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글에는 다른 모임의 연구 자료나 통계, 인용문 따위가 심심찮게 쓰입니다. 그래서 ‘불린다’ 같은 피동 표현이 자주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내 것처럼 쓰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는 내 생각이지만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쓴 것처럼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이 현상은 정보 과부하라고 불린다’ 같이 썼을 텐데, 모두 틀린 표현입니다. ‘이 현상은 정보 과부하라고 부른다’ 하고 써야 맞습니다.
‘불린다’는 피동 표현이지만, 모쪼록 우리말은 주체가 살아 있어야 자연스럽습니다. 남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피동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는 ‘능동’의 성격을 갖는 게 우리말이고 글입니다.
일본말에는 요바레루(呼ばれる)라고 해서 ‘~라고 불린다'는 뜻을 갖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말에 억지로 옮기다 보니, 주어와 서술어가 어설프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대장이라고 불린다’는 식으로 쓰면 말하는 주체가 빠지고, 책임 없는 말투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대장이라 부른다’ 하고 주체를 밝혀 쓴 문장이 자연스럽죠.
아래에서 더 많은 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ㄱ. 불꽃이라 불리는 사나이
(→ 불꽃이라 부르는 사나이)
ㄴ. 이곳은 맛집으로 불린다.
(→ (사람들은) 이곳을 맛집이라고 부른다.)
ㄷ. 한때 천사의 얼굴이라 불렸던 꽃이다.
(→ 부른)
ㄹ. 이 방식은 ‘하향식 접근법’이라고 불렸다.
(→ 이 방식을 ‘하향식 접근법’이라고 불렀다.)
예문 ㄹ처럼 번역말투를 쓰면 덩달아 주변 조사들도 잘못 쓰게 됩니다. 예문은 짧아서 망정이지 두세 줄짜리 문장에 저런 피동 표현을 되풀이하면 글이 아주 난리가 나죠. 따라서 글을 쓸 때는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늘 되새겨야 합니다.
ㅁ. 이 이론을 ‘인지 부조화’라고 불린다.
(→ 이 이론을 ‘인지 부조화’라 한다.)
예문 ㅁ은 ‘이론을’과 ‘불린다’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어긋난 것이죠. 때로는 ‘불린다’를 ‘한다’로 고쳐도 글이 매끄럽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말에 피동 표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말투처럼 사람, 물건, 상황에 가릴 것 없이 쓰지는 않습니다. 주체가 다른 대상에 의해 부름을 받았을 때 씁니다. 비슷한 말이지만 쓰임새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ㄱ. 선생님께 그 애 이름이 불렸다.
(주체인 ‘그 애’가 다른 대상 ‘선생님’에 의해 부름을 받았다는 뜻)
ㄴ.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주체인 ‘나’가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
ㄷ. 호루라기 소리에 강아지가 불려 왔다.
(주체인 ‘강아지’가 ‘호루라기’를 부는 대상에게 부름을 받았다는 뜻)
번역문이 너무 눈에 익으면 오히려 우리말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번역말투와 우리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눈에 익숙하다고 번역말투를 옳게 봐줘서는 안 되겠죠. 다시 우리말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