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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Sep 13. 2023

너를 사랑해 나는 죄를 지었지

여섯 번째


     

 우리 집에는 이제 막  살 반이 된 강아지가 있다. 수컷이고 이름은 크림이다. 크림이는 펫샵에서 왔다. 나는 크림이를 만나기 전까지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펫샵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펫샵에서 강아지를, 더군다나 구매라는 행위를 통해 데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강아지의 엄마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마치 내 결혼 소식을 들었던 날처럼.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엄청나게 말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 강아지들은 풀려 있거나 묶여 있었다. 지금처럼 목줄을 하고 산책하고 강아지가 오줌 싼 곳에 물을 뿌리거나 똥을 재빠르게 수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네에는 주택이 많았고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묶여 있는 개들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요란하게 짖었고 풀려 있는 개들은 주체적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막다른 골목에서 코너를 돌 때 강아지를 마주치는 일은 흔했다. 다만 그들 목에는 대부분 방울-당시의 위치추적기-이 달려 있었다. 난 방울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 바로 멈췄다.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고 최대한 조용하게 피했다.      


 나는 개들에게서 도망치는 법을 잘 알았다. 등을 보이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눈으로 보지 말고 무심하지만 천천히 가던 길을 가라. 나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사나운 개들은 어린 나를 만만하게 보며 덤벼들었다. 동네 깡패처럼. 나는 눈물도 안 흘렸다. 정말 극심한 공포는 사람을 패닉으로 몰아넣는다. 다행히 동네의 열린 대문에서는 언제나 빗자루를 든 구세주들이 뛰쳐나왔다. 개는 내가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최고의 빌런이었다.

    

 그런 내가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니. 가끔 천사 같은 얼굴로 아저씨 같은 코골이 소리를 내는 크림이를 무르팍에 뉘어 쓰다듬을 때면, 손바닥 전체를 타고 흐르는 그 생생한 촉감에 비례해 놀라움도 커진다. 너는 정말 나의 아이로구나. 너는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니? 너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플라스틱 바구니에 실려 경매당했니? 아니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펫샵에 팔려 온 거니? 너는 너의 엄마를 기억하니? 너는 여기에 와서 행복하니? 크림이는 답이 없지만 혼자서 탄복한다.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는 보드라운 행복이 내 무릎에 있어!     






 신도시에 이사 온 우리, 동네엔 가족 단위의 가구가 많았다. 상권이 형성되며 펫샵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나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그 앞을 스쳐 지나가곤 했다. 안에 들어가는 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진짜 보기만 할게.”     


 순식간이었다. 화장실 간 남편을 기다리며 상가 앞에 서 있는데 아이가 번개처럼 펫샵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차 하며 아이를 따라 들어갔다. 칸칸이 진열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정말 나의 팔뚝보다 작은 강아지를 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뼛거리며 가게 안을 서성이는 나와 달리 아이는 작은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가여운 짐승들을 보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점원이 다가와 아이에게 강아지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아이의 옷깃을 붙잡고 이제 그만 나가자고 말했다. 아이는 뒤돌다 말고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게 제일 안쪽 제일 아래에 위치한, 여태껏 오고 나간 손님 중 아무도 가지 않은 구석에 있는 커다란 강아지 하나를.     


 털이 어찌나 하얀지 온몸에서 빛이 났다. 푸슬푸슬한 몸통과 달리 얼굴 털만 기묘했다. 마치 토치로 굽거나 실수로 시나몬 가루를 덮어쓴 생크림 같았다. 점원은 그게 눈물 때문이라고 했다. 아, 강아지는 참 솔직한 존재구나, 눈물 흘린 자국이 고스란히 남다니. 혼자 이런 망상에 잠겨있는데 점원이 대뜸 그 강아지를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아이는 작게 박수를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아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유리 상자 안에서 나온 하얀 강아지는 신이 나 우리 발아래를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개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요란하게 꼬리를 흔들며 냄새를 맡고 나를 지지대 삼아 두 발로 서 혀를 날름거리는데도 식은땀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어린 강아지조차 무서워 그 자리에 얼어붙곤 하는데.     


 “엄마, 이 강아지 정말 예쁘다. 이 중에서 제일 귀여운 강아지야. 넌 크림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다.”     


 점원은 놀란 눈치였다. 여태껏 이 강아지를 이렇게나 귀여워 한 사람은 우리 딸이 처음이라는 듯이. 점원은 그러면서 눈물 많은 강아지가 얼마나 관리하기 까다로운지, 5개월을 달려가는 강아지는 사실상 선호되지 않는다던지 하는, 자본의 논리와 충돌하는 설명을 자꾸 늘어놨다. 그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 것 같았다. 강아지가 있던 칸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 그 위에 산성비처럼 좍좍 그어진 2번의 디스카운트 표시가 많은 걸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딸을 재촉했다. 이렇게 이름 붙이고 우리는 매정하게 여기를 떠날 것이었으므로. 점원은 아이에게 강아지를 안아보겠냐고 했다. 딸은 당연히 그렇게 했다. 내가 막을 새도 없이 일어났다. 강아지는 아이의 무릎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린 털 속에 숨겨진 그렁그렁한 눈을 본 순간 나는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도대체 네 눈물은 누가 닦아주기나 하는 걸까?    

 

 순간적으로 불길한 확신에 휩싸였다. 아무도 이 아이를 데려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강아지를 구매해야 하는 이곳에서 냉정한 말이지만, 이 강아지는 절대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존재였다. 점원조차 이 강아지와 같은 종의 갓 태어난 새끼강아지를 권유했으니까.     


 



 

 -펫샵에서 안 팔린 강아지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강아지를 잘 아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강아지 공장으로 가 교배용으로 쓰인다는 게 친구가 말한 여러 사례 중 그나마 희망적인 말이었다. 몇 발자국 가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예 몰랐으면 몰랐지, 이미 알아버렸는데. 아예 안 봤으면 안 봤지, 이미 눈을 마주치고 살결을 어루만졌는데. 친구에게 방금 본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말했다.

 -절대 안 돼! 하지만 죄를 짓겠다면 사랑으로 갚아나가야지.     


 나는 남편에게 하얀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펫샵으로 들어갔다. 질병이나 하자가 있을 시 교환이 가능하다는, 울화가 치미는 약관을 보자 그제야 점원의 태도가 이해가 갔다. 필시 당신들은 이 아이의 눈물을 견디지 못해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겠지, 뭐 이런 계산. 다른 강아지들보다 무려 4배나 할인된 ‘크림이’를 안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바로 위에 있는 애견용품점에 가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품을 싹쓸이해 왔다. 가볍게 외식을 하러 나온 우리는 피난 가는 사람처럼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발자국도 안 되는 상자 안을 벗어난 크림이는 차마 발도 딛지 못하고 현관 앞에 얌전히 앉아 우리의 눈치를 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네 가족이 되었다.     



크림이를 만난 첫날. 짜장면을 많이 먹은 머털이 같았다.

 


 말티즈가 몸이 작은 맹견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크림이는 종을 의심할 만큼 순했다. 적응도 빨랐다. 삼일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건 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육아는 욕이 나올 만큼 힘들었지만 나는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는 타입이 아니니깐. 하지만 강아지를 양육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는 완전 초보였고 강아지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본 적도 없었다. 똥을 치우고 오줌을 치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이제 저 아이의 나의 아이였다. 고우나 미우나 품어야 하는 존재. 나의 어떤 삶의 기준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데려온 아이. 나는 무책임한 인간이 제일 싫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전쟁 같은 삼일이 지났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미친 듯이 강아지 유튜브와 책을 찾아봤다. 잔뜩 메운 메모지를 들고 병원에 가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진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호들갑만 떨지 않으면 되겠구나 마음을 다 잡았다.      


 그리고 크림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삼 주 만에 뒷다리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어 옆 도시의 외과 전문 병원에 갔다. 뇌의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MRI를 비롯한 여러 검사가 필요했다. 값이 만만치 않았다. 남편과 나는 대기실에 앉아 천만 원으로 마지노선을 잡았다. 그 이상은 생활에 무리가 오니까. 물론 그렇게 말하고도 알았다. 그 이상이 들면 또 방법을 마련할 우리라는 것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사는 엑스레이 검사 결과 크림이는 후두부가 아직 너무 작아 MRI를 찍기에는 무리라고 했다. 무려 한 달을 더 지켜보며 몸이 큰 후에 다시 검사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크림이는 뒷다리에 힘을 전혀 주지 못해 대소변도 제대로 못 봤다. 당장 이틀도 마음이 타들어가는데 한 달을 기다리라는 말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잠도 못 자고 전전긍긍하는데 남편이 인천에 유명한 강아지 침술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전국의 다리 아픈 개들이 몰려와 예약을 잡기 힘든 곳인데 사정사정해 겨우 날짜를 잡았다. 다만 시간은 미정이라 가서 대기표를 받고 무한정 기다려야 했다. 아이를 등교시킨 뒤 크림이를 케이지에 싣고 택시를 탔다. 장롱면허인 나 자신이 싫어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도착한 곳은 동인천이었다. 아예 처음 와보는 곳. 길치인 나는 역시나 식은땀을 흘리며 헤매다 겨우 병원을 찾았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양한 아픈 개들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어떤 사람은 청주에서 어떤 사람은 천안에서 왔다고 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사랑이 다 이해받는 것은 아니다. 사랑 밖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랑은 그저 유난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사랑 앞에 멀쩡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걸.     


 크림이는 침을 맞고 온 그날 자기의 힘으로 일어섰다. 나는 기적을 본 사람처럼 입을 떡 벌리고 동영상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일어서자마자 마비가 뭐냐는 듯 간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자빠졌다. 몇 번 더 침을 맞았다. 신기하게 다리에 힘이 생기고 더 이상 주저앉지 않았다. 동양 의학의 영험함이 이런 것일까. 사실 아직도 갸우뚱하다. 매일 밤 귀에 대고 제발 낫기만 하라고 속삭인 것이 약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속삭이면서도 인터넷으로 강아지 휠체어를 검색하곤 했다. 요즘도 크림이와 공원을 달릴 때면 모든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절로 충만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크림이가 나와 가족이 된 지 2년이 된 지금, 그 많던 펫샵들은 반 이상이 사라졌다. 여름밤 공원을 가득 메우던 반려인들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더 좋은 도시로 가족들과 함께 보금자리를 옮겼다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생각에 잠길 때면 나는 무력한 개인이 되곤 한다.      




 


 나는 밖에 안 나가기 대회가 있다면 1등을 할 자신이 있다. 나는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변수로 가득한 여행도 좋아하지 않고 생활의 동선도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나는 내가 다닌 학교의 자연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버스정류장에서 인문관으로 간다. 인문관에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가 내 캠퍼스 라이프의 다였다-깜짝 이벤트보다 매일의 루틴을 더 사랑한다. 그런 내가 매일 산책을 한다. 아니, 해야 한다. 크림이가 없었다면 나는 우리 동네 지름길과 맥문동의 이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크림이를 사랑하는 만큼 크림이와 닿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나의 물리적 반경이 넓어진 만큼 마음의 반경도 넓어졌다. 예전보다 사랑의 가짓수도 훨씬 늘었다. 지금도 움찔하긴 하지만 예전만큼 동물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는 골든 레트리버의 머리도 쓰다듬어 보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았다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크림이는 늘 나의 발치에서 잔다. 내가 품에 꼭 안고 있어도 잠이 오면 내 발아래에 가서 똬리를 튼다. 그럴 때면 꼭 솜뭉치 같다. 발가락으로 크림이의 보드라운 털을 삭삭 문지르면 크림이는 나를 물끄러미 본다. 이제 장난 그만 치고 어서 자라는 듯.      


 어떤 사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 우연처럼 만나 예상하지 못한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크림이를 보면 우연과 신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나는 우리의 만남에 여전히 부끄러움과 가책이 있다. 가치 규범을 무너뜨리는 일에 동조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난 크림이를 데려올 것이다. 만약 크림이가 펫샵에 머무른 채 다리가 마비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세상을 무너뜨리고 나를 나쁘게 만들 만큼 어떤 사랑은 끝끝내 거부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이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크림이는 이제 영원한 나의 아이가 되었다. 죄는 사랑으로 갚아나가는 수밖에.



이제 크림이에겐 눈물 자국이 없다. 눈물 흘리면 언제나 닦아주는 가족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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