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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Sep 23. 2024

하늘 및 별 및 바람 및 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오늘 고칠 문장

[보기] 하츄핑 및 미니언즈에 푹 빠졌어요.


하츄핑을 잘 모르지만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보기]에 가져왔습니다. 미니언즈는 제가 좋아합니다. 악당인데 어설픈 게 너무 귀여워요.


오늘 바로잡을 말은 ‘및’입니다. 주로 이름씨(명사)를 이을 때 쓰는데, 더 좋은 표현들을 소개해드릴게요.




1) ‘및’은 어디서 왔나?


[보기] 하츄핑  미니언즈에 푹 빠졌어요.


[고침] 하츄핑 미니언즈에 푹 빠졌어요.


저는 ‘및’이 중국글자 ‘以及(Yǐjí)’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할 때, “사과  배 좀 사 와.” 하지 않으니까요. “사과 배 좀 사 와.”, “사과 배 좀 사 와.” 하죠.


말보다 글에서 더 자주 쓰긴 하지만 ‘-와’, ‘과’, ‘그리고’, ‘또는’, ‘또한’ 따위를 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모두 우리 말이죠.


ㄱ. 과학  기술의 발전은 (→ 과학)

ㄴ. 적정 주가  전망(→ 주가)

ㄷ. 쉴 때는  잡지를(→ 이나)

ㄹ. 수학  생물  유전공학을(→ 수학 생물 그리고)

ㅁ.   음악을 즐겨요.(→

ㅂ. 녹차  홍차에도(→ 또는, 녹차)


중국 말과 글에서는 ‘및’을 자주 볼 수 있고, 자연스럽습니다. 그 나라 말이니 마땅하죠. 


그러나 우리 말과 글에서 ‘및’을 쓴다면 지난번에 배운 ‘접하다’와 같은 꼴이 됩니다. ‘-와’, ‘-과’, ‘-랑’, ‘그리고’, ‘또는’, ‘또한’, ‘-이나’ 따위 말을 모두 잡아먹히는 셈입니다.


‘및’을 쓰지 않으면 글이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그런다고 힘없이 맹숭맹숭한 글이 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힘 있는 글이란 뜻이 흔들리지 않는 글입니다. 억센 낱말을 마구 써서 무겁게 내리누르는 글이 아니죠. 제대로 된 뜻을 가지고 쓴 글은 별 치장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는 법입니다.


하츄핑과 미니언즈에 푹 빠졌어요.




윤동주 시인이 「하늘 및 별 및 바람 및 시」라고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문학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자기들 시며 소설에 ‘및’을 마구 썼을 겁니다. 그게 꼭 유식해 보이니, 지식인 소리 듣고 싶은 사람들도 줄줄이 따라 썼을 테죠.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윤동주 시인은 우리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뜻을 조금이나마 느끼는 거겠죠.


그는 지켰지만, 나쁜 물은 들기 쉬워서 우리는 ‘및’을 참 많이 씁니다. 쓸 수밖에 없는 여러 까닭을 들먹이지만 그저 변병일 뿐이죠.


속이 병들면 겉을 갈고닦아도 말 한마디에서 다 들통나는 겁니다. 속이 자기 뜻으로 꽉 찬 사람인지, 허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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