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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Oct 04. 2019

아빠견 소임을 다하다

D+67


며칠 전 일곱 살 아빠견 별이가 마침내 중성화 수술을 했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 만에 암컷 달이를 만나고 다시 3년 만에 첫 교배를 해서 네 마리의 새끼를 본 후 소임을 다했으니 중성화를 하기로 정한 거다. 그동안 두 아들이 새끼 강아지를 보고 싶다는 바람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지만 이젠 별이를 위해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그만두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교배 출산 그리고 새끼견 육아! 한 번은 해 볼만한 일이 었지만 우리 모두 두 번은 자신이 없었기에 과감히 병원으로 향했다. 일곱 살이나 먹은 노견이라고 피검사를 해야 한다 해서 앞다리에서 피를 뽑아 간수치부터 이것저것 검사를 마치고 마취에 들어갔다. 수술은 간단해 보였지만 마취가 풀릴 때까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깔때기를 하고 나오는 별이가 왠지 슬퍼 보여 마음은 아팠지만 아빠견의 노후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위로를 했다. 하루정도 아기들과 격리를 시키고 내 옆에서 조용히 쉬게 해 주었더니 통증이 좀 가시는지 밖으로 나가겠다고 신호를 보낸다. 정신없는 아기들 틈에 둬도 되려나 걱정은 됐지만 내버려 둬 봤다. 처음엔 아기견들이 아빠견의 깔때기가 신기한지 옆으로 몰려들어 아빠를 귀찮게 하는가 싶더니 잠시 시간이 흐르니 아빠를 달래주듯 핥아주고 옆에서 아주 신기하게 재롱을 부린다. 아빠 괜찮아요? 아빠 많이 아팠어요? 뭐 이런 대화 같다. 참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의 행동을 보다 보면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고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어쩜 저렇게 예쁜 치유의 마법사 같은 동물이 있을까? 키울수록 정이가고 사랑이 충만해진다. 이런 점 때문에 개를 키우고 반려견이라 부르며 평생을 함께 하는가 보다. 나는 6년 만에 이 진정한 반려견의 세상 속으로 오롯이 들어온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니 그저 의무감으로 키웠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개들의 선하고 깊은 눈 속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해 얼마 전 새끼 견들을 보며 완전히 무방비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아기들을 입양 보내는 것도 큰 일이 하지만 지난 세월 함께 해온 개들을 잘 보살피는 게 더 큰 일이라는 걸 안다. 예쁘고 귀여운 아기들이야 어딜 가서도 사랑받고 살겠지만 늙어가는 아빠 견과 젖이 축 처진 엄마견은 우리 가족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가끔 아기들 키우기 힘드니 별 달이도 다른 곳에 입양 보내라는 친정엄마의 말에 화가 치밀어 답한다. 사람이나 개나 늙어서 버리면 안 된다고 말이다. 세상에 어리고 귀여운 새끼 강아지 몇 달 키우다 힘들다고 유기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병들고 늙은 개를 버리는 건 정말 할 짓이 아니다. 함께한 세월에 대한 의리는 사람 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평생을 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나의 개들에게 의리를 보여줘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자꾸만 살이 찌는 아빠견 별이를 위해 7세 이상 노령견 사료를 사들고 오는데 왠지 짠하다. 너 벌써 노령견이 되었구나. 나도 낼모레 오십이다. 우리 같이 늙어가네... 늙었다고 구박하지 말고 사이좋게 잘살자. 아빠 노릇하느라 두 달 동안 애썼다. 상처는 곧 아물 거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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