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33년 휴직 7년 6개월 - 교사 어머니의 퇴임사

콜로라도에서 살아남기 - [60] 2/16/2023

by 설규을
살기 좋은 도시 콜로라도 볼더 그리고 대전

어머니가 퇴임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세상을 본격적으로 인식하는 순간(7살?)부터 어머니는 교사였는데, 그런 분이 교사를 퇴임하신게 정말 신기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친구 선생님 두 분이랑 학교를 떠난다고 하셨는데, 아마 학교에서 그래도 모양새 좋게 간략한 형태로 퇴임식을 한 것 같았다. 퇴임사를 어머니가 적었는데 참 감동이다.

드디어 저의 유효기간이 다됐네요로 시작한 어머니의 퇴임사이다.

... 고등학교때까지 촉망받던 미술학도였고 어렸을 때의 꿈은 화가였습니다. 교대에 진학하면서 꿈이 접혔다고 생각했고, 교직은 제 몸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나 어제 일기에서는 제 교직인생은 한 마디로 ' 망했던 인생이었는데 결국은 성공한 인생이다.'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늙은 낙타를 따라가면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제 자식들에게도 늙은 낙타가 되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교직에서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담담하면서 묵묵히 글을 써내려간 어머니의 고민이 느껴진다. 어머니에게 받은 게 미술실력은 아니고, 글씨를 이쁘게 쓰는 것도 아니다. 둘 다 어머니가 나에게 노력하셨지만 나는 전혀 재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색감을 보는 능력은 나름 뛰어난 것 같고 글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공대생치곤 감성적이고, 작가치곤 냉정했다. 내가 왜 이런가 싶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좋은 면만 잘 받은 것 같다. 다음 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전해주려는 의지와 사랑이 세상을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기술이 진보된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자식들을 잘 교육시키고 살면 되는게 보람찬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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