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으로 행복을 빕니다
한 번도 엄마가 되기를 꿈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인 시대에 셈이 뛰어난 우리 세대에게 아기를 낳았을 때 잃은 것들은 명확한 반면 얻는 것은 지극히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우리 세대에게 아기를 왜 안 낳느냐고 묻는 것은 정말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아기를 왜 낳는 건데요? 당신들은 우리를 낳아 행복했나요? 근데 왜 불행해 보이죠?’라고 반문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제가 써내려 온 글들은 이 반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서입니다. 나는 왜 아기를 낳았는지, 행복한지, 어떻게 행복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임신 후에는 좋아하는 술을 마시지 못했고, 긴 여행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깊은 물속에 잠수하는 스쿠버 다이빙이란 취미도 포기했습니다. 아이를 낳았지만 이것들은 당분간, 조금 오래도록 접어두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방법은 고과와 진급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올해 진급 연차가 되었습니다. 하필 육아휴직 중인데 말입니다.
오래도록 저를 상징해왔던 것들과 열망하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뱃속에서 움직이는 아기의 태동을 느껴 보았습니다. 숙취가 아니라 호르몬 때문에 메슥거리던 시간들도 버텨냈고,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참아내고 아기를 안았습니다. 배가 늘어나 맞는 바지가 없어 고무줄 바지를 입고, 가슴이 늘어나 예전만큼 옷태가 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해가 반짝반짝 빛나는 날엔 아기 빨래를 합니다. 하얗고 얇은 손수건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기의 얼굴과 머리, 팔다리와 발바닥까지, 온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의 충분조건이 저뿐인 아기에게 젖을 주고, 아기를 안고 춤을 추고, 늦은 저녁 아기를 재우기 전 노란 불빛 옆에서 가족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잃은 것은 많지만 엄마가 되어 참 행복합니다.
언젠가 저는 엄마 아빠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이라는 모호한 단어와는 달리 사과를 받겠다는 저의 의지는 강력했습니다. 반드시 꼭 기필코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습니다.
고약하게 서로 악담을 퍼부으며 싸운 것에 대해서, 그 싸움 속에서 우는 동생의 귀를 막아주느라 내 귀는 차마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직 어린 내게 장애가 있는 오빠와 동생을 맡기고는 밤 열두 시 넘어 제사를 지내고 온 것에 대해서, 태풍이 오던 날 엄마의 품을 오빠와 동생에게 양보하고 무서움을 삼켰어야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꼭 사과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마치 부모가 내게 사과를 빚진 것처럼 굴어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꾸어간 사과의 원금과 세월과 함께 불어난 이자를 내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는 불량한 사채업자처럼 이따금 찾아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짓밟으며 행패를 부렸었습니다.
기억하지 못해 기록할 수 없는 무수한 그 행패의 순간들 속에서 엄마 아빠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정말 빚쟁이들이라도 된 양 나의 행패가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생채기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엄마 아빠의 몫이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시간 속에서 저는 장애가 있는 첫째를 키우면서도 저를 낳겠다고 결심한 젊은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가 겪은 진통을 공유했고, 산후조리도 다 못한 채 부엌일을 하는 엄마를, 아이를 안을 시간도 없이 바삐 일하던 아빠를 만났습니다.
낯을 심하게 가려 하루 종일 울고 보채는 저를 업고 달래는 모습도, 저의 첫 뒤집기와 걸음마에 울려 퍼진 박수 소리도, 어린 저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의 미안한 표정도, 제가 기침만 해도 전부 자기 탓으로 돌리던 죄책감도 마주했습니다.
저는 아기를 돌보며 어린 저를 위로했고, 젊은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의 삶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 때문에 사는 거지”
엄마가 수없이 했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슬펐습니다. '엄마는 나를 낳아서 이 지긋지긋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구나.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텐데.' 사랑하는 엄마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랐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제 엄마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생김생김은 남편을, 울고 웃을 때 표정은 저를 꼭 닮은 이 작고 사랑스러운 소인국에서 온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습니다. 웃음소리도 더 듣고 싶고, 보드라운 머리털을 계속 쓰다듬고 싶습니다. 정성스럽게 로션을 발라주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도 더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삶을 지속해야 하는 아주 강력하고도 사랑스러운 이유가 생겼습니다.
아마도 저의 엄마도 그러했겠죠? 장애가 있는 오빠와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 아빠와 치고받고 싸우는 와중에도 우리를 보면 살고 싶었던 거겠죠? 역시나 생은 알지 못한 것들과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아기가 살면서 힘든 순간 펼쳐보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들을 적었습니다. 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들을 적었습니다. 저의 아기를 독자로 생각하고 써 내려간 독백 같은 이 글들이 누군가의 아기였던 여러분에게도 힘과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여러분의 안녕과 행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