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곧 태도가 된다.
나이가 찰수록 말이 곧 태도가 된다는 생각에 힘이 실립니다. 마치 뭔가 있는 듯이 말이나 글로 신비감을 주지만, 가만히 듣거나 보고 있자 하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일 때가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말과 글 뒤에 숨기를 좋아합니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하고요. 몸만 자란 어른이 아니고, 마음도 자란 어른이라면 말이죠.
일본말, 중국말에 가린 참된 내 생각과 마음을 자꾸 꺼내보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느낌을 받은 사람이 ‘나’ 일 때는 ‘내가’라고 해야 자연스럽습니다. [보기]처럼 ‘나에게’를 쓰면 내가 주체가 아니고, 밖에서 영향을 받아 내가 그렇게 된 것으로 비치죠.
사실 ‘나에게’ 하나만 놓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뒤에 쓴 ‘동경의’ 때문에 앞말도 나쁜 물이 들었다 할 수 있죠.
전에도 말했고 앞으로도 잔소리하겠지만, 일본말투로 쓰는 조사 ‘-의’는 문제가 많습니다. 글자 하나가 우리 말법을 어지럽히고, 글의 뜻을 아리송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동경의’를 ‘동경하는’으로 고치면 안갯속에 가린 뜻이 드러납니다. 누가 누구를 동경하는지 뚜렷하게 나타나죠. 다시 [보기] 글을 보시죠.
일본말투를 우리말에서 쓰면, 중요하지 않은 문장도 마치 숨은 뜻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문장이 감성을 일으킨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일본 만화나 영화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고치느라 지금도 애먹고 있고요.
더 심하면 자기가 일본말투를 쓴다는 걸 모르고 삽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면서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죠.
‘대상’은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뜻을 알고 쓰기 때문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억지 부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물건인지 알 때는 ‘그 책’, ‘그 사람’, ‘동생’, ‘보호자’, ‘고양이’처럼 밝혀 써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기]에서 ‘대상’이 가리키는 건 ‘그’입니다. 사람이죠. 따라서 ‘사람이었어.’하면 더 또렷하고 정감 있는 문장이 됩니다.
덧붙여, 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아니면 되도록 ‘대상’을 쓰지 않습니다.
ㄱ. 당신은 이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ㄴ. 이 논문의 연구 대상은 학생입니다.
ㄷ. 이 식물은 좋은 실험 대상입니다.
그는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