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7)
내셔널 갤러리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안 연다고 입구에서 아저씨가 팔을 흔든다. 기껏 그랩 오토바이 타고 20분이나 달려왔는데 아쉬웠다. 구글맵에서는 휴무라고 안 써져 있었는데. 자카르타는 랜드마크랄 게 없고 갈 데가 없다. 그나마 유튜브 같은 걸 보거나 워킹 투어 프로그램을 보면 마주 보고 있는 모스크와 자카르타 대성당을 방문하는 것 같은데 흥미가 없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겉에서만 봤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모스크라고 했던 것 같은데 2월에 갔었던 아부다비의 모스크는 예쁨의 끝판왕이었고, 이스탄불 길거리를 걸으면 발에 차이던 게 모스크라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 미술관 근처에 있는 감비르 기차역에서 더위를 피하고 점심이나 먹기로 했다. 친구랑은 점심 먹고 오후에 보기로 해서 그때까지 점심을 먹고 이동을 하자. 감비르 역에는 음식점이 많지는 않았지만 뭐 인도네시아 음식, 햄버거, 서브웨이 정도 있다. 가격은 기차역이어서 그다지 싸지 않다. 어딜 갈지 둘러보다가 야채를 부족하게 먹은 것 같아서 서브웨이에 들어갔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마르고 까무잡잡한 인도네시아인 남자가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도 다 영어로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로스트 치킨에 white italian 빵으로 고르면 직원이 어떤 치즈로 할 건지, 어떤 야채를 뺄 건지 물어본다. "올리브랑 피망 빼주세요. 아, 양배추 조금 더 주세요." 목이 마를까 봐 물도 한 병 산다. 그리 안 비싸다. 물까지 다 해서 5천 원 안 한다.
다 먹고 다음 목적지까지 어딜 갈까 지도를 본다. "어제 카누 하고 싶다고 했지? 그럼 맹그로브 숲에 가자." 하고 친구에게 메시지가 온다. 내가 시간이 좀 뜬다고 하니 근처에 갈 만한 곳이 정리된 인스타그램 링크를 보내준다. 그중에 Land's end pik2라고 인공으로 조성된 해변이 있어서 가기로 한다. 그랩으로 찍었더니 택시로 한 2만 원 정도 나온다. 공항 근처인데 주변에 구경할 곳들을 잘 조성해 놓았다. 첫날 만 오천 원 정도 나오는 택시비 아까워서 고생 고생해서 대중교통 타고 호텔까지 갔었는데, 이렇게 2만 원 들어서 택시 탈 줄 알았다면 그때 그냥 택시 탈걸 바보 같다, 하고 후회를 했다. 나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데 굳이 택시 타는 비용을 너무 아까워하는 성격이다.
Land's end pik2라는 곳에 도착하니 인공적으로 조성된 작은 쇼핑거리 같이 되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되어 있어서 스타벅스도 있고 여러 옷가게들도 있다. 태양이 내리쬐니 선글라스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베이지색으로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거리에 쓰레기도 없는 이곳은 자카르타에 사는 현지인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좋은 곳 같아 보인다. 히잡을 쓴 엄마들과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해변에서 사진을 찍는 소녀들로 약간 붐빈다.
옷가게들을 구경하는데 고속터미널 같은 질의 옷들인데 몇 만 원씩 하고 비싸다. 옷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핸드폰 충전도 해야 해서 아이스크림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일본 아이스크림집이다. 피스타치오를 달라고 했는데 피스타치오는 스페셜 메뉴라고 10k가 더 비싸서 다른 메뉴를 골랐다. 메뉴판에 쓰여있는 가격은 60k였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추가요금이 많이 붙는다. 휴, 어쩔 수 없지. 친구를 기다리며 핸드폰 충전기를 꽂아서 소파 자리에 앉았다. 에어컨이 켜져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이 금방 녹고 손이 찐득거려졌다.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아서 핸드폰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그렇고 좀 쉬다가 손을 씻으러 야외 화장실로 나왔다.
친구가 곧 도착한다고 해서 스타벅스 앞에서 기다린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친구 아들도 같이 나왔다.
"Heyyyyy, how are you?" 하고 인사하니 그래도 이틀째 본다고 아기는 나를 보며 반가워하면서 인사한다. 친구는 아기의 손을 잡고 한쪽 손에는 모래 놀이할 삽과 장난감 트럭을 담은 투명 가방을 들고 있다. 우리는 그늘이 있는 모래에 가서 앉아서 쉬고 아기는 모래 놀이를 했다. 우리가 얘기할 동안 아기는 기찻길을 그리고 삽으로 모래 쌓기 놀이를 하고 혼자서 논다. 같이 하자는 말도 뭐를 해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약간 떨어져서 혼자서 노는데 혼자서 놀기 심심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엄마도 동생도 없이 외로울 그의 삶과 그래서 금방 성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같이 모래 놀이를 하고 있으니 친구가 우리 사진을 찍어 주었다. 가끔 보는데 아기 생각이 나서 너무 귀엽고 추억을 하게 된다.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do you want to go canoe?" 하고 아기가 나에게 묻는다. "Sure, do you want, too?" 하고 물으니 아기가 "YES!" 하고 확신해 차서 대답한다. 씩씩해서 귀엽다. 모래놀이를 조금 하다가 친구 차를 타고 맹그로브 숲으로 이동한다. 구글 맵에는 타만 위사타 알람 만그로브, 앙크 카푹(Taman Wisata Alam Mangrove Angke Kapuk)이라고 뜨는 곳이다. 친구는 고맙게도 나를 위해 입장료도 내고 카누 비용도 자기가 냈다. 너무 비싼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럼 이따 밥이라도 꼭 사야겠다. 맹그로브 숲은 굉장히 크고 산책하기 좋았다. 초록색 나무들과 널찍한 공간에서 숨을 쉬니 길거리에서 맡은 매연으로 오염된 폐가 정화될 것 같아서 가슴을 펴고 숨을 쉬는 시늉을 했다. 공기도 맑고 평화롭다. 일요일인데도 사람이 없다. 카누를 타는 사람도 우리 밖에 없어서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안전 요원 없이 그냥 하는 건가?
"카누 해본 적 있어?"하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응, 네덜란드에서 저번에 같이 했잖아." 하고 대답했다. "너 혼자 탈래 아니면 아이랑 같이 탈래?" "으악, 나 혼자 타본 적은 없는데 괜찮을까? 아, 근데 아이랑 타면 아이를 위험하게 할 것 같아서 혼자 타볼게." 하고 구명조끼를 입으며 내가 말했다. 좁은 캐널에서 뒷사람이 오니까 빨리빨리 저어야 하는 네덜란드에서의 카누와 달리 널찍한 맹그로브 호수에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잠잠히, 어떨 땐 빠르게 저으면서 자유롭게 하니 너무 재밌고 좋았다.
해가 지기 한두 시간 전 짱짱한 햇살이 비쳐 반짝반짝한 물은 잠잠하게 흔들린다. 가만히 누워서 이 시간을 즐기고 싶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롭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 걱정거리도 불안함도 없다. 자연은 사람을 치유한다. 크게 한 바퀴 도는데 아직 30분도 안돼서 한 바퀴 더 돈다. 빠르게 노를 저으며 씽씽 달리는데 이 공간에 나 밖에 없는 게 좋다. 너무 재미있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노를 젓는다. 자카르타에 와서 제일 좋았던 순간을 꼽는다면 호수에서 카누를 한 일이다.
카누를 끝내고 나와서 우리가 카누를 했던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는데 친구가 "저거 봐!" 하면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작은 악어 같은 게 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으악! 우리가 카누 했던 그 물에 악어가 있는 거였어?!!! 물에 빠졌으면 어쩔뻔했어!!! 끔찍해!" 하고 말하니 아기가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괜찮아~~ 뭐가 무섭다고 그래. 하나도 안무서운 거야." 하고 어른처럼, 상남자처럼 오히려 나를 달랜다. 내가 아기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무섭잖아!