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낱말에 매달리는 사람들
'접하다'를 쓰지 말아야 하는 까닭
“너무 단조로워서 그러는데 좀 생기 있게 고쳐주세요.”
이런 부탁을 받으면 지레 겁이 납니다. 대부분은 엄청 지루한 글일 때가 많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구어체를 써가며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한 티가 물씬 납니다. 그러나 헛짚었습니다. 문제는 낱말이니까요.
살아있는 낱말을 골고루 써야 합니다. 한 문장, 문단에 같은 낱말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고요.
단조롭다고 하는 글을 보면 딱 이 반대입니다. 죽은 낱말을 쓰고 또 써놨죠. 그런데 죽은 낱말은 저 혼자 죽지도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싱싱한 낱말들을 다 썩혀서 글맛을 떨어뜨립니다.
‘접하다’도 죽은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말에 매달리는 사람이 쓴 글은 재미가 없습니다. 됨됨이가 어떻고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건 간에 글에서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죠.
아래에서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고칠 문장
[보기] 그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1) ‘접(接)’
[보기] 그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고침 1] 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접하다(接ーー)’는 한자말에서 왔습니다.
이 말을 쓴다는 건 ‘지영, 수영, 소영, 효영, 기영, 혜영’과 같은 이름을 ‘영’ 하나로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생긴 거 하며 목소리, 성격이 다 다른데도 말이죠.
‘접하다’가 얼마나 많은 우리말을 죽이는지 볼까요?
ㄱ. 많은 일을 접할수록 (→ 겪을)
ㄴ.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맛이다. (→ 먹어본)
ㄷ. 전시에서 다양한 그림을 접했다. (→ 보았다.)
ㄹ. 그 문제를 접할 때마다 (→ 풀)
ㅁ. 문화를 접할 기회가 (→ 누릴)
ㅂ. 그 사람을 접하고 (→ 만나고)
ㅅ. 찻길과 학교가 접하고 있어 (→ 맞닿아)
'겪다.', '먹다.', '보았다.', '풀다.', '누리다.', '만나다.', '맞닿다.'
보다시피, 이 가운데 같은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많은 우리말을 '접하다.' 하나와 퉁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사임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진리부에서 뉴스피크 사전의 새로운 판본을 집필하는 일을 하죠.
그는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는 낱말들을 없애는데 아주 푹 빠져있습니다. 이를테면 '감칠맛이 난다.', '입맛에 맞다.' 하는 표현을 모조리 없애고 '맛있다.' 하나만 살려두는 식이죠.
좀 지나치긴 해도 저는 '접하다.'와 같은 말을 일삼는 것도 같은 일을 저지르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떠올리거나 만들지 못하게 틀에 가두는 짓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