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레모스 Jun 30. 2024

종이 신문을 구독 중인데, 초6이 제일 열심히 봅니다.

장래 희망은 대통령(부모의 장래희망인가?)

1. 나는 우리 아이를 관찰하는 엄마입니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하나이기도 하고, 관찰을 해야 아이 또한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이기도 합니다.


2. 제 직업 특성이기도 한데요. 각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 주는 트레이너로 오래 살다 보니, 그만의 고유함을 찾아내고 개발시키는 것에 어느새 특화되었습니다. 기업과 조직 내 성인을 변화시키는 게 주로 제가 하는 일인데, 집에서도 트레이너로서의 관찰력과 코칭을 아이들에게 발동시키곤 합니다.


3. 그렇게 관찰하다 보니, 우리 집 기특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활자중독인가 싶게, 온갖 글자를 읽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모 이름으로 날아오는 잡지, 어쩌다 집어오는 판촉물이나 신문, 선거 공보물까지 모든 걸 읽어댑니다. 기특이가 어릴 땐(7살 때도 그랬으니) 그런 활자가 많은 읽을거리에도 그림이 있으니 그림을 보면서 이해 못 할 글도 장식처럼 읽나 보다 싶었는데 자라서도 이런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4. 무엇보다, 기특이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엄마와 법학과를 졸업한 아빠의 장녀답게 정치/사회/문화/국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저와 남편이 나누는 대화에 언젠가부터 기특이가 끼기 시작했고 집으로 날아오는 후보들의 공약집과 공보물을 하나하나 사진부터 공약한 줄까지를 함께 꼼꼼하게 읽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보는 인상이 이상하다부터 시작해 어떤 공약은 허무맹랑하다는 말까지, 기특이가 어려도 아이들 역시 어른처럼 각자만의 생각과 가치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이해한다는 걸 그때 많이 알게 됐습니다.


5. 그리고 아이는 역사만화를 읽으며 자연스레 역사의식을 갖는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와서 일본이 싫다고 했고, 어느 날은 고구려가 조금만 더 힘이 셌어도라며 탄식하기도 하더군요. 머리가 더 자라면서는 남녀 차별 발언에 예민해지고, 양성평등을 먼저 부르짖기도 했습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더 자세히 따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6.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자극을 주자는 마음으로 종이 신문 구독을 결심했습니다. 힌트는 사실 구립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토론 수업과 영어신문 읽기 수업에서 얻었습니다. 아이를 여기에 보낼까 저기에 보낼까 하는데, 영어는 싫어하고 독서토론은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집에서 신문을 구독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7. 종이 신문 구독이라니 언제 적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가끔 우편함에 신문이 꽂혀있는 집을 보기도 해 구독은 되겠다 싶었어요. 어느 신문사의 신문을 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시선도 달라질 거 같아 선정의 고민부터 과연 우리 집에 배달을 해줄 것인가, 한다면 얼마일 건가 매우 걱정반 기대반이었는데 1달에 구독+배달비 포함 2만 원(평일만 배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문사들이 정말 광고 아니면 적자겠구나 싶긴 했습니다.


8. 그렇게 어느덧 신문을 보기 시작한 지 4달이 지났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 집 아침 풍경도 함께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침을 먹기 전 먹은 후, 약간의 여유를 이용해(혹은 양치를 하며 ㅎㅎ) 아이는 신문을 펼쳐두고 읽습니다. 그러다가 엄마 엄마, 외치며 오늘의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흥분한 목소리로 스스로 부당하고 여기는 어떠한 뉴스나 사실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따지기도 합니다. 아침이 바쁜 날은 학교에 다녀와 읽기도 하고, 덩달아 핸드폰으로만 세상을 접하던 엄마와 아빠도 가끔 신문을 펼쳐 들고 세상을 마주합니다. 초3인 막내는 신문을 읽기보다는 ‘전면광고’에만 관심을 가지며 신문을 보는 둥 마는 둥 합니다.


9. 당연하게도 요즘의 기특이는 구독 첫 달만큼 신문을 매일 꼼꼼하게 읽지 않습니다. 익숙함과 바쁨은 성인뿐 아이도 그렇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주 2-3회만 읽어도 저는 월 2만 원의 값어치를 한다고 믿기에 여전히 아이가 신문을 읽는지 관찰하며 구독을 지속할지 끊을지 보고 있습니다. 조용히 아이 방 책상에 가져다 두면 열심히 그날의 신문을 읽습니다. 어떤 날은 신문을 방으로 가져가길래 무얼 하나 보면 바닥에 신문을 깔고 물감을 꺼내 작품활동에 돌입합니다. 그 또한 신문의 쓰임이라 믿으며 같이 즐거워합니다.


10. 신문을 읽으며 기특이가 자주 했던 말들은 이런 거였어요.

- 엄마, 어른들도 줄임말을 많이 써. (아이가 말하기 전엔 몰랐는데 정말 그랬다. 예컨대 ”과기장관에“ -> 과학기술부장관에, “행시출신을” -> “행정고시출신을”, “국힘” -> 국민의 힘 등)

- 여기 파란색인 거 보니까 이 사람은 더불어 민주당이야.

- 빨간색으로 국민의 힘 편드는 거 같아.

- 윤OO 대통령이 OO 한 거 같은데.

- 사과값이 비싸대


11.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나의 눈으로 보는 시야와 비교하고, 기특이의 말과 관점을 듣기도 하고 함께 토론을 해보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재미입니다. 중학교 방학 숙제로 신문 사설 읽기를 하며 외교관의 꿈을 한때 꾸었던 나의 과거처럼 기특이가 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신문을 통해 아이가 내가 사는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인지하고 넓고 멀리 보는 시야를 갖기만 해도 만족합니다.


12. 노력하는 놈 위에 좋아하는 놈, 좋아하는 놈 위에 즐기는 놈이 있다 하니, 너 즐겨주겠니?

학교 가기 전 엘리베이터를 눌러두고(집이 18층이라) 엘베를 기다리며 신문 읽는 아이들




이전 04화 국영수 사교육 안 하는 초6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