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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모스 Jun 02. 2024

스마트폰이지만 핸드폰 (잘) 안 하는 초6

불안과 믿음 그 어딘가에서

집에서 잠자는 스마트폰


1. 핸드폰을 우리나라에서는 핸드폰이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mobile phone/cell phone이라고 부릅니다. cell phone이 무슨 뜻일까 하고 찾아보니 구글이 이렇게 알려주네요. “a portable electronic device used for communication through voice calls, text messages, and internet access” 여러 단어가 쓰여 있지만, 이 중에서도 ‘a portable’ 즉 들고 다닐 수 있는 폰이라는 의미가 손에 들고 다니는 핸드폰과 가장 맞닿아 있는 뜻이겠죠.


2. 구구절절하게 핸드폰의 의미를 굳이 언급하고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 집 초6의 핸드폰은 사실상 핸드폰이 아니고 집 전화기이기 때문입니다. 기특이와 연락이 닿는 건 오직 이 아이가 집에 있을 때뿐이죠. 학교에 있거나 수영장에 가 있거나 친구와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때는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 집 기특이는 왜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고 집에 두고 다닐까요?


3. 이 아이도 처음엔 폰을 몸에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니, 자연스레 남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핸드폰을 사줄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집과 학교는 불과 10분 거리이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돌봄 교실에 있거나 방과 후 수업을 가다 보니, 핸드폰을 꼭 사용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는 키즈폰을 구입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핑크색을 좋아할 때라 핑크색 아키폰을 골라 손목에 시계처럼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전화와 문자를 말로만 보낼 수 있는 기능이고 사전이 있어서 궁금한 걸 찾아보는 건 가능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도 사전에 내장되어 있어 아이가 장난처럼 잘 활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5년 전 아키폰보다 더 진화한 AI 기능이 탑재된 네이버의 키즈폰 [아키폰]

4. 좋았던 점은 아이와 어쨌든 대부분의 경우 연락이 닿아 안심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손목에 착용해도 잘 못 느끼거나 전화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면 아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편했던 건 스피커폰만 가능하다 보니, 소음이 있거나 시끄럽게 말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사용을 자제하게 된다는 점이었어요. 막상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위험한 세상에 여자 초등학생 한 명이 키즈폰만 착용해도 부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5. 그러다 당연한 수순으로 역시나 아이는 아키폰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엔 가족이 함께 간 수영장에(여기에 아키폰을 왜 가지고 갔을까 여전히 후회 중이지만 말이죠) 놓고 왔습니다. 위치추적이 가능해 수영장에 있다는 걸 알고 사장님께 연락드렸지만, 그래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키폰의 효용이 있던 터라, 우리는 중고로 다시 아키폰을 구매합니다. 두 번째는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아요. 그렇게 두 번의 아키폰 실패 이후, 우리는 집에 있던 중고 스마트폰을 개통해 주어 2학년 말 즈음, 아이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 그러나 집전화기

6. 아이는 스마트폰이 있어도 딱히 핸드폰에 재미를 붙이지 않았어요.

전화와 문자, 카톡, 인터넷 등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전화 - 문자 - 카톡 - 인터넷 순서로 처음에는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번호는 그래도 아이가 먼저 등록한 번호와만 연락이 닿게 해 스팸이나, 모르는 사람의 연락처는 차단하는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7. 사용 초기에는 부모가 챙겨주니 가방에 넣고 다녔고, 요즘은 6학년이니 스스로 넣고 다니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도 있을 거 같아요.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가도 어차피 수업 시간엔 사용할 수 없고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둬야 하니, 그걸 챙기는 것도 귀찮았던 거 같습니다. 아이가 핸드폰을 가져가도 무음으로 처리해 둬 연락이 닿질 않아 나는 속이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하교 후 바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집에 오지 않는 아이, 저녁 6시가 넘었는데 연락 없이 집에 오지 않는 아이(두 번 다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퇴근이 늦어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아이(이 날은 심지어 집에 있었음에도 무음으로 된 스마트폰 덕분에 연락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등 엄마 혼자 애닳고 아이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일이 제법 많았죠. 피아노 학원에 늦을까, 화상영어를 깜박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연락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깨닫습니다. 기특이는 나보다 더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아이라는 걸 말이죠. 알아서 학원에 다녀오고 알아서 수업을 끝낸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아이의 핸드폰에 연락하는 수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7.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래도 나름 굉장히 무던한 스타일인 저 역시 더 무던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 스스로의 시간관리를 믿고 아이가 처한 환경에서도 안전할 거라고 믿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



스마트폰을 활용한 취미생활: 카톡/카메라/유튜브/미세미세


8. 그럼 집에서 기특이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기능은 여전히 딱 7-8개 정도로 압축되는 거 같아요.

- 전화

- 문자: 스마트폰이 없거나 있더라도 카톡이 설치되지 않은 친구와 연락

- 미니톡: 카톡이 안 되는 친구와 단톡방

- 카톡

- 카메라

- 갤러리

- Youtube: 따니네 만들기, 웃소, 우쿨렐레 연습 동영상

- 미세미세: 학교 수업에 활용


9. 적어놓고 보니, 이 아이는 여전히 스마트폰은 딱히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카톡은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플입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편집을 거의 매일 하는 거 같은데, 제가 모르는 기능도 정말 많이 압니다. 멀프라고 부르는 멀티 프로필, 나만의 음악, D-Day, 온갖 동물이나 이모티콘 같은 게 프로필에 움직이기도 하고 요즘은 ‘펑’도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인 듯하죠? 친구와 종종 카톡을 주고받는데 내용은 정말 내용 없이 다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나마 올해는 오늘의 카톡에 오늘 답을 하지만, 작년까지는 카톡 확인을 자주 안 해서 하루 이틀 전에 온 카톡에 뒤늦게 답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리고 기특이의 취미는 예술활동인데요. 양말목 만들기, 그저 무언가를 만들기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따니네 만들기 유튜브를 보고 온갖 걸 따라 만들더군요. 웃소 역시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같은데 찾아보니, 책도 내고 유명한 크리에이터들이네요. 또 요즘 학교에서 우쿨렐레를 배우면서 한창 재미를 붙여 혼자 ‘너에게 난’, ‘벚꽃엔딩’ 등을 독학해 가족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도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세미세는 요즘 반에서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해보며 미세먼지에 따라 투자를 하고 그에 따른 수익 포인트를 획득하게 되면서 기특이가 매일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지표입니다.


10. 결론적으로 스마트폰을 집 전화기처럼 사용하는 초 6을 키우는 장단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장점

-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하니, 스마트폰 중독이나 과다사용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 자녀와 스마트폰 문제로 싸울 일이 없다.

- 스마트폰 외에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책 읽기, 만들기, 우쿨렐레 연주 등)

결국 아이가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설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한 가지 장점으로 귀결되네요.


단점

- 집 밖에서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부모가 많이 답답하다.

- 자녀와 외출 수 내 핸드폰을 자주 뺏긴다. (내 핸드폰을 가져가 실외에서는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고 지하철 등에서는 가끔 친구와 연락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봅니다)


11. 글을 쭉 쓰다 보니, 저는 이 글을 통해 단순히 스마트폰을 요즘 아이들보다 적게 쓰는 기특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건데, 오히려 스마트폰은 아이의 안전에 대한 부모의 불안으로 출발해, 다시 스마트폰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걱정으로 끝난다는 통찰이 생겼습니다.

자녀의 안전을 통제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의 현주소이자,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디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세대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이 기기에 아이가 의존하거나 중독되지 않고 잘 사용하거나 활용하며 관리하게 할까를 고민하는 게 스마트폰과의 전쟁이구나 싶습니다.


12. 오늘도 우리는 불안과 믿음, 중독과 관리 그 어딘가에서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초6 기특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 전화기 같은 스마트폰은 방 어드메에 처박아두고, 주말 오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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