작이 되기 때문에.
아마 나처럼 겉과 달리 속이 매우 여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초록이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좋은 건 더 나누고 싶은 법이니까 -
튤립
충분한 햇볕과 배수가 잘되는 토양 필요
10-12월 사이 심기
2-5도 저온에 2개월 정도 있어야 꽃을 피움
겉흙이 마르면 듬뿍 물 주기 (건조한 게 나음)
꽃이 완전히 시들면 캐내서 보관하고 가을에 다시 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