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한창 취업 준비를 할 때, 가끔 이런 문자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보영아, 네가 볼 때는 내 성격 어때? 내가 뭘 잘하는 것 같아?”
누구 얘기인지도 모르는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현타가 온 것이죠.
새로 나온 소설이냐며 같이 웃자고 해서 받은 자기소개서에는 정말로 내가 아는 친구가 없습니다. 그보다 못한 사람만 있죠.
줄거리도 그렇지만 글에 나타나는 말투도 실제 친구와 전혀 다릅니다. 이 친구, 저 친구가 쓴 자기소개서가 다 비슷하죠. 한 사람이 쓴 것처럼요.
그 간지러운 소설들을 읽으며 고쳐줬던 말들에는 ‘본인’이라는 낱말도 있었습니다. 이 낱말은 글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는데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본인’을 어떨 때 썼나 생각해 보면 남들 앞에서 나를 가리킬 때, 어떤 일에 관련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입니다.
ㄱ. 본인으로 말하자면 (말하는 나를 가리킴)
ㄴ. 본인이 더 잘 알면서 뭘 물어? (어떤 물음을 한 사람을 가리킴)
ㄷ. 본인의 생각을 적어주세요. (이 글을 읽는 사람을 가리킴)
이처럼 ‘본인’은 나를 말할 때도 쓰지만, 남을 말할 때도 씁니다.
그러면 서로 쓰임이 다르니까 한 문장에 같이 써볼까요?
ㄹ. 본인 일은 본인이 알아서 좀 해줘.
ㅁ. 본인이 직접 본인한테 본인 확인했어요.
ㅂ. 본인 말처럼 본인은 본인 생각밖에 안 하더라.
ㅅ. 본 연구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보다시피 말이 되긴 하나, 뜻이 맑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 ‘너’, ‘그 사람’, ‘이 친구’, ‘여러분’ 따위를 쓰면 누가 누구한테 말하고, 누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바로 알기 쉬울 텐데 말이죠.
ㄹ. 본인 일은 본인이 알아서 좀 해줘.
ㄹ 같은 말을 들으면 보통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좀 해줘.”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내 일은 네가 알아서 좀 해줘.” 하는 뜻으로 한 말이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 탓합니다.
“왜 말길을 못 알아먹냐.” 하고, “알아먹게 말을 해야지.” 하면서요.
외교 관계에서 입장을 밝힐 때도 이렇게 두루뭉술한 낱말을 많이 씁니다. 나라와 나라는 어떤 값어치를 두고 거래하는 관계이니, 상황에 따라 말바꿀 수 있게 수를 쓰긴 해야겠죠.
그러나 일반 생활에서조차 ‘본인’ 같은 낱말을 쓰면 둘러대는 게 버릇이 됩니다. 물론 이렇게 딱 잘라 말하면 억울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들.
그저 나를 말할 때는 ‘나’ 하면 됩니다.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나보다 윗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요.
그래도 예의 없다고 오해할까 봐 걱정이면 ‘저’를 쓰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말과 글에는 어떤 심리가 담기기도 합니다.
다들 ‘본인’이라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겠지.
‘나’라고 하면 가볍고 꼭 반말하는 것 같은데, ‘본인’은 무게 있고 예의를 갖춘 것 같아 보여.
배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쓰더라.
모두 그릇된 생각입니다.
어떤 현상을 객관으로 따져보려면 가까이서도 보고, 몇 걸음 뒤에서 보기도 해야죠.
그저 옷 좀 입는 사람이, 펜대 좀 잡는 사람이 ‘본인, 본인’ 한다고 그게 잣대가 되면 안 되겠습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