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하다’와 ‘된다’의 쓰임새

by 김보영

우리말에서 ‘한다’를 ‘된다’로 바꿔 쓴 글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짐작건대 이는 주로 한자말 뒤에 붙는 ‘될 화(化)’를 우리말로 옮기며 생겨난 번역말투입니다. 앞서 말했듯, 일본은 나라말을 한문으로 삼았기에 ‘된다’ 같은 번역말투가 우리글에도 스며든 것입니다.


그러나 본디 우리말은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말입니다. ‘나는 공부한다’와 ‘나는 공부하게 된다’ 이 짧은 문장만 놓고 봐도, 우리말이 얼마나 똑 부러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부한다’는 ‘나’가 스스로 행동한다는 뜻이 분명하지만, ‘공부하게 된다’고 하면 ‘나’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의해하는 것처럼 두루뭉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에서 ‘된다’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


‘어른이 된다’, ‘꿈이 현실이 된다’, ‘여기에는 주차하면 안 된다’처럼 상태나 상황이 바뀌거나 결과로 나타날 때, 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되거나 안 될 때 써야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예문을 몇 개 소개하기 전에 생뚱맞지만, 짧게 소식 하나 전합니다.


‘브런지 작가 멤버십’에 새로운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cctv의 마음》이고, 공부하듯 쓰는 이 글과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죠. 우리말로 쓰고자 노력했으니, 글을 공부하는 작가님들께는 썩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그럼 아래에서 ‘되다’를 고쳐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예문


ㄱ. 그 사건과 모씨는 깊게 연관되어 있다.

(→ 연관 있다.)


ㄴ. 관계의 원활함을 위하여 사람들은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문 ㄴ에서 내가 고친 글을 보면 품사들 자리를 바꾼 걸 알 수 있습니다. 번역말투로 ‘되다’ 하나 때문에 앞뒤 품사들이 엉뚱한 자리로 가 있어서 제 자리를 찾아준 것입니다.


ㄷ. 여러 사례 비교 분석을 통해 사람들의 일반화된 관점이 제시될 수 있다.

(→여러 사례 비교 분석하여 사람들의 보통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예문 ㄷ에는 ‘되다’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쓰지 말자고 했던 '의'와 '통해'도 있습니다. 이런 문장이 문단을 이루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글이 되는 것입니다.


ㄹ.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시기로 인식되었다.

(→ 인식(이해)했다.)


ㅁ. 그는 책에서 외로움이란 슬픈 혹은 아픈 느낌이라고 묘사됐으며

(→ 묘사했으며)


ㅂ.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되는 방향으로서의 성장

(→역할을 다 하는 쪽으로 성장)


나는 지난번 글에서 ‘향하다’는 ‘-으로’, ‘-쪽으로’하고 고치자고 했습니다. 바로 예문 ㅂ 같은 문장들 때문입니다. 향하다는 것도 모자라 ‘방향’하고 한자말을 만들게 되고, 이어 일본말투 '-으로서의'까지 쓰게 됩니다.


ㅅ. 임상적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임상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 있다.)


임상적, 이상적, 현실적, 효율적, 객관적 따위에 쓴 ‘-적’은 모두 한자말투입니다. 이 말투 때문에 앞뒤로 한자말을 자꾸 만들게 됩니다. 한자말을 모두 지우지 못하겠다면 그 말투만이라도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ㅇ. 다양한 역할에서 비롯된 다중적 정체성

(→다양한 역할에서 비롯한 여러 정체성)


(‘정체성’도 우리말로 바꾸고 싶은데, 술을 조금 마셨더니 머리가 안 돌아가네요. ‘바탕’하고 고치면 어떨까 싶네요.)


ㅈ.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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