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로부터(의)’는 우리말 표현일까?

그리고 부치는 글

by 김보영

이 책《마지막 글공부》를 마칠 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 이곳 브런치라면, 내 글이 쓸모 있겠다 싶어서 써왔습니다. 이 글까지 한다면 예순두 편, 부록책에 가까운《내 어설픈 첫 문장》까지 합하면 아흔 개가 넘는 글을 썼네요.


내가 계속 틀리거나 넘겨짚었던 것들 위주로 엮은 거라서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내가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여러분께 나눈 것 같아 미안합니다.




글 고치는 일을 할 때 늘 고민이었습니다. 당신이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발돋움과 내려놓음, 깨달음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참으로 존경했죠. 그런데 왜 당신 삶은 글로 옮겼다 하면 흔한 글이 되고 마는가. 왜 빛이 꺼지는가.


나는 자꾸 남이 되려고 하는 버릇, 글을 남처럼 쓰려고 하는 버릇에서 꺼져가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말로 쓴 문장이었죠. 여러 번 말했지만 말과 글과 나를 따로 두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바쁜 사람들에게 내 말은 한낱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걸 압니다. 그런데도 내가 아직 놓지 못하는 거죠. 글쓴이가 살아있는 글이 더 많았으면 좋겠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말로 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들려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CCTV의 마음》입니다. 워낙 내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 먼저 읽어본 주변 사람들은 흠칫 놀라더군요.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지나온 날들에 대해, 글이 너무 쉬운데 하루 어딘가에 묵직하게 남는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언제 이걸 썼냐고 말이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 썼습니다. 여러 번 상상은 해봤지만 막상 겪으니, 너무 낯설더군요. 모든 감정이 날카롭고 또렷했습니다. 내 어느 한쪽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하는 아버지께 “아빠, 숨이 붙어 있잖아요. 그럼 계속 살아야 하는 거야”하고 말하던 내 목소리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어쭙잖은 내 말... 죽을 만큼 아파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소리.


‘나는 아빠 딸이니까 내 몫을 잘 살아내야 돼.’


아무리 되뇌어도 그게 잘 안 됐습니다. 그러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 《CCTV의 마음》을 썼습니다. 병원 복도에 있는 낮은 소파에서 초고를 마무리하고는 아버지께 고맙다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자식에게 책 사줄 때 행복한 아버지였고, 글쓰기로 작은 상장이라도 받아오면 고단한 날에도 잘했다고 웃어주셨으니까요. 글을 고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긴 하나, 감정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리움과 더 큰 사랑으로. 이 또한 글쓰기가 주는 힘이죠.


과연《CCTV의 마음》은 여러분께 어떤 글일지 궁금합니다. 내 바람부터 말하자면 우리말로 써야겠다는 마음이 서고, 늘 곁에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을 조금 더 귀하게 여기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번역말투 ‘으로부터(의)’를 우리말로 바꿔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으로부터(의)’는 우리말 표현일까?



‘으로부터(의)’는 영어 ‘from’을 일본식 말법에 따라 옮긴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의’를 빼고 ‘으로부터’만 쓰는 건 괜찮을까요? 그나마 낫기는 하나, 우리말에서는 본디 ‘에게/에게서’를 더 자연스럽게 써왔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으로부터’도 안 쓰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보다는 ‘너에게서 편지를 받았다’라고 말하는 게 훨씬 우리말답습니다. 더 나아가 ‘-에게서’보다 널리 썼던 건 ‘-한테서’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한테서’하고 쓸 때가 더 많습니다. (이를 촌스럽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게’와 ‘에게서’의 쓰임은 ‘으로부터’와 조금 다릅니다. 서양말에서 ‘으로부터’는 사람이나 동물처럼 유정 명사, 그리고 식물이나 사물 같은 무정 명사 모두에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주고받는 쪽에 따라 표현을 더 세심하게 구분합니다.


ㄱ. 나는 언니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 ‘나’가 손수건을 주는 쪽)


ㄴ. 나는 언니에게서 손수건을 받았다.

(→ '나'가 손수건을 받는 쪽)


이처럼 ‘-에게’는 주는 쪽, ‘-에게서’는 받는 쪽일 때 쓰다 보니 뜻이 또렷한 글이 됩니다. 같은 뜻으로 쓰는 ‘-한테’, ‘-한테서’라는 표현도 있다는 걸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지요.


아래에서 예문을 고쳐보겠습니다.




예문


ㄱ. ‘밥’으로부터의 해방

(→ ‘밥’에서, ‘밥’으로부터 )


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죽음에서 자유, 죽음으로부터 자유)


ㄷ. 각막염으로부터의 회복 경험을 공유합니다.

(→각막염 치료한 경험을 나눕니다. / 각막염에서 회복한 경험을 나눕니다.)


ㄹ. 우리 목표는 ‘유해 환경으로부터의 안전’입니다.

(→우리 목표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안전’ 한 것입니다.)


ㅁ. 감각신경으로부터의 신호나 수의운동을 의미한다.

(→감각신경에서 보내는)


ㅂ. 아름다운 가야산으로부터의 맑은 물과 햇빛을 받은 참외입니다.

(→아름다운 가야산)


ㅅ. 청년들이 본인의 사회 의무와 책임감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청년들이 사회 의무와 책임감에서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ㅇ. 빈딘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격파하였다.

(→빈딘성의 늪지 해안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ㅈ. 논증 구성으로부터 에세이 쓰기

(→논증 구성으로 에세이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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