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카페 메뉴판에 ‘히비스커스 차(茶)’가 보이면 난 꼭 그것을 시켜 먹고 싶다. 붉고 시큼한 찻물을 넘기며 늘 생각하는 것은 모교의 다홍빛 히비스커스 담장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즈음이면 주황과 빨강 사이의 꽃들이 덩굴져 피어 온 학교 담장을 뒤덮었다. 히비스커스 줄기는 예배당-모교는 미션 스쿨이라 학교 안에 교회가 있었다-으로 이어지는 굴다리까지 가득 메웠는데 꽃이 피면 그 굴다리 속엔 붉은 꽃 그림자가 찻물처럼 어렸다. 굴다리 아래는 저항심이 가득했던 나와 내 친구의 비밀 공간이었다. 교리 시간만 되면 우리 둘은 교목(校牧)선생의 눈을 피해 굴다리 밑에서 키득대며 컵라면을 훌훌 불어 먹었다. 그 때 우리는 소심한 일탈의 전리품으로 얻은 라면 국물에 일말의 죄책감을 말아 배를 채우면서 아주 행복해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한 일탈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담임 선생이 교리 수업을 듣지 않는 불온한 양 두 마리를 결국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 날 담임선생은 우리를 크게 혼내지 않고 굴다리 속 우리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담임선생이 한 말이라고는 “돌아가자” 한 마디뿐이었다. 담임선생은 말이 정말 없는 사람이었다.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될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난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교단 앞에서 50분 동안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늘 궁금해했다. 우리 모두 담임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없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김민기와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했고, 절대 스스로 말한 적은 없지만 모두가 알고있는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점.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67년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노인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
모교에선 매해 3월이면 급훈을 무엇으로 할 지가 급우들 간 최대 고민거리였다. 보통은 복음서의 좋은 구절을 뽑아 투표로 정했다. 그러나 담임은 당신이 하고 싶은 급훈을 하겠다 선포했다. 그는 역시 사족을 붙이지 않고 급훈을 인쇄한 종이를 액자에 끼워 넣어 수업 첫 날 칠판 위에 걸어 두었다. 우리의 급훈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뜻에 별 신경도 쓰지 않던 우리가 그 어구의 진의를 알게 된 것은 스승의 날이 다 되어서였다. 어느 날 선생님은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악보를 한 움큼 들고 와 우리에게 나눠주며 스승의 은혜 대신 그 노래를 불러달라 했다. 우리는 가사를 보고서야 급훈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노래는 ‘어두운 빛이 내려오면 처마 밑에서 울고 있을 아이를 보고 눈물이 고이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 했다. 나는 그날 말 없이 악보를 건네던 담임의 과묵함이, 어떤 화려한 수사로 점철된 글귀나 성경의 구절보다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꽃덩굴 속 굴다리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도 교목 선생 대신 몇 달을 모른 척 해주던 그가 교목의 성화를 못 이기고 교목 대신 우리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었다.
그날들의 기억들에는 늘 묵직한 그리움이 배인다. 히비스커스의 붉은 찻물을 보며 그리는 것은 서투른 적의로 가득 찼던 히비스커스 꽃덩굴 속의 어린 나와 붉은 꽃덩굴 속을 헤치는 선생님의 손, 그리고 그 꽃보다 붉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