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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Oct 12. 2022

내 사랑의 지평

조용한 화해

저녁 여덟 시쯤이면 잠에 들고 다음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첫 수유를 해요. 수유 후에 조금 깨어 있다가 다시 자서 아홉 시에 일어나면 이유식을 먹입니다. 이유식은 제법 잘 먹어서 끼니당 백 그람 정도 먹고 있고, 저녁까지 두 끼를 먹기도 해요. 그리고 오후 한두 시쯤 낮잠을 한 번 더 자고요.


대근육 발달이 조금 빠른 편이라 혼자 오래 잘 앉아있고, 기는 자세도 취하고 물건을 잡고 선 채로 버티기도 합니다. 내년 봄에는 잘 걸을 것 같아요.


저희가 맞벌이인데 실질적으로 몇 시까지 아이를 맡아 줄 수 있나요? 교사 한 명당 담당하는 아이 수는 몇 명인가요? 낮잠 시간은 언제예요? 밥은 혼자 먹을 수 있어야 하나요? 못 먹으면 어떡하죠? 식기는 집에서 본인 것을 가져오나요?


어린이집 상담을 앞두고 아이 소개와 질문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오는 봄 복직을 앞두고 쌀쌀해진 날씨에 벌써 타는 마음. 일을 쉬는 것이 싫어 휴직 시작일에 울던 나였는데 이제 아기와 떨어질 생각에 울적하다.


육아휴직이 내가 여성으로서 받는 벌이라고 생각했건만 상이 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이유(떠날 離 젖 乳). 아기가 젖을 떠나는 과정. 롤랑 바르트는 젖을 떼는 것을 인간이 처음으로 소중한 것에서 떠남을 감수하도록 훈련된 길들이기라고 말했다. 엄마의 가슴을 떠나 새로운 음식들을 경험하며 젖을 서서히 망각하는 과정. 부재에 익숙해지는 과정. 어쩌면 이유식은 아기가 나의 부재를 준비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조건 시판 이유식 먹이려고”


육아휴직 전 선배들이 이유식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사서 먹일 것이라고 답했다. 남편에게도 시부모님과 부모님께도 미리 선언해두었다. 세상에서 음식 챙겨 먹는 것을 가장 귀찮은 일로 치부하는 내게 이유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재료들을 일일이 다듬고 삶고 찌고 갈고 그릇에 담아내고 먹이고 치우는 일까지. 오 마이 갓. 서른 넘어서까지 믹서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흠칫 놀라는 내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라는 말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입도 아니고 아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위해 내가 진짜 굳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내가 왜?     

    


주방에 서서 당근과 애호박을 깨끗이 닦아 동그랗게 썬다. 단호박은 씨를 모두 긁어내고 단단한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찜기에 차곡차곡 올려놓고는 십여 분간 푹 찐다. 재료가 쪄지는 시간 동안은 밥을 반 그릇 정도 떠 물과 함께 믹서에 넣고 간다. 믹서의 굉음 사이로 알알이 갈린 밥알들을 본다.


잘 갈린 당근에서는 달짝지근한 흙냄새가 나고, 색이 고운 푹 쪄진 애호박은 설탕만큼 달다. 단호박은 내가 생각했던 꿀 같은 맛이 아니라 고구마와 애호박의 중간 맛을 낸다. 우둔살은 소의 엉덩이 안쪽의 살로 지방이 적고 살코기가 많아 식감이 퍽퍽하다.


소고기는 촉촉한 양배추와 함께 비벼주면 퍽퍽함을 덜 수 있고, 브로콜리나 청경채처럼 녹색 작물들은 섬유질 때문에 질긴 식감이 있어 줄기는 모두 도려내고 잎만 사용해야 한다. 다음에는 바나나랑 사과를, 건자두를, 단호박 닭가슴살 퓌레를, 토마토 도미 조림을.......




낮 동안 육아에서 탈출한 남편에게 나는 공동육아라는 명분으로 설거짓거리를 남겨두었고, 저녁상 준비를 요구해왔다. 당연히 자기의 일이라며 한번 투덜거린 적 없는 남편은 퇴근 후에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렸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내가 마지막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아기는 깊은 잠이 들었다.


이유식을 사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이겠다는 남편의 제안을 인심 좋은 척 수락한 날, 앉혀 놓으면 옆으로 고꾸라지던 아기가 떡하니 허리를 곧게 피고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잘했다며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는 남편과 아기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눈부시게 성장하는 아기의 하루하루는 우리의 한 해만큼이나 다른데 남편은 그 시간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남편이 육아라는 감옥에서 혼자 탈출한 탈옥자라고 생각했건만 이젠 양육의 기쁨과 환희를 박탈당한 방랑자처럼 느껴졌다.

쌓인 설거지를 하고, 이유식 재료들을 직접 다듬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국을 끓였다. 퇴근 후 돌아와 저녁을 차린다는 것을 내가 애써 말리고 아이와 놀아주라고 하니 그래도 되냐며 방실거리며 아기 앞에 앉은 남편.


아기가 소리를 내며 웃자 내게 이런 소리를 내는 걸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이제 혼자 앉을 수도 있어”


역시나 내게는 익숙한 아기의 성장을 남편은 놓치고 있었다. 아기는 또한 아버지와의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엉성하게 차려진 저녁상에도 맛있다고 먹는 남편을 보니 뿌듯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을 잘 먹는 아기를 보는 것도 행복했다. 이제까지는 알지 못했던 기쁨과 행복. 나는 스스로 나의 행복과 사랑의 범주를 제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만든 음식을 잘 먹으니까 너무 기뻐. 행복해”


“내 마음을 이제 알겠네?”




“왜 그걸 본인이 다 떠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빠는요?”


“아빠는 무책임하시니까요 “


“어떻게요?”


“어릴 적에 우리 곁에 있어 주질 않으셨어요. 엄마가 아빠가 무책임해서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


“엄마 말고 본인에게는 어떤 아빠였는지 말해볼래요?”


“저한테는 다정하세요. 고등학교가 기숙학교였는데 매주 보러 오셨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가져다주셨어요. 한 번은 인천에서 대회가 있었는데 그 전날 멀리서 퇴근해서 오셔서 꼭두새벽에 대회장에 데려다주셨어요. 그 대회가 일박 이일이었는데 주말 반납하고 제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셨어요.”


“다른 형제들한테는요?”


“장애가 있는 오빠를 한 번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어요. 목욕탕도 매주 데려가서 닦이고, 그림도 그려주시고. 식당에서는 오빠가 식당 밥을 안 먹으니까 주인한테 양해를 구해서 컵라면을 먹이고 그러세요. 동생이 아플 때는 매일 우셨어요. 매주 편지를 써서 동생한테 주시기도 하고....”


“전혀 무책임하신 것 같지 않은데요? 아빠를 엄마의 시각에서 말고 본인의 시각에서 보는 힘을 길러야 해요.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어서 아빠를 객관화하지 못하고 있어요”



풀잎이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빠에게 어디에 묻어줄 생각이냐고 넌지시 물었다. 아빠는 미리부터 생각해 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다 함께 차를 타고서 가족 명의로 된 작은 땅에 도착했다.


양지가 바르고, 사람들이 오가며 밟지 않는 땅. 나무가 쓰러질 때 뿌리에 걸리지 않을 땅. 그렇다고 너무 구석지지 않은 땅. 아빠는 세심하게 땅을 골랐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삽과 곡괭이를 꺼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쯤 하면 됐다고 해도 아빠는 더 땅을 넓게 팠다.


“풀잎이 몸이 접힌 채로 묻히면 안 돼. 불편하면 안 되잖아”


우는 것만이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매만지고 사랑을 말하는 것만이 사랑의 방식이 아님을 알았다.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아빠는 정말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주 6일 근무에 근무 시간도 너무 길고, 월급은 조금이고. 우리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풀잎이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건넨 말에 아빠는 룸미러로 힐끗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 힘들었지”


아빠는 아마 모를 것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지. 지난 세월 아빠의 부재를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부재를 나의 아기에게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아빠를 용서해야 했으므로. 아빠를 이해해야 했으므로.


오랜 세월 아빠에 대한 미움과 오해를 걷어내고 이룬 조용한 화해.




아가야, 엄마는 요새 네 이유식을 만들면서 식재료들이 가진 고유의 맛과 향과 식감들을 알아가고 있어. 직접 만든 음식을 네가 맛있게 먹어줄 때 느끼는 행복도 알게 됐어. 네가 없었으면 몰랐을, 모른 척 살았을 소중한 가치들이야.


거리를 걸을 때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도 이 사람도 누군가에게 귀한 자식이겠거니 생각해.


상담원과 전화하기 전 ‘상담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너를 생각해.


자식 잃은 부모의 이야기가 쓰인 기사를 읽을 때면 슬픔에 몸서리쳐. 그 ‘귀함’과 ‘소중함’과 ‘슬픔’의 무게는 너를 낳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르단다.


너를 키우며 나는 남편의 시간이 곧 아버지의 시간임을 알게 되었고, 나의 남편을 너에게 양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너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의 아버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당근, 호박, 양배추, 소의 엉덩이 안쪽 살, 남편의 퇴근길, 다른 이들의 귀한 자식들, 나의 아버지. 너를 기르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넓혀가는 내 사랑의 지평.


네가 엄마의 젖을 망각하고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낼 날이 머지않았네. 그 시간이 오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더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나누자.


그때 또 네가 엄마에게 선물할 사랑과 앎이 기대되네. 우리는, 우리 세 가족은, 잘 해낼 거야. 지금껏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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