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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휴대전화에 대한 진실 제대로 알기

CDMA 기술을 통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나단 스터블필드의 혁신

휴대전화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입니다. 영국의 주요 매체들이 휴대전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사진을 공개했다는 소식은 기술의 급진적 변화를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미국 발명가 나단 스터블필드가 1902년에 발명한 이 휴대전화는 오늘날의 작고 가벼운 기기와는 대조적으로 맨홀 뚜껑만한 크기였다고 합니다.


스터블필드는 농장을 운영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평범한 삶 뒤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수원에 약 36m 높이의 안테나를 세우고 주변의 자기장을 이용해 무선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02년 5월 30일, 그는 필라델피아 페어몬트파크에서 최초로 이 발명품을 선보였으며, 이 기계는 훗날 '최초의 휴대전화'로 기록되었습니다.


스터블필드는 이 기계를 이용해 음악과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6년 후에는 마차나 보트처럼 움직이는 공간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지금의 휴대전화와 유사한 통신 기기를 개발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성과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혁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터블필드의 삶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06년 새로운 무선 시스템을 개발한 후, 그는 모든 노력과 시간을 '휴대전화 시스템' 발전에 투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8년 당시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그는 빈털터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항상 즉각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럽의 매체들은 스터블필드를 '휴대전화 기술의 아버지' 또는 '위대한 발명가'로 칭하며 그의 기여를 기리고 있습니다. 스터블필드의 이야기는 혁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발명은 현대 통신 기술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이는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편리한 생활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스터블필드의 모습과 실험중인 스터블필드(사진=데일리메일 갈무리)


1946년, 미국 시카고 트리뷴지 표지에 중절모를 쓴 신사가 손목에 찬 시계와 같은 전화기로 통화하는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미국 휴렛패커드에서 기획한 이벤트로, 미래의 통신기술을 예측한 것이었습니다. 그 예측은 50년이 지난 후, 1999년, 우리나라의 삼성에서 세계 최초의 워치폰 SPH-WP10을 출시했습니다.


 이 기기는 휴대전화와 시계의 결합으로, 세계 최초의 워치폰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워치폰은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상용 판매는 실패했지만 통신 기술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워치로 그 꿈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스터블필드의 초기 발명품부터 시작된 이러한 기술의 여정은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편리한 생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워치폰 SPH-WP10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한국에서 통신의 진화

한국의 이동통신 역사는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삐삐가 대중적인 통신 수단이었습니다. 이용자는 고유 번호를 통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숫자 메시지만 가능했으나, 휴대폰이 등장하며 삐삐 사용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직업군에서는 삐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이동전화 서비스는 1988년 7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도입된 것입니다. 당시 서비스는 수도권과 부산에서 제공되었습니다. 이후 20년 만에 이동전화는 차량과 선박을 넘어서 주요 수출 품목이 되었습니다. 이동전화는 통신의 자유를 제공했지만, 불안 증세를 유발하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현재는 데이터 중심의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림픽경기장으로 이동하면서 카폰을 사용하는 모습


한국의 이동통신 서비스는 1960년대 차량 통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고위층과 특수 기관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984년에는 카폰 서비스가 도입되었습니다. 서비스 초기 대부분의 사용자는 택시에 설치한 카폰이었습니다. 당시 전파를 이용한 통신 서비스는 엄격히 규제되었습니다. 무선국 허가와 정기 검열이 필요했습니다. 차량전화 검사 시, 남산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 택시와 차량으로 붐비는 기현상이 자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차량무선국 검사를 위해 남산으로 향하는 차량행렬(생성형AI로 만든이미지)


오늘날, '이동전화'라는 말보다 '스마트폰'이 더 친숙하게 들립니다. 이동통신 서비스는 40년 넘게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초기의 삐삐부터 시작해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이동통신의 발전은 우리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동통신의 역사는 기술 발전과 함께 사회 변화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5G까지 한국 이동통신 기술의 혁명적 여정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은 우리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1세대(1G)는 음성통화의 시작이었습니다. 2세대(2G)는 디지털 통화와 메시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3세대(3G)로 넘어가며 데이터 전송이 현실이 되었고,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우리 손안에 가져왔습니다. 4세대(4G)는 놀라운 속도로 동영상 스트리밍을 일상화했습니다. 이제 5세대(5G)는 초연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가상현실, 자율주행 차량, 사물인터넷과 같은 서비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이 모든 기술을 하나의 장치로 통합했습니다. 단순한 통신 도구를 넘어,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일상생활과 업무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지속적인 혁신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더 빠른 속도, 더 많은 데이터 처리 용량을 원합니다. 이동통신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며, 우리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질 것입니다. 5G 이후에도 통신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의 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t이동전화 기술 세대별 특성 비교


이렇게 이동전화 기술은 1G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시작해 5G의 초연결 사회로 진화하며,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왔습니다. 각 세대는 기술적 혁신을 바탕으로 통신의 속도와 품질을 대폭 향상시켰으며, 이는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CDMA 기술의 역사적인 첫 발걸음:한국 정보통신 역사에 길이 남을 CDMA 시연회

1995년 6월 12일, 서울 남산 아래로 한강 이남을 향해 가는 버스 한 대가 있었습니다. 이 버스 안에는 '95 정보통신 전시회' 참석을 위한 기자단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이날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한국이 세계 최초로 CDMA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국산 시스템 CDMA 이동전화 시연회였습니다.


버스가 달릴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기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 서정욱입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 사장이었던 서정욱 박사는 버스 스피커를 통해 CDMA 단말기로 기자들과 소통했습니다. 이 깜짝 이벤트는 단순한 전화 연결을 넘어, CDMA 기술의 잠재력을 현장에서 직접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술 시연을 넘어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미국 퀄컴과의 기술 연구 및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기술 이전을 통해 CDMA가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연구진과 통신 업계가 함께 개발에 매진한 결과, 5년 만에 세계적인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시연회에서 직접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이수성 국무총리, 오른쪽에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


그날의 시연회는 CDMA 기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보통신부 장관과 실무국장이 참여한 이 현장 시험은 이동통신 역사에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 통신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CDMA의 성공은 한국이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CDMA 기술의 탄생은 국내 기술진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필자는 당시 한국이동통신 수도권본부에서 운용팀장으로 CDMA의 상용화 기술의 안착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녔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진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실무진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과 실무진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한국을 세계 정보통신 기술의 선두주자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예입니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수도권 CDMA운용자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서정욱 박사와 우측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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