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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Aug 30. 2019

영화광의 고백(5) - 오! 나의 여신님

아름답고 아름다운 이름


  이성에 눈을 뜨기 전 일찍이 '최애'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될성부른 덕후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고전 영화에 슬슬 눈 뜨기 시작한 나는 비디오 가게를 빼곡히 메우던 진열장 제일 아랫칸에서 <오드리 헵번 명작 시리즈>를 발견하게 된다. (한 케이스당 3편의 비디오가 들어있었고 시리즈는 두 가지로 나뉘어 있어 비디오는 총 6편이었다. 고전 영화답게 대여 기간은 4박 5일이었다.)


  그 아랫칸은 유물의 보고와 같았으니 전함 포템킨을 비롯해 메트로폴리스, 카사블랑카, 사운드 오브 뮤직, 히치콕 컬렉션, 오손 웰즈 컬렉션 같은 귀한 비디오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비디오 케이스 겉면에 쓰인 영화의 설명을 꼼꼼히 살펴보며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고르기 여념이 없었고, 당시 비디오 가게 아주머니는 단골고객인 내게 캔디바나 메가톤바 같은 하드를 사주기도 하며 내 선택의 순간을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그때 나는 오드리 헵번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영화보다는 그녀가 죽기 전까지 행한 거룩한 구호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내게 더 각인되어 있었다. 그녀가 죽고 얼마 뒤 제작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교육방송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는 무수한 명작들 사이 그래도 조금은 친숙한 오드리 헵번을 선택했고 나의 선택은 옳았다. 


  당시 비디오 목록은 이러하다!

  

<로마의 휴일, 1953>


<사브리나, 1954>


<화니 페이스, 1957>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샤레이드, 1963>


<마이 페어 레이디, 1964>



  이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사브리나와 화니 페이스였다. (화니 페이스라니. 영어로 FUNNY FACE인데 내가 어릴 땐 F 발음을 우리나라에서는 다 저렇게 표기했다. 훼미리마트, 환타지월드, 휠라 등 그래서 나는 처음 휘트니 휴스턴을 알게 되었을 때 혹시 퓌트니 퓨스턴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저렇게 부르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 기억이 난다.) 


  사브리나는 뭐랄까 굉장히 전형적인 스토리였다. 큰 저택의 기사 딸로 촌스러운 외모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여자였던 오드리 헵번이 파리에서 유학하며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대저택에 살고 있는 남자 둘(심지어 형제)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파티하고 고백하고 오해하고 뭐 그러다 그중 하나와 잘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남자들 중 하나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런 유형의 남자들이 인기가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아무튼, 애석하게도 사랑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험프리 보가트와 윌리엄 홀든은 당대 최고의 배우였을지 몰라도 어린 내 눈에는 너무 나이 든 중년 아저씨들이었으므로 그다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못했다. 대신 긴 속눈썹에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지니고 큰 키만큼 긴 팔다리를 가진 오드리 헵번이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우아하게 웃는 모습에 완전 반하고 만 것이다. 특히 그녀가 입고 나오는 옷, 이때부터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의 뮤즈가 되는데 사브리나에 입고 나온 그녀의 옷들은 지금 봐도 정말 근사하다!


  화니 페이스도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평범한 서점 직원이 멋진 모델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도 파리가 등장한다. 아마 당시 헐리우드에서 파리란 세련됨을 상징하는 최고의 도시였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압권은 파리의 어느 바에서 오드리 헵번이 '자유의 댄스'라고 불릴 만큼 유쾌하고 발랄하게 춤을 추는데 정말이지 그 장면이 티브이에 나오면 아직도 넋을 놓고 보게 된다. 


흑흑 언니 너무 멋져요...


  배우가 되기 전 무용수로 활동했던 그녀답게 쭉쭉 팔다리를 뻗으며 끼를 뽐내는데, 보통 사람들이 오드리 헵번을 로마의 휴일이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것과 달리 내게 그녀는 여전히 이 댄스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금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아도 그녀는 여전히 스타일리시하고 사랑스럽다. 만약 그녀가 21세기 배우라면 매일 파파라치에 찍히며 패션 블로그의 단골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담인데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 이후로 지방시랑 엄청나게 친해져 약혼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평생 우정을 지키며 베스트 프렌드로 지냈다고 하니 이 부분은 뭔가 굉장히 헐리우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작 시리즈를 다 감상하고 난 뒤, 나는 오드리 헵번의 광팬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었지만. 나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헵번처럼 앞머리를 자르기도 했고 '문 리버'의 피스를 사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도 했고 자기소개 판넬에 헵번의 이름을 눌러 적으며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성장하는 중 헵번의 영화 몇 편을 더 보았다. 또 그때 유행하던 '삼성 커플tv'(난 이걸 탱크라고 불렀다)의 녹화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여 공비디오에 헵번의 비디오를 녹화하기도 했는데 거기엔 헵번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파계(심지어 nhk에서 방영한 것이었다-.-;)와 그녀가 맹인으로 등장해하는 스릴러 어두워질 때까지도 담겨 있었다.


 비디오의 시대가 막을 내리며 우리집에도 비디오 기계가 사라졌지만 나는 그 테이프들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어린이 특유의 정직한 글씨체로 '건드리지 마시오. 오드리'라고 적힌 그 비디오테이프는, 나만이 접근 가능한 내밀한 유년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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