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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Sep 20. 2023

소설의 효능

일곱 번째



 정말 피곤한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하루 종일 시달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침대에 누웠건만 전신을 휘감는 피로에 반비례해 자꾸만 밀려오는 짜증과 증폭되는 불쾌감. 그 기분은 일종의 억울함을 닮았다.   

   

 가만히 앉아서 24시간이 가길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자. 독방도 아닌 내 방에서 그런 고역을 감당할 인간은 없을 것이다. 정말 길고도 긴 시간이다. 하지만 생활하는 인간으로서 24시간은 왜 이리도 짧은지 몸이 열 개라도 된 듯 바쁘게 이 일 저 일 처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편을 짜 나만 미워하는 것 같다.


 “오늘 밤은 진짜 일찍 잘 거야!” 선언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향기가 기막힌 보디워시로 묵은 때를 벗기고 보들보들한 잠옷을 갈아입고 철퍼덕 누웠건만, 온전한 내 시간 하나 없었다는 억울함에 목덜미부터 뻣뻣해지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라며! 그래 놓고 즐길 시간은 왜 안 주는 건데?”      


 뭐라도 하고픈데 무엇을 해볼 기운은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기는 더 싫을 때, 나는 소설을 읽는다.(물론 아닐 때도 읽는다. 늘 읽는다.)   

   





 소설은 생각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 앉은자리에서 이토록 먼 데까지 가게 만들다니, 나는 레이 브래드버리가 만든 찬란한 우주를 잠옷 차림으로 유영한다. 대체 우주까지 가서 아귀다툼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뭘까. 지긋지긋하군! 나는 인간이 싫다. 일말의 주저 없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에게 수없이 상처받았다. 인간은 왜 이토록 서로에게 상처 주지 못해 안달인 걸까.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틈바구니를 겨우 빠져나와 다시 달려가는 곳도 인간의 마음이다. 언제나 나를 안아주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녀가 영혼을 갈아 만든 이야기 속에는 미국 메인 주에 사는 은퇴한 수학 선생이 있다.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다. 괴팍하지만 누구보다 굳세게 생을 받아들이는 올리브의 품에서 나는 온전한 내가 된다. 그녀는 집요하리만치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절대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법 없지만, 그녀는 말없이 옆에 앉아 그 슬픔을 같이 견딜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견뎌 온 인생을 티슈 대신 건네면서. 살아, 그냥 살아,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너는 살아갈 이유를 만나.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저마다의 삶이 다르듯 저마다 위로받는 포인트도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저마다의 소설도 다를 것이다. 요즘 나의 지친 밤을 위로해 주는 소설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SF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모든 소설이다.(물론 낮에는 다른 소설을 읽는다.) 내년에는 또 다른 밤의 소설이 나를 기다리겠지. 내가 기대하고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건 삶에 큰 위안이 된다. 그것이 종이뭉치 속 활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그 편이 좋을 때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내 주위에 살면서 손만 뻗으면 감당 가능한 무게로 내 손에 잡히니까.


 소설은 내가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장소만큼이나 함부로 가닿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어느 외딴곳에 나를 안착시킨다. 모두 잠든 밤에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 짐을 풀고 나는, 마음의 세포 하나하나를 뜯어 그 즙을 맛보고 펄떡이는 심장을 만지고 무턱대고 나를 내던지고 그러다 부드럽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탱탱볼처럼 유연하게 지상에 닿는다. 산산이 부서지던 내가 탄성을 얻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소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땐 소설을 읽는 일이 다 뭐야, 정보를 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걸, 하고 말하는 타입이었다. 세상에 대해 눈곱만큼도 모르는 애송이, 소설이 얼마나 좋은 건데. 나는 어린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 요즘도 어린 시절의 나 같은 사람들을 종종 본다. 누군가 떠먹여 주는 교훈만을 바라는 사람, 명확한 메시지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꼬집어야만 우는 사람, 인생을 다 안다고 하면서 한 편의 소설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 재미있는 것에는 배울 점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반대로 지루하고 정형화된 배움에만 익숙해진 사람. 정말 소설이 우리 삶에 무용하다고 느끼는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소설로 느낀 바가 없다면 그건 당신이 맞지 않는 소설을 골랐을 뿐이다. 만약 모두가 동의하는 좋은 소설을 골랐음에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이 모르는 인생의 일면이 있다는 것. 이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 반드시 책장을 덮는 순간 당신은 변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를 찾아보려 해도 제대로 된 거라곤 마침표 빼고 아무것도 없어! 의미도 재미도 그게 뭐든 그 무엇도 절대로 찾을 수 없다면, 그래 그건 작가가 잘못했네.)     


 때로는 숨 가쁜 모험을, 때로는 혼돈의 지옥을 때로는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농밀한 사랑의 세계를 헤매고 현실로 돌아오면 발아래부터 따스한 기온이 감돈다. 한 편의 잘 만든 소설을 읽고 나면 하나의 인생을 살아낸 기분마저 든다. 생각보다 우리는 평행우주에 더 쉽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을 모른다고 해도. 그뿐인가 소설을 읽으면 당신은 여러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중 마음에 드는 인생은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 타임머신을 비롯한 그 어떤 기계 장치 없이도.     


 하지만 소설을 읽어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단 하나만 말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받아들여지는 기분.” 나라는 인간을 두 팔 벌려 환영하듯 책장은 언제고 180도로 꺾인다. 복잡한 격식 같은 건 필요도 없다. 그저 눈을 대고 붙박인 문들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일.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지질함과 모순 그리고 약점들이 있다. 개성이라 불리지만 차별의 징표가 되는 것들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설이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인물이 있다. 그러니 소설을 읽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을 하나쯤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내가 꼭 잘못되거나 어긋나지만은 않았다는 것. 나 같은 사람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온전히 나라는 인간을 받아들여주는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를 느낀다. 설령 그가 이야기 속에서 죽을지라도. 괜찮다,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살아서 나의 죽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죽음을 피할 하나의 힌트를 얻은 셈이다.     


 나는 요즘 한여름 끝에 간신히 달라붙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과 더위 중에 단비, 노을 끝에 걸린 무지개, 성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시원한 라테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아이들의 이유 없는 웃음 같은, 시시하고 미미하다 여기는 것들에도 삶의 의지가 솟아난다. 어떤 날엔 멍하니 있다가도 벅차다. 소설이라는 훌륭한 자양분을 꼭꼭 씹어 삼켰더니 일어난 일이다. 당신도 늦지 않았다. 건강해지고 싶은가? 내면의 탱탱한 근육을 원하는가? 삶을 버티는 마음의 기초대사량을 증진하기에 소설만 한 것이 없다.     






 자주 실패하고 사랑이 많아 늘 마음을 다치고 강하지 않아 납작해지는 시간들 속에도 다시 도전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회복 가능한 탄성을  었다. 이 역시 소설 덕분이다. 나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으며 그 마음에 가닿기 위해 오늘도 문장 속을 헤맬 것이다. 시작될 것 같은 곳에서 끝나고 막다른 그곳이 다시 시작인 오리무중의 길이라 어렵게 어렵게 나아가야 한다 해도. 인간은 이것이다, 같은 단정보다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 단단한 나만의 대답을 움켜쥐고. 어렵게 돌아 당신에게 갈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아주 오래 당신을 지킬 것이다. 지독한 끈기, 이것 또한 소설의 효능이다.     


 오늘 밤, 내 불면의 친구가 되어 줄 소설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다. 나는 인생이라는 무의미를 긍정하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시시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끌어안고 싶다.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 요즘 그게 나의 화두다. 하지만 당신의 일상과 취향은 나와 아주 다를 것이다. 잠 못 드는 당신 손에 쥐어진 이야기를 나는 궁금해한다.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은가? 아니면 소설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원하든 일단은 소설을 읽어야 한다. 지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없으니 나는 당신에게 대신 소설을 보낸다. 언젠가 당신의 잠마저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오늘 밤도 잘 자야 할 텐데. 책장을 붙든 손이 멈추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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