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
몸무게 절반 수준의 장비를 매고 뒤뚱뒤뚱 걸어 배에 오른다. 선장은 표식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도 신기하게 정확한 목표 지점에 도착해 배를 정박시킨다. 파도가 칠 때마다 일렁이는 배 위에서 일어나 다시 뒤뚱뒤뚱 걸어 후미로 향한다.
“쓰리, 투, 원. 풍덩!”
호흡기를 물고 발에 찬 핀이 엉키지 않게 다리를 교차해서 바다로 떨어진다. 머리 위로 원을 그려 이상이 없다고 선장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린 후 몸을 수면 위로 지탱해주고 있는 부력조끼에서 공기를 뺀다. 사방이 고요해진다.
더 깊이 잠수할수록 투명한 하늘색에 가깝던 바다가 점점 어두운 코발트 빛으로 변해간다. 램프를 켜자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산호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등이 노랗게 빛나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지나간다.
“우! 우!!”
호흡기를 물어 말을 하지 못하는데도 나는 연신 박수를 치며 물고기들을 보며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물고기는 유선형의 몸을 비틀어 달아난다. 물고기가 사라진 자리에 작은 공기 방울이 이른다.
임신 12주, 회사에 아직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전이었던 때, 나는 언제나처럼 사무실에 앉아 고객사로 보낼 메일을 쓰고 있었다.
“응?”
물고기 한 마리가 배꼽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기 방울도 뽀글거리는 것 같았다. 태동을 느끼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후 또 비슷한 증상이 이어졌다. 그제서야 이 움직임은 지난 저녁에 먹은 생선이 아니라 태아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양수라는 물 속에 잠겨 사는 아기는 본인의 폐로 호흡하지 못하고 모체를 통해 산소를 공급 받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며 살아간다. 태어나 첫 호흡을 하며 울고 나서야 폐포가 활짝 피면서 비로소 인간처럼 호흡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한때 엄마 배 속에서 작은 물고기였다.
12주의 아기는 키위만 한 크기에 50g 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주먹보다 작은 그 생명은 쉬지 않고 심장을 움직이고, 온몸의 관절을 만들어 제법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갑자기 튀어 오르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한다.
한 주씩 지날수록 그 움직임은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는 배꼽 아래쪽에서 느껴지다가 아기와 자궁이 커지면서 배꼽 부근에서 꼬물거렸다. 20주가 될 무렵에는 손을 올리면 그 위로 느껴질 정도로 강도가 세졌다. 톡톡 배를 치면 하이파이브 하듯이 그 위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어? 이거 맞아? 대박이다! 아가야! 아빠야!”
20주가 좀 지나서 남편도 배 위에 손을 얹으면 아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신기하다며 호들갑을 떨고는 배에 대고 자기소개를 했다. (알았어 진정해!)
초음파 검진이 한 달에 한 번이기 때문에 태동을 느끼기 전까지 남편과 나는 아기가 잘 있는지 불안해했고, 괜스레 불안감이 큰 날이면 예약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병원에 가 태아의 안녕을 살피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래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잠을 자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는 아기의 태동은 새삼 참 고마운 것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기는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걸 아는지 신나게 움직이고 있다.
아기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 외에도 가끔 특이한 태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태아가 양수를 먹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아기는 자궁에 가득찬 양수를 마시며 호흡 연습을 하다가 가끔 잘못 삼켜 사래에 들린 것처럼 딸꾹질을 한다. 그럼 스타카토를 연주하는 것처럼 짧고 규칙적인 진동을 느낄 수 있다. 또 마신 양수를 소변으로 배출하면서 스스로 양수의 양을 조절하는데 얼마나 시원하게 보는지 배 전체에 부르르 떠는 진동이 울려 퍼지고는 한다.
이 작은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전에 호흡과 배뇨를 연습하며 몸을 떠는 것을 상상하면 정말이지 귀여워 나는 괜스레 배를 한 번 더 쓰다듬는다. 한편으로는 배 안에서 만큼은 엄마가 모든 것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스스로 생을 유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이의 몫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간사한 나란 인간은 30주가 지나자 아기의 태동을 가끔 원망하기도 했는데, 1.5kg이 넘는 아기가 뱃속에서 발로 방광을 눌러대는 탓에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소변이 마려운 것은 예삿일이고, 배를 빵빵 차대는 통에 잠을 자다가 깨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아기가 자궁문 쪽으로 돌기 시작한 34주부터는 아기 다리가 위쪽으로 올라와 갈비뼈와 위장에 발길질을 해댔다. 어느 새벽에는 명치가 아파 눈이 떠졌는데, 아기가 세차게 위를 즈려밟고 있었다. 덕분에 내 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지나가겠지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는데 순간 위경련이 오면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는데, 하마터면 응급실로 달려갈 뻔했다.
37주, 막달로 접어든 요즘, 아기의 태동은 위경련을 일으키던 시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자궁이 아기에게 많이 좁아져서 움직일 공간이 부족하다고. (예스! 응?) 그래도 배 위로 솟아오르던 아기의 손과 발의 자취가, 뱃속을 간지럽히던 그 촉감이, 너무 활발하다며 늘여놓던 불평들이 벌써 그립기도 하다.
아가야, 지금 엄마 배 속이 너무 좁지? 이제 곧 네가 물고기 생활을 청산하고 숨을 들이켜 폐를 활짝 열게 되면, 아무리 발로 차고 팔을 휘둘러도 닿을 것이 없을 만큼 커다랗고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될거야. 왜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느냐고 소리쳐 울만큼 큰 세상 말이야.
그렇게 허공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드는 날은 그냥 엄마에게 오렴. 다 커버린 너를 다시 작은 자궁 안에 넣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럼 너는 내게 말하겠지.
“엄마! 세상으로 다시 보내주세요. 여긴 너무 좁아요!"
그래, 이제 좁은 엄마 배에서 나갈 시간이 다 됐구나. 어서 오렴. 이 넓고 넓은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