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김치에 맨밥만 먹을지라도
최근 생일이 있었다. 생일이 설에 가까운 관계로 부모님께 꽤 많은 용돈을 받았다. 생활비로 써도 상관없지만 생일선물로 받은 돈이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간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마흔살 기념선물로 스타우브 라이스 꼬꼬떼를 구입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맞벌이를 하시던 와중에도 늘 가스압력솥에 밥을 지어 주셨다. 압력솥이 만든 쫀득한 밥맛은 너무나 내 스타일이라 수저를 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들어갔다. 맨밥에 김만 싸 먹어도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맛있던 밥이 냉장고에만 들어가면 밥맛이 처음 같지 않았다. 전기밥솥이 잠시 우리 집에 기거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건 더 별로였다. 갓 지어졌을 때도 압력솥 밥맛보단 뭔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보온상태가 길어질수록 밥풀의 식감은 마치 모래알처럼 변신했다.
그래서 엄마는 번거로움을 극복하시고 다시 가스압력솥으로 돌아갔다. 물론 밥을 왕창 해서 냉장고에 쟁여둘 때도 많았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린 찬밥이라 할지라도 전기밥솥 속 밥보단 훨씬 내 취향이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나도 닮은 것일까, 우리 집엔 전기밥솥이 없다. 대신 결혼하자마자 큰 맘먹고 휘슬러 압력솥을 샀다. 휘슬러로 만들어 먹는 밥은 참 맛있다. 하지만 2인 가족이 먹는다 할지라도 두 그릇 정도는 꼭 남아 냉장고에 들어갔다. 근데 남편 없이 혼자 밥을 지어먹는다면 4그릇 이상이 냉장고에 들어가야 한다. 난 갓 지은 밥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4끼를 렌지밥을 돌려먹어야 한다니, 이런 비극이 있나.
어떻게 해야 매 끼니 갓 지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무쇠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작은 무쇠솥으로는 2그릇 정도 분량의 쌀밥을 지을 수 있다. 한번 먹고 남은 밥은 솥에 그대로 뒀다가 다음에 먹을 땐 물 조금 넣고 인덕션에 재가열하면 다시 갓 지은 밥이 된다.
무쇠솥밥은 전기밥솥보다, 햇반보다, 냉동밥보다 참 번거로운 일이다. 아무리 무쇠솥이 일반 냄비보다 압력이 높다지만 그래도 쌀을 불려놓긴 해야 한다. (참고로 휘슬러는 흰쌀로만 밥을 지을 경우엔 불리지 않아도 된다)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집밥만큼은 주린 배에 대충 쑤셔 넣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날 대접하고 싶다. 이리저리 부족한 부분이 많은 나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나를 위해 매일 이 정도의 정성은 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흰쌀 1컵 반을 넣으면 딱 떨어지는 두 그릇이 나온다. 쌀을 씻어 넣고 20분 정도 불려준다.
인터넷에 냄비밥 만드는 이런저런 방법이 많던데 내가 밥 짓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냄비뚜껑을 닫고 중불로 가열한다. 밥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불 세기를 유지한다.
2. 밥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약불로 줄인 후, 뜸을 들인다. 시간은 딱히 정하지 않는다. 가끔 뚜껑을 열어 밥알을 뒤적거리며 내가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밥풀들이 변신했다면 그때 불을 끈다.
3. 불을 끄고 나서 밥을 전체적으로 골고루 섞어 준다. 이 상태에서 바로 밥을 퍼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시 냄비 뚜껑을 닫아 뜸을 들이는 것이다. 불은 꺼져있지만 무쇠솥이 머금고 있는 잔열이 밥을 더 맛있게 뜸 들여 준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무쇠솥밥이다. 냄비밥은 압력솥밥에 비하면 좀 더 고슬고슬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무쇠솥밥 특유의 쫄깃함이 있다. 여기에 김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부모님의 선물 덕분에 딸내미가 배달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 매일 갓 지은 밥을 먹고살고 있다. 3월이 되어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다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쇠솥밥을 매일 해 먹고 싶다. 중년이 되었으니 이제 좀 더 품격 있는 식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귀찮더라도 좀 더 나를 대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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