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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모스 Jan 21. 2024

1달 휴직할 결심을 했습니다.

얼렁뚱땅 질러야 할 수 있다.

1. 12월 21일, 문득 오늘은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유, 저런 명분으로 고민하면 영원히 실행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답게 어렵고 복잡한 결정을 단숨에 쉽게 내렸습니다.

마침 매니저와 1 on 1이 있어 미팅 말미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알다시피 지난 3-4개월이 나에게는 정말 쉽지 않았고 그래서 많이 지쳤다, 일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내게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니 1달 쉬고 오고 싶다고.


2. 매니저는 놀라는 듯했지만, 금세 경청하며 수용하는 자세로 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도 내 상황을 너무 잘 알았고 붙잡거나 반대할 명분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쉬고 오겠다는 말이 반가웠을 수도 있을 겁니다.

미팅을 마무리할 때 제가 웃으며 그랬습니다. 1달 휴직하고 싶은데 니가 승인해도 내 팀원들이 허락 안 해주면 못 갈 거 같다, 팀원들에게 이야기하고 괜찮다고 하면 다녀올 테니 나의 최종 결정은 다음 주에 이야기하겠다고.


3. 생각나는 팀원 2명에게 미팅이 끝난 후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Y님에게 먼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긴장한 게 바로 느껴집니다. 저는 얼른 걱정하지 마라, 안 좋은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허락을 구했죠. “Y님 제가 1달 휴직을 다녀오려고 해요. 괜찮을까요?” 그녀의 반응은 예상외로 “네, 저는 퇴사하시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였다.

하하, 내가 퇴사할까 봐 팀원이 걱정하고 있었구나.


4. 다음은 H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녀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대신 꼭 돌아온다는 각서 쓰세요.” Y님보다 한술 더 떴지만 반응은 거의 비슷했어요.

두 사람과 통화를 나누니, 정말 휴직을 다녀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진짜 승인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마음에선 매니저의 승인보다 팀원들의 승인이 더 중요했다는 걸 느꼈어요.


5. 그렇게 저는 1달 휴직을 승인받았습니다.

매니저 그리고 인사팀과 날짜를 정하고 시스템에 휴직을 신청하고 입력하고 구글 캘린더에 내가 없어 비는 시간을 체크하고. 명색이 팀을 맡고 있다 보니 1달 휴직에도 준비하고 챙길 게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라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휴직 기간 동안 팀원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의 양과 무게감을 떠올리면 “어우, 네가 무슨 휴직이야 이걸 다 어쩌려고. “하는 생각과 함께 휴직이고 뭐고 다 없던 일로 하자는 생각이 나를 또 괴롭힙니다. 날짜를 조금 미룰까, 1달보다 조금만 적게 쉴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고 유혹당하다가 정신을 차립니다.

그렇게 보면 휴직은 영원히 못 한다고, 너 하나 없어도 아무런 일 없다고.


6. 그래서 저는 진짜 1달 휴직할 결심을 하고 휴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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